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모/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오는 4월 21일에는 파라과이의 대선과 총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가 함께 실시된다. 이번 대선은 주지하다시피 작년 6월 22일에 발생한 페르난도 루고(Fernando Lugo)의 탄핵과 맞물려 있어 그 어느때 보다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루고는 2007년 중도좌파계열의 정당인 기독민주당(Partido Demócrata Cristiano)에 입당하여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페르난도 루고는 대선을 앞둔 2008년에 34개의 군소 좌파성향의 정당 및 정치단체와 연대하여 범좌파 연합정당인 변화를 위한 애국동맹(Alianza Patriótica para el Cambio, 이하 APC)을 결성하였다. 또한 파라과이의 제 2정당으로서 중도성향인 급진정통자유당(Partido Liberal Radical Auténtico, 이하 청색당)과 연대하였다. 이러한 범야권 연합을 통해 페르난도 루고는 러닝메이트인 청색당의 페데리꼬 프랑꼬(Federico Franco) 부통령 후보와 출마하였다. 당시 루고의 당선은 두 가지 측면에서 파라과이 정치사에서 큰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60년 동안 정권을 잡은 우파계열의 정당인 콜로라도당(Partido Colorado, 이하 홍색당)의 집권을 막았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파라과이 최초로 문민 좌파 정부가 집권했다는 점이다.

  루고는 당선 후 핵심공약인 농지개혁(reforma agraria)에 힘을 싣기 위해 좌파연합 신당인 광역전선(Frente Guasu)을 2010년에 창당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청색당은 광역전선의 개혁 정책 기조에 반대하여 연대를 끊고 홍색당과 함께 루고의 탄핵에 앞장선다. 그 결과로 청색당 출신의 부통령인 페데리꼬 프랑꼬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루고의 탄핵은 단순히 파라과이 국내의 좌·우파의 갈등을 넘어 중남미 좌·우파 세력의 대결로 확대되었다. 미주기구(OAS)는 탄핵을 결정한 파라과이 의회를 존중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남미공동시장(Mercosur)와 남미국가연합(Unasur)은 탄핵을 비합법적인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고 파라과이의 회원국 자격을 일시정지 시켰다. 이에 파라과이의 프랑꼬 정부와 의회는 회원국의 지위를 박탈한 처사를 내정간섭으로 간주하였다. 더불어 이번 선거에서 남미국가연합의 선거참관단을 인정하지 않고 외교특권도 부여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

  이번 선거는 국내적으로 페르난도 루고 탄핵에 대한 평가의 성격이 짙으며, 국제적으로는 파라과이를 둘러싼 중남미 좌·우파 세력들의 정치 지형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선에서는 총 11명의 대통령과 러닝메이트인 11명의 부통령 후보가 출마한 상태에 있다. 페르난도 루고는 명예회복을 다짐하며 광역전선의 상원의원으로 출마하여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광역전선의 대통령 후보는 아니발 까릴요 이라마인(Anibal Carrillo Iramain)이 나섰지만 지지율이 3%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저조한 투표율은 광역전선으로 뭉쳤던 좌파계열 정당과 정치조직들이 루고와의 갈등으로 그 중 일부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거나 청색당과 연대하면서 세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광역전선에서 분리된 6개의 정당과 정치조직들은 전진하는 나라(Avanza Pais)로 연합하여 '쎄로 꼬라(Cerro Cora)' 방송국의 앵커인 마리오 페레이로(Mario Ferreiro)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 그는 10% 내외의 지지율을 얻고 있으며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줄곧 3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의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이번 선거는 홍색당의 오라시오 까르떼스(Horacio Cartes) 후보와 청색당을 중심으로 3개의 군소 정당이 연합한 파라과이 알레그레 동맹(Alianza Paraguay Alegre)의 에프라인 알레그레(Efraín Alegre) 후보 간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GEO의 조사(3월6일~15일)에서는 까르떼스와 알레그레가 각각 36.8%와 35.6%의 지지율을 얻어 박빙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라우 앤 아소시아도스(Grau & Asociados)의 여론조사(3월13일~21일)에서는 까르떼스와 알레그레가 각각 42.7%와 29.2%의 지지율로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라면 5년 만에 홍색당의 까르떼스가 정권을 잡을 확률이 아주 높아졌다. 특히 까르떼스는 기업인으로서 2009년에 홍색당에 입당한 정치 신인이다. 그는 짧은 기간에 홍색당의 주류인 니까노르 두아르떼(Nicanor Duarte) 전 대통령의 영향력으로 그 계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급성장하였다.

  지지율이 가장 높은 까르떼스가 집권한다고 가정했을 때, 차기 파라과이 정부는 니까노르 두아르떼가 재임 당시(2003~2008년)에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까르떼스가 기업인 출신임을 감안한다면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파라과이의 새 정부는 루고 정부의 역점 사업인 농지개혁과 민족주의 정책을 폐기할 것임에 분명하다. 약간의 이변이 일어나 까르떼스가 아닌 파라과이 알레그레 동맹의 에프라인 알레그레가 당선된다 할지라도 루고의 정책을 이을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왜냐하면 파라과이 알레그레 동맹의 중심 정당이 루고의 탄핵을 이끈 청색당이기 때문이다. 파라과이 전국농민연합(FNC)은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여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통해 투표용지에 '농지개혁'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시민들을 독려하면서 투표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두 유력 후보 중에서 누가 당선되든 향후 파라과이 정부는 루고 정부의 개혁적인 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또한 국제관계에서도 남미공동시장 및 남미국가연합과의 긴장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