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섭(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교황이 생전에 사임하고, 그 뒤를 이을 후임 교황으로 유럽 밖의 인사가 선임되는 등 충격과 이변이 이어지면서, 최근 바티칸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에 선임된 것을 둘러싸고 여러 분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언론의 대체적인 반응 가운데 하나는 가톨릭 교계가 '절묘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유럽과 비유럽,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에서 '솔로몬의 선택'을 했고(워싱턴 포스트), 교리에서는 보수적인 반면, 사회문제에서는 개혁적인, 바티칸과의 관계에서는 내부자가 아니고, 출신에서는 유럽인이 아닌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교회 안팎의 개혁적 요구를 적당히 무마하면서 주류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절묘한 타협점'을 찾았다는 것이다(한겨레).
언론의 이러한 반응들은 가톨릭교회 안에 일정한 갈등과 대립이 존재하고, 그것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이번 새 교황의 선임은 이러한 갈등이나 대립을 수면으로 끌어올려 완화 또는 해소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적당하게 미봉하려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 탓인지 새 교황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흔히 새 교황을 교리적인 면에서 보수적이나 사회적인 면에서는 개혁적으로 본다. 외면상 모순적인 이러한 입장을 아르헨티나에서는 대중적 보수주의(conservador popular)라고 지칭한다.
우선 교리적인 측면에서 보수적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아르헨티나 교회 자체가 라틴아메리카에선 콜롬비아, 멕시코 교회 등과 더불어 보수적인 성향으로 유명하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이러한 교의적 보수성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좌파 정부(2003년-현재)와 곧잘 부딪혔고, 지난 2010년 정부가 동성 간 결혼을 허가하는 법률을 추진하면서 그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언론은 또한 교황이 사회적인 면에서는 개혁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관심을 예로 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관점은 가난의 문제를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가난한 이들을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역사의 주체로 인정하는 해방신학적 입장과 다르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구호나 온정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그 구호나 온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교회의 입장일 뿐이다.
더구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황의 관심도 민정 이양 이후 아르헨티나 교회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부각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는 군사정권 하에서 이른바 '더러운 전쟁'에 적극 가담하고 협력하였다. 민정 이양(1983년) 이후, 이와 관련된 각종 추문 등이 터지면서 아르헨티나 교회의 위신은 곤두박질친다. 교회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일환으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하에서 더욱 열악해진 가난한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교회의 사회구호망을 총동원하여 지속적으로 구호 활동을 벌인다. 교회는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추락한 위신을 일정 정도 회복하면서, 특히 90년대 말부터 사회적인 문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에 베르골리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1998-2013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새 교황을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무엇보다도 군사정권 하에서의 침묵 또는 방조에 대한 의혹인 것 같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76년 5월 빈민사목을 하던 예수회 신부 2명(오를란드 요리오와 프란시스코 할릭스)이 군에 끌려가 5개월 동안 가혹한 조사를 받도록 방조했다는 의혹이다. 교황 측은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피해자 중의 한 사람으로 현재 독일에 거주 하는 할릭스 신부는 1995년에 쓴 『명상 훈련』(Ejercicios de meditación)에서, 교황이 '방조' 이상으로 적극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즉 자신들의 빈민촌 활동을 게릴라와 연관 있는 것처럼 왜곡했고, 이를 따지자 이와 관련해 군부에 석명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오히려 군부에 거짓 고변해 끌려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황에 대해 해방신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먼저 교황은 해방신학에 대해, "절망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오염되어 있다"고 보고 적대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교황 선거와 그 이후 과정에서 이 입장이 다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교황 선거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하는 데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브라질의 우메스 추기경(Cláudio Hummes)과의 끈끈한(?) 관계가 주목을 끈다. 왜냐하면 우메스 추기경은 해방신학에 우호적인, 대표적인 진보 진영 인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군사정권 하에서의 문제와 관련하여 교황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8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에스키벨(Adolfo Pérez Esquivel)와 만남에서 교황이 행한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에스키벨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순교자들과 관련하여, 진실, 정의, 명예회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 사례로 진보적인 라틴아메리카 교회 진영의 대표적인 인사들, 예를 들면 브라질의 페드루 카살달리가 주교와 돔 헬더 카마라 주교, 에콰도르의 레오니다스 프로아뇨 주교, 엘살바도르의 오스카르 로메로 주교를 언급하였다.
교황에 대한 해방신학자들은 입장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레오나르도 보프이다. 그는 프란치스코를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교회 쇄신 프로젝트로 보면서 이 이름의 선택을 높게 평가한다. 또한 교황이 취임사에서 사랑으로 다스리고, 하느님 백성을 중시하겠다고 한 점, 그리고 남반구의 출신이라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프는 새 교황이 교황청을 개혁하고, 행정을 분권화하며, 새롭고 믿을만한 교회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근거에 비해선 평가나 기대가 과장된 것 같고, 무엇보다도, 교황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에 반해 브라질의 프레이 베토 신부는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는데 앞장 선 에스키벨의 발언을 신뢰한다면서, 교황이 브라질의 돔 헬더 카마라 주교처럼 예언자적인 처신을 하지 않았고, 살레스(Eugenio Sales) 추기경처럼 쫓기는 사람들을 은밀하게 도왔다고 주장한다.
코스타리카에서 활동하는 성서학자인 파블로 리차드는 교황을 온건한 보수주의자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교황 지인들의 평가를 토대로, 새 교황이 에큐메니즘이나 평신도들의 참여와 관련하여 개방적이고, 사회적, 문화적 주제와 관련하여 해방적인 입장을 펼 것으로 기대한다. 군사정권 하에서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군사정권과의 진정한 협력자는 피오 라기(Apostólico Pio Laghi) 교황청 대사(1976-1980), 프리마테스타 추기경(Raúl Primatesta)이지, 현 교황은 아니라면서, 에스키벨이나 다른 인권활동가들이 그를 옹호하는 발언에 주목한다. 이처럼 베토와 리차드는 의혹을 다루지만, 지인들의 증언이나 평가에 의존하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군사정권 하에서의 의혹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군부에 거짓 고변했다고 새 교황을 비난했던 할릭스 신부는 최근 인터뷰에서 오랜 기간 동안 현 교황이 자신들을 고발했다고 생각했으나, 1990년대 말경 다양한 토론을 한 끝에, 이 혐의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5년 『침묵』이라는 책에서 군사독재 하에서의 교황의 처신에 의혹을 제기했던 오라시오 베르비츠키(Horacio Verbitsky)는 지난 17일 아르헨티나 신문인 <파히나 12>에서, 교황이 할릭스 신부에 관한 정보를 당국에 제공했고, 할릭스 신부의 여권을 발급하지 말도록 당국에 권고한 내용을 담은 아르헨티나 외교부의 문서를 공개했다.
새 교황은 이 의혹뿐만 아니라, 여성신학자들의 부정적 평가도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여성신학자인 이보니 제바라 수녀는 이번 교황 선거가 가톨릭 세계에서의 분절적인 이해관계와 세력 균형의 지정학에서 치르진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선거 결과는 남반구가 북반구에 포섭된 것과 같다고 본다. 따라서 새 교황은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적인 정부들과, 여러 사회운동들, 특히 바티칸을 괴롭혔던 여성운동들의 투쟁으로 고무된 상황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내다보았다.
새교황의 과거 전력과 관련된 의혹, 여성 문제와 관련된 보수적인 입장 등을 들어 그를 지나치게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황 선임은 분명 의미가 있다. 비유럽권에서 1300여년 만에 나온 교황이고, 고위성직자로서 소박하고 대중적인 삶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그 관점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긍정적인 측면들 때문에, 의혹으로 또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간주되는 부분을 무조건 덮으려드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군사독재 하에서의 의혹과 관련해, 이를 좌파들의 소행으로 간주하는 교황청의 반응은 유감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군사독재 하에서의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역사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르비츠키의 책 제목인 '침묵'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 소유의 섬 이름이다. 그런데 군사정부는 교회의 지원을 받아 이 섬에 정치범들을 수용한 수용소를 차렸던 것이다.
의혹의 진상이 어떤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이 의혹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도 교황에 대한 평가나 전망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교황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얼마나 의연하게 대처하고, 더 나아가 교회 앞에 놓은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현안을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