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1998년, 새로운 세기를 코앞에 두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행보를 가름할 두 개의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4월 18~19일)된 제2차 미주정상회의였다. 미주정상회의에서는 미주자유무역지대(ALCA)가 주된 의제로 등장했고 늦어도 2005년까지 협의를 마무리하기로 합의되었다. 다른 하나는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의 대선 승리(12월 6일)였다. 유효 투표의 56퍼센트를 득표한 차베스의 승리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밀려온 신자유주의 물결을 대신하는 '핑크빛 물결'의 시작이었다. 차베스의 뒤를 이어 브라질 룰라(2002년), 아르헨티나 키르츠네르(2003년), 우루과이 바스케스(2005년),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2006), 에콰도르 코레아(2007년), 파라과이 루고(2008년)가 연속적으로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진보좌파 벨트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제3차 미주정상회의(2001년 4월, 캐나다 퀘벡)에서 차베스는 공개적으로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정 체결을 반대했고, 좌파 정권의 연대로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의는 제5차 미주정상회의(2005년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차베스 등장 이후 남미 정치 지형의 변화를 '반미 좌파 도미노'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인류 역사상 대륙 전체에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를 내린 것은 라틴아메리카가 처음"이라는 국제연합개발계획 보고서(2004년)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차베스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을 전통적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차베스는 2005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진행된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한 대규모 군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전 세계적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다고 소련의 경우처럼 국가자본주의에 의지할 수도 없다. 우리는 명제로서, 프로젝트로서, 나아가야 할 길로서 사회주의를,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를, 기계나 국가를 앞세우기보다 인간을 앞세우는 인간적 사회주의를 다시 불러내야 한다." 그가 '21세기 사회주의'로 명명한 새로운 사회주의는 집권 초기부터 진행해온 볼리바르혁명을 포괄하는 담론이다. 아마도 차베스 사후 라틴아메리카 좌파정권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그가 유산으로 남겨 놓은 '21세기 사회주의'를 규명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차베스 자신은 '21세기 사회주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우리가 제기하는 사회주의는, 누군가 생각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와 반목(反目)하지 않는다. 지나간 시대의 사회주의는 우리가 제기하는 사회주의와는 달랐다. 다른 현실, 다른 상황이었다.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우리가 제기하는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민중 민주주의(democracia popular), 참여 민주주의(democracia paticipativa),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democracia protagónica)이다." 차베스는 새로운 사회주의를 '민중이 주인이 되어 참여하는 민주주의'로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포르투갈 사회학자 소우자 산투스(Boaventura de Sousa Santos)가 '21세기 사회주의'를 '끝없는 민주주의'(El socialismo es la democracia sin fin)로 규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따라서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주의=국가주의=전체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있을까?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민중이 주인이 되는 참여 민주주의'로 규정한 것은 '민주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 등식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사회주의=국가주의=전체주의' 대(對) '민주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라는 이원론적 대립을 비판하고 '21세기 사회주의=(?)=민주주의'로 바꾸어 놓는다. 이 등식에서 '21세기 사회주의=민주주의' 등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간 항(?)이 빠지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를 구(舊)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와도 차별화하는 것은 중간 항(?)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처럼 차베스도 자원 붐(특히 석유)을 등을 업고 전례 없는 사회정책 프로그램들을 실천했다. 정부 예산의 43%를 사회정책에 투여한 덕분에 71%에 달하던 빈곤층(1996년)이 21%(2010년)로 줄어들었고, 같은 기간 극빈층은 40%에서 7.3%로 줄어들었다. 특히 예산의 많은 부분이 교육, 보건, 주거, 인프라 구축에 사용되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22개 이상의 공립대학이 세워졌고, 교사 수는 65,000명에서 35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문맹이 사라졌고, 지니계수는 남미 전체에서 가장 크게 향상되었다. 이런 통계들은 '불평등하고 가난한 민주주의'였던 '사우디 베네수엘라'(Venezuela saudita)가 '볼리바르 베네수엘라'(Venezuela bolivariana)로 변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정책들은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개념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사회민주주의나 경제민주화 쪽에 더 가깝다. 차베스를 따라다니는 많은 수식어들―선동가, 포퓰리스트, 독재자, 수다스러운 유치원 교사 등―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석유의 국유화 정책으로 손실을 본 국내외 자본가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정치세력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지난 30~40년 동안 다른 어떤 지역보다 신자유주의가 가장 먼저, 가장 강도 높게 적용되었으며, 가장 먼저 도전받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부의 재분배이나 경제민주화가 좌파 정권들의 정책의 첫 번째 과제가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차베스 이후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민주주의'를 차별화하는 중간 항(?)은 코뮨주의(communism)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21세기 사회주의=코뮨주의=민주주의'라는 등식의 성립이다. 코뮨주의는 사적 개인의 집합인 시민사회도 아니고 '상상의 공동체'인 국민국가도 아니다. 그러나 차베스가 국가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립의 과정에서 과두체제에 의해 만들어진 이후 라틴아메리카를 계속해서 지배해 온 국가-기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차베스는 국가-기계를 견제하는 사회적 권력 구조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미션(misión)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공공정책을 실천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들을 주민평의회나 협동조합으로 제도화했다. 주민평의회나 협동조합의 제도화는 크게는 국가와, 작게는 행정단위와 병행하는 영토적 주권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율과 자치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예를 들어, 참여예산제도)를 결합하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식민지 과거와 독립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내적 식민주의'(colonialismo interno)에서 파생된 사회적 권력 관계를 총체적으로 재편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베스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이 '새로운 건국'(refundación del Estado)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원주민 구성 비율이 높은 안데스 지역처럼 계급보다 인종이나 종족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지배하는 지역에서 코뮨주의는 역사적·사회적·문화적으로 훨씬 더 포괄적이고 심오한 형태로 나타난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제헌헌법에 등장하는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나 수마 카마냐(Suma Qamaña)가 그것이다.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코뮨주의는 지역통합과 반제국주의라는 또 다른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차베스가 앞장섰던 라틴아메리카 지역통합은 정치적·경제적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얄팍한 계산속에서 추진된 것이 아니다. 미주자유무역지대의 합의가 최종적으로 결렬되기 1년 전인 2004년에 베네수엘라와 쿠바 간에 시작된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Alternativa Bolivariana para las Américas, ALBA)은 자유무역(free trade) 대신에 공정무역(fair trade)을 지향한다. 2006년 볼리비아가 회원국이 되면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식 명칭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민중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민중무역협정'(ALBA-Tratado de Comercio de los Pueblos, ALBA-TCP)으로 바뀌었다. 더 나아가 차베스는 'ALBA-TCP 정신에 입각한 사회운동협의체'(Consejos de Movimientos Sociales de ALBA-TCP) 결성을 사회운동단체에게 제안했다. 지역통합이 경제적 이해관계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국가권력의 역학 관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제안이다. 미주자유무역지대에 대한 대안이기도 한 ALBA-TCP가 반제국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제국주의를 반미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남미국가연합(UNASUR)과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의 기본적 노선도, 회원국 간의 이견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ALBA-TCP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앞의 논의들을 정리하면,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한편으로는 최근 30~40동안 라틴아메리카를 시작으로 전지구적으로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의 모색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메리카 발견 이후 500년 동안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내적 식민주의가 결합된 식민성(coloniality)에 대한 대항헤게모니이다. 이런 맥락에서 '반미 좌파'라는 딱지가 붙은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반제국주의와 탈식민성을 통한 코뮨주의'의 건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부의 재분배, 지역통합, 반제국주의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코뮨주의는 차베스가 언급한 것처럼 논증되어야 할 명제이고, 실행해야 할 프로젝트이며, 수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가야 할 여정이다. 차베스 사후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의 미래는 이러한 과정들을 어떻게 추진해가느냐에 달려 있다.
칠레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에르네스토 카르모나(Ernesto Carmona)가 지적하듯이, 차베스의 혁명과 '21세기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도 아니고 수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사회 정의, 볼리바르 사상, 마르크스주의, 피델 카스트로 사상, 아옌데의 유산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맥락과 뒤섞인 복합적 산물이다. 여기에 엄청난 활력과 단호한 성격, 명확한 정치적 비전을 가졌던 차베스의 카리스마와 이에 "우리 모두 차베스다!"(¡Todos somos Chávez!)는 함성으로 화답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브라질,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쿠바, 우루과이, 엘살바도르, 그 밖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가능한 대책도 다르고, 문화적·종족적 요소가 내포된 사회적 갈등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밖에도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거의 모든 나라가 '자원착취적 경제정책'(extractivismo)에 의존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딜레마이다. 결국, 차베스 이후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의 미래는, 월러스틴이 논평했듯이,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가 오늘날 처해 있는 내부적 힘의 균형과 보다 큰 범위에서의 지정학적·문화적 맥락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적 자본주의와 근대문명의 위기를 알리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서 차베스의 혁명은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성찰해야 할 미션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