박윤주(계명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은 위독한 우고 차베스를 만나보기 위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하기 이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죽어 가며 보낸 3통의 서신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자신이 직접 베네수엘라로 가져와 전달한 것은 다시 한 번 우고 차베스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간의 신뢰를 짐작케 하며, 나아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그간 다져왔던 우호관계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에서 추진했던 다양한 경제 정책과 정치적 결정들에 대해 그녀가 우고 차베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적들의 공격은 계속 되어왔다. 그들은 아르헨티나가 이제 아르헨수엘라(Argenzuela: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합성어)가 되었으며, 그것은 크리스티나가 우고 차베스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였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했던 정책들을 우고 차베스 정책의 아류로 폄하하고 그다지 우호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아르헨수엘라라는 신조어까지 사용하는 것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정책들에 대한 공평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간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간의 정치적 동맹관계가 아르헨티나의 정책들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들이 우고 차베스의 죽음과 함께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가늠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며, 역으로 우고 차베스를 평가하는 기회 또한 제공할 것이다.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아르헨티나 간의 긴밀한 동맹관계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정책과 대외 정책(특히 말비나스를 둘러싼 영국과의 국경 갈등)에 영향을 끼쳤다. 이 두 분야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고 차베스가 아르헨티나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지역 전체에 흔적을 남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고 차베스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통합에 반대하며, 라틴아메리카 역내의 경제통합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이를 위해 남미공동시장(MERCOSUR)의 정회원국이 되었으며, ALBA를 설립하여 역내 국가들 간의 공정무역 혹은 인민무역의 형태를 띤 새로운 무역 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하였다.
베네수엘라의 라틴아메리카 역내 통합에 대한 노력은 베네수엘라 국내에서 추진된 국가 중심 경제정책과 함께 차베스 경제정책의 두 축이다. 우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다양한 산업 분야를 장악하고, 시장의 논리가 아닌 국가의 계획을 통해 경제를 운영하였다. 그 결과, France 24에 따르면 1998년 1만 4천개에 달하던 민간기업들이 차베스 집권 이후 9천 개로 줄었으며, 이는 차베스 정부에서 민간부문의 비중이 1/3 이상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국가의 강력한 경제 부문에 대한 영향력은 차베스 정부의 석유산업 장악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는 석유 및 천연가스 부문을 국유화하며 이를 통해 이후 차베스 정부가 추진한 다양한 사회정책 및 지역통합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였다.
우고 차베스의 대외정책, 특히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미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그는 UN 연설에서 부시 전 대통령을 악마라고 지칭했으며, 2007년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에서 스페인 정부에게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 및 이란 정책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고, 현 미주기구는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쿠바의 회원국 자격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소위 차비즘(Chavism)으로 불리는 우고 차베스 정부의 이러한 정책들은 라틴아메리카에 영향을 끼쳤고, 아르헨티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글은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추진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및 경제에 대한 국가 장악력 강화 노력, 그리고 말비나스를 둘러싼 영국 정부와의 갈등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가 우고 차베스의 정책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추종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차베스의 존재와 그의 강력한 담론들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의 정책 실행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는 초기부터 국가의 경제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취임 초기 농업 자본가들과 수출세를 둘러싼 갈등을 겪었고,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들은 계속 강화되었다. 1990년대 민영화되었던 국민연금을 2008년 재국유화하였으며, 역시 1990년대 민영화되었던 국영석유회사 YPF를 2012년 4월 재국유화하였다. 재선에 성공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경제정책에 큰 변화는 없었다. 2012년 아르헨티나는 모든 수입업자들에게 수입물품 리스트를 정부에 신고하고 사전에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내로 유입되는 수입품에 대한 정보를 취합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허가 제도를 통해 사전에 수입량 및 물품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책은 또 다른 보호무역조치로 아르헨티나가 미국, 일본 그리고 EU에 의해 WTO에 제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정부가 취한 일련의 국가 중심주의적 경제 운용이 차베스의 경제정책을 모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키르치네르 정부 하에서부터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약화되었던 국가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르헨티나의 움직임이 한 나라의 우발적인 행보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읽히고, 나아가 국제 사회의 즉각적 비난과 응징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가 존재한다는 점 또한 부정하기는 어렵다.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간의 공조가 가장 강력한 시너지를 보여준 분야는 대외정책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고 차베스는 꾸준히 라틴아메리카에 영향력을 끼치고자하는 소위 '제국주의자'들을 비난하였고, 이들에 저항하기 위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역내 동맹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차비즘의 담론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의 말비나스 회복 시도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국의 말비나스 점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협상을 요구하는 페르난데스 정부의 요구는 당연히 아르헨티나 국내 여론으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으나, 국제 사회의 반응은 그다지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1982년 말비나스전 당시 국제사회가 압도적으로 영국을 지지했을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역내의 반응 또한 미온적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아르헨티나가 다시 말비나스 섬을 둘러싸고 영국과 반목하는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은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고 차베스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여러 차례 천명하였다. 그는 직접적으로 영국 여왕에게 말비나스를 아르헨티나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가하면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 전쟁이 발발할 경우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고 차베스의 이러한 선언은 정치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우고 차베스의 적극적인 아르헨티나 지지 발언은 말비나스 분쟁이 단순히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영국 간의 문제, 나아가 신대륙과 제국주의자들 간의 갈등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또한 말비나스 문제를 둘러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대응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를 증명하듯이 브라질 또한 영국에게 아르헨티나와의 협상에 응하라고 요구하였으며, 1982년 말비나스 전쟁에서 영국을 지지했던 칠레마저 공식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나아가 미주기구도 공식적으로 영국에게 아르헨티나와 협상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미주기구에 미국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은 1982년 당시 영국을 지지했던 미국 역시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영국을 압박할 수 있는 중요한 외교적 지지를 미주 대륙에서 확고히 할 수 있었고, 영국은 말비나스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없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및 외교 정책에 차베스가 끼친 영향은 아르헨티나 내 반 페르난데스 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르헨티나가 베네수엘라는 모방하는 아르헨수엘라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경제 및 외교 부문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가 키르치네르 정부부터 갖고 있던 다양한 구상들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고 차베스라는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및 반제국주의적 인물의 영향력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보는 편이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우고 차베스의 죽음 이후 아르헨티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아르헨티나가 아르헨수엘라가 아니듯이 페르난데스의 정부의 정책들이 우고 차베스의 부재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르헨티나는 페르난데스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아르헨티나의 방식대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유지하고,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영국 및 스페인에 대한 대외 정책 또한 큰 변화 없이 추진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이러한 행보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주었던 차베스의 부재는 페르난데스 정부에게는 아쉬운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차베스의 인간적인 우정을 넘어 두 정부가 서로의 정책에 대해 보여주었던 지지와 연대의 정치적 제스처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의 연대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가들의 단결이 역외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현 아르헨티나 부통령인 아마도 보우도우가 차베스의 죽음을 접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엄청난 슬픔이 도래했다. 우리 중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하나가 우리를 떠났다."고 애도한 문장은 차베스가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에 갖는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차베스가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훌륭한 인물 중 하나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으나 차베스가 베네수엘라만의 차베스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차베스였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