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섭(한일장신대, 사회학)
지난 3월 15일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가톨릭교회의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남미 교회 출신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1492년 남미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역사상 최초로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되었다. 사실 교황은 그동안 유럽에서 주로 배출되었다. 유럽가운데서도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 세계가 이번 남미출신 교황선거로 놀라움과 기대감을 표시하였다. 왜 유럽의 추기경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추기경을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끌 새 교황으로 선택하였는가? 이번 교황선거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글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관점에서 이번 교황 선출의 배경과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라틴아메리카 출신을 교황으로 선출하게 된 라틴아메리카의 특수한 상황 또는 배경은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크게 다음 두 가지가 주목된다. 하나는 라틴아메리카 개신교의 급속한 증가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 성향을 지닌 정부의 대대적인 출현과 확산이다.
첫 번째 배경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개신교의 급속한 증가현상이다. 인구학적 차원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 인구구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 세계 가톨릭 인구의 거의 반인 4억 이상의 신자가 라틴아메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라틴아메리카는 오랫동안 가톨릭 대륙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는 오래전부터 미국계 개신교(보수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전투적인 전도방식으로 인하여 가톨릭 대중의 이탈과 개신교로의 개종이 증가하고 있었다. 중미의 과테말라와 남미의 칠레와 브라질에는 개신교인구가 15-20%를 육박하는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 대륙이라는 위상이 도전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이에 대한 로마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가톨릭교회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해졌고 이를 이끌 교황으로 라틴아메리카 주교를 선택하였다.
두 번째 배경은 지난 90년대 이후 전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진보적 성향의 정부출현과 가톨릭교회와의 충돌현상이다. 라틴아메리카에는 90년대의 민주화 이후 진보적 성향의 정부가 합법적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장악하는 현상이 전 남미 국가로 확산되고 있었다.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에는 중도좌파정부가 들어섰고 일부국가에서는 급진적 개혁정책 또는 낙태와 동성애의 합법화 이슈로 인하여 가톨릭교회와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50년 전에 쿠바혁명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가톨릭신자인 케네디를 대통령을 선출하고 라틴아메리카의 기독교민주당을 후원하여 남미의 혁명적 열기를 기민당의 개혁바람으로 잠재우려 하였다. 오늘 유럽의 추기경들은 남미출신 의 교황 선출을 통하여 남미의 가톨릭 대중들에게 교회개혁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남미출신 교황 선출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먼저 교회의 교리적 방향은 당분간 보수적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특히 낙태와 동성애와 같은 가톨릭교회의 전통적 교리에 대한 신학적 입장은 강화 또는 적어도 매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시절에 이 문제에 대하여 이미 현 아르헨티나 정부와 갈등을 겪은바 있다. 그러나 교회의 대사회적 메시지에는 개혁적 변화가 기대된다. 왜냐하면 새 교황은 신학과 신앙의 차원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나 사회정의와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대내외적으로 매우 심각한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사제와 추기경의 유소년 성추행과 바티칸 은행의 부정과 같은 여러 가지 부정적 사건들로 인하여 가톨릭교회는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교황이 교황의 이름으로 청빈의 성자로 유명한 성 프란시스코 수도사의 이름을 선택한 것은 교회의 개혁적 방향을 암시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프란시스코는 수도사이면서 평신도였다. 따라서 새 교황이 위대한 성직자의 이름보다 평신도 수도사의 이름을 선택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새 교황은 교황과 성직자의 권위보다는 가난한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교회의 신학적 변화를 요청할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새 교황이 속한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독재와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항하여 해방신학의 입장에서 가난한자를 위한 교회의 사목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남미 출신 새 교황의 선출은 로마와 전 세계에서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개혁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근대세계의 출현 앞에 교황 요한23세는 유럽의 근대적 신학의 도움을 받은 바티칸 제2공의회의 개최를 통해 현대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길을 열었었다. 새 교황은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개혁적 전통과 가톨릭신도의 양적 우위를 기반으로 세계경제위기와 대세가 되어가는 진보적 정부의 출현 앞에 21세기 세계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개혁적 방향을 어떻게 심화할 것인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