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차베스가 2013년 3월 5일 죽음을 맞았다. 베네수엘라 전국에서 모인 대중의 애도는 긴 행렬을 이루면서 24시간 내내 지속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장례식장에 누워있는 관의 뚜껑을 유리로 하여 문상하는 사람들이 고인의 얼굴을 보게 하는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낮과 밤을 통해 차베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임시대통령이 되면서 4월 14일의 새로운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차베스가 작년 10월의 대선에서 당선된 뒤에 대통령 선서의식을 못하고 있는 국면이라 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장이 임시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헌법에 따라 마두로 부통령이 임시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예정된 4월 대선의 유력한 대선 경쟁후보는 마두로 부통령과 작년 차베스와의 대선 경쟁에서 패배한 야당 후보로 현재 미란다주의 주지사인 카프릴레스이다. 현재로서는 마두로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에 있었던 여론조사에서도 마두로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현재 차베스의 사망 이후 형성된 대중의 애도 분위기는 상상을 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젊은 여성이 차베스의 관을 내려다보며 한 손을 자신의 가슴에 다른 한 손을 주먹 쥔 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차베스 혁명의 최대 수혜자이고 차베스 지지의 핵심세력이 가난한 여성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모습인 것 같다. 알려진 바로는 볼리바리안 의용대의 대원인 그녀가 아홉 살 때 차베스가 1992년의 쿠데타 실패 후 한 "지금으로서는"라고 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4월의 대선에서 베네수엘라 대중은 차베스에게 바치는 헌사의 의미로 마두로 에게 승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베네수엘라 선거권자의 약 80%는 가난한 대중으로서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배제되어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 대중에는 가난한 노동자들 외에 최근에도 극우세력의 폭력의 희생이 되고 있는 농민과 원주민도 포함된다.

  차베스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운구행렬에도 약 2백만의 대중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많은 대중에는 가난한 빈민들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중간계급도 포함되어 질 것이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안정적으로 정부 여당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당황한 야권에서는 차베스의 죽음을 베네수엘라 정부가 기획했다는 비난을 중요한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재의 집권세력이 대중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두로는 차베스의 가족에 대한 큰 모독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또한 야권은 현재의 대통령 후보인 마두로가 예전에 버스 운전사였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공수부대 중령 출신이었던 차베스에 비해 버스운전사 경력을 들추어냄으로써 마두로에 대한 신뢰감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다. 약 200년간 베네수엘라를 지배했던 기득권 계급은 어떻게 버스 운전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동안 차베스가 집권하는 동안 대중에 대한 친화력으로 대중이 하는 말투로 친근감 있게 연설하고 대화함으로써 이루었던 대중에 대한 헤게모니 구축을 견디기 힘들었는데 더 대중과 가까운 경력의 마두로의 집권을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야권의 비난은 차베스의 집권 기간 중 가난한 대중에 대한 '진정성'이라는 차베스가 이룬 상징권력에 대한 공격으로 선거 결과 예상이 불리한 상황에서 심리전에서라도 혹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차베스가 가지는 대중에 대한 상징성이 워낙 강하고 그의 죽음 이후 곧 치러지는 선거전에서 친 차베스 세력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불리한 맥락에서 차베스를 직접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야권의 전략은 차베스 혁명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는 시몬 볼리바르와 차베스의 상징적 분리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차베스가 밀착하여 전유했던 볼리바르의 상징성을 야권이 이제 거꾸로 전유하기 위해 차베스 사후의 집권 엘리트의 진정성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들 우파는 "마두로는 차베스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는 또한 우파의 엘리트 위주의 정치적 비전을 가리는 효과를 거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또는 상징적 선거 전략은 차베스가 사망이후 이미 '역사적 인간'으로 전화되어 상징적으로 볼리바르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차베스의 사망은 베네수엘라의 국내정치 지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록 차베스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이미 차베스가 상징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전체 대중의 애도를 받고 있는 현재의 맥락을 중시해야 한다. 차베스는 14년 동안의 집권을 통해 단순한 반미주의를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대의 주주라고 할 수 있는 다국적 금융자본의 지배에 반대하는 정치 지형을 지켜왔다. 그가 한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보통의 정치지도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온 셈이다. 이런 차베스 체제의 성격이 라틴아메리카 전체 정치지형에 차베스가 사망한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반 차베스 흐름의 외국의 언론 매체들은 차베스의 죽음이 곧 차베스 체제의 끝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나 좌파 언론매체들은 차베스 체제의 지속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자유주의적 주류 언론들은 차베스 체제의 평가에 있어 차베스 개인의 독재적 카리스마에만 주목하고 차베스 체제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구조 개혁의 움직임에 대한 평가에는 인색한 편이다. 반면에 좌파 언론매체들이 차베스 체제의 지속을 예상하고 있는 이유는 우선 차베스 사망 후 대중의 지속적인 애도 외에도 54개국이 공식 조문 사절을 파견했고 그중 30개국에서 국가 정상 들이 참여한 경우가 흔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베스의 정책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책은 "주민평의회"의 가동이다. 강력한 사회공공 정책의 실천인 "미션 사업"도 중요하지만 특히 "주민평의회"는 자유주의적 근대적 제도의 핵심인 의회와 병행하는 주민 대중의 직접적이고 주인공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이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유주의적 근대국가들의 경우, 정치적 수사로는 시민의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정치 참여는 4년 또는 6년 마다 있는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우 밖에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4년 동안 지속된 차베스 집권기간 동안 베네수엘라 사회의 대중은 "주민평의회"와 매주 있었던 차베스의 대중 정치교육의 실험적 모델인 "안녕 하세요 대통령"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게 강력한 정치 교육을 받아왔다. 그런 힘이 현재 차베스 사망 후에도 별다른 사회적 동요나 불안 없이 차분하게 차베스 이후의 베네수엘라 체제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베네수엘라 대중이 그동안 차베스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2002년 4월의 반 차베스 쿠데타, 2002년 12월의 석유공사를 중심으로 한 자본파업 그리고 수 없이 많은 반 차베스 언론 매체에 의한 대중 조작 등에 굴복하지 않고 강한 저항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4월 14일의 대선은 2002년 4월의 반 차베스 쿠데타와 비슷한 시기에 열림으로써 대중에게 더욱 긴장감 있는 선거가 되게 할 것이다.

  아무튼 차베스와 대중의 일체감은 흔히 "포퓰리즘"현상으로 이해되지만 차베스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1992년 차베스의 쿠데타 실패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차베스는 "지금으로서는"이란 발언을 통해 아주 강력한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그 후 집권 후 차베스 정부가 보여준 일관성 있는 사회적 공공성의 정책을 통해 대중이 차베스를 신비롭게 지지하는 "차베스 현상"을 보여준바 있다. 이제 차베스가 죽은 후 대중은 이미 차베스를 '신화화'시키고 있다. 이런 차베스의 '신화화'는 정치적으로 바라볼 때 차베스를 지지하는 대중의 아주 강한 '단결'을 이끌고 있다. 이렇게 집권세력과 대중 사이의 강한 신뢰의 과정을 이끌어낸 중요한 동기는 차베스가 대중에게 수사로서만 "희망"과 "변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희망과 변화를 대중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태까지의 베네수엘라의 전직 대통령들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최근 임시 대통령인 마두로는 국영방송인 베네솔라나 텔레비전의 "모두 베네수엘라"라는 프로에서 현재의 베네수엘라 정부가 차베스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일치되어 있으며 베네수엘라 대중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차베스 사령관을 사랑하는 점에서 하나가 되어있다고 언급하였다. 한편 현재의 야권은 1999년의 새로운 헌법에 대한 찬반의 국민투표에서 반대했으며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유권자의 약 80%가 찬성했다고 마두로는 주장했다. 동시에 마두로는 야권에서도 새로운 젊은 세력이 등장하여 현재의 헌법체제를 폭력적으로 바꾸려는 쿠데타적 기도를 버리고 민주주의의 게임을 존중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흥미로운 것은 차베스를 대통령이라는 제도적 호칭이 아니라 "사령관"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차베스를 이렇게 부르는 세력이 예전에 열광적으로 차베스를 지지했던 소수의 좌파세력(예를 들어, 볼리바리안 서클)이 아니라 평범한 다수의 "주민평의회"의 대중이란 점이다. 주민평의회와 같은 대중권력의 성취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차베스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차베스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카라카스의 부자 동네로서 반 차베스 세력의 거점 지역인 "차카오"로 가서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차베스의 건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정부에 대해 요구하던 젊은이들을 즉각 해산시킨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대중의 응집력이 야당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차베스를 지지하는 대중은 다수인 반면에 야당을 핵심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이익을 위해 지지하기 때문에 그들의 응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 베네수엘라 혁명과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변화는 상당히 오래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우선 4월의 대선에서 베네수엘라 대중은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가 차베스와 같이 전략적으로 탄력적 유연성을 가지고 볼리바리안 혁명의 급진적 기획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지 면밀히 테스트 할 것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대중은 그동안 차베스의 급진적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관료세력을 마두로가 어떻게 통제할지도 주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