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지속으로 불안한 한 해를 시작했던 중남미는 결국 여러 악재를 뛰어넘지 못하고 21세기 들어 최악의 경제 실적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에 이은 사회 불안으로 전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브라질에게는 악몽 같은 한 해로 기록될 수 있을 듯 하다.
올해 브라질 GDP 성장률은 3분기 시점의 -2.5% 예상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3.5% 대 이하의 초라한 성적이 예상된다. 또한,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브라질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에도 0.1%성장으로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브라질은 내년이 지나면, 불행하게도 역사상 최악의 경제 실적을 기록하게 되는 셈이다. 과거 무섭게 성장하며,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던 브라질이 불과 4년 만에 이렇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1년 하반기 즈음부터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는 호황이 끝나고, 슈퍼 사이클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그 동안 양적 완화를 통해 세계 경기를 부양해 오던 미국이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끝없이 성장할 것 같았던 중남미 신흥국들에게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올 해는 중국의 원자재 수요가 급감하는 등 저성장이 현실화 되었고, 연초부터 미 연준은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다 연말이 다 되어서야 마침내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서 중남미 경제에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결국, 2000년대를 풍미했던 중남미 경제 성장은 중국의 고성장에 따른 원자재 수출 증가와 선진국 양적 완화를 통한 유동성이 핵심이었으며, 중국의 고성장세가 꺾이면서 중남미 경제도 빠르게 위축되어, 과거 중남미를 집요하게 괴롭혀 왔던 ‘자원의 저주’가 이번에도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브라질은 골든 타임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과거 호황기에 1차 산품에 치우친 산업 구조를 바꾸고, 제도 투명성을 높여 악명 높은 브라질 코스트를 극복함으로써 지긋지긋한 자원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야 했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는 그 소중한 시간을 월드컵과 올림픽 준비로 인프라 투자에만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자원과 시간만 허비한 셈이 되어 버렸다. 지금 브라질 국민들의 볼멘 소리가 호세프 정부에 대한 원망을 넘어 과거 룰라에게까지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중남미 경제 위기 진단
현재 중남미 각 국들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올해 중남미를 강타한 경제 위기의 원인은 크게 경상 적자, 재정 적자, 자본 유출 및 사회 불안으로 압축할 수 있다. 특히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남미 대국을 중심으로 이러한 현상들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올해 중남미 경제는 급격한 위기로 내몰렸다.
수치상으로 중남미 수출은 2000-2011년 동안 연평균 11.6%씩 고성장을 해왔는데, 그 이후 2014년까지는 연평균 -0.9%로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다가, 올해는 무려 -12.0% 역성장이 예상되어 2000년대 이후 최악의 수출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경상 적자도 올해는 GDP 대비 -3.0%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적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중남미는 대규모 외환 위기가 발생하였던 1990년대 말 이후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오히려 확대되면서 전통적으로 균형 재정을 이루기가 어려운 구조이다. 그나마 1차 산품 호황기에는 유지 가능한 범위 내에 있던 재정 적자가 글로벌 원자재 수요 급락으로 수출이 줄어 들면서 최근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중남미 재정 적자는 2012년까지만 해도 GDP 대비 평균 -2% 안팎의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6.7%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연초부터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 하며, 중남미 자본 유출을 부추기던 미 연준이 마침내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전환함에 따라 과거 많은 해외 자본이 몰렸던 브라질, 멕시코 등은 일정 부분 자본 유출로 인한 금융 시장 충격이 불가피할 듯 하다

천연 자원과 부정 부패
중남미 국가들에게 원유, 철광석, 구리 등 풍부한 천연 자원은 크나 큰 혜택이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자원의 개발을 통한 경제 성장이나 정부 재정 활용은 문제 삼을 바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식민지 시대부터 군부 독재 시기를 거쳐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면서 경제 체질 개선과 사회 개혁을 더디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브라질은 룰라 정부 시절 역대 최악의 정치 스캔들이었던 멘살라옹 사건으로 큰 후유증을 겪은 데 이어, 이번에는 전∙현직 대통령이 동시에 연루 의혹을 받는 페트로브라스(Petrobras) 비리 사건으로 사상 유래 없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이로 인해 호세프 정부는 탄핵 정국에서 전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브라질 주요 기업들과 국가 신용도에도 악영향을 미쳐, 브라질 국가 신용등급은 3대 국제 신용기관 중 2개로부터 투기 등급을 받아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의 길로 들어섰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라고 사정이 그리 나은 편은 아니다. 중남미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 구조와 높은 경제 개방도로 모범국으로 평가 받는 칠레도, 구리의 국제 수요 감소로 정부 재정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현 정부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첼렛은 과거 퇴임 시 전설적인 지지율로 재선출된 대통령이었지만, 아들의 부정 혐의가 드러나면서 전면 개각을 통한 노력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 역시, 작년에 헌법까지 개정하는 고강도의 에너지 분야 개혁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부패 경찰들이 연루된 시위 대학생 피살 사건과 대통령 부인을 둘러싼 정경유착 문제로 범국민적 시위가 발생하면서 그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또한, 올 해 외화보유고 부족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혼란을 겪었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각각 총선과 대선에 집권 세력이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저유가는 장기적 위협 요인
최근 지속되는 저유가의 장기화 가능성은 중남미 경제에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중남미에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이른바 Big 4 국가들은 모두 산유국으로서, 이들의 경제 성장은 전통적으로 유가와 높은 상관 관계를 보여 왔다. 한 예로 이들 4개국은 국제 유가(WTI, Spot가격 기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을 기록한 지난 2008년과 2011~2013년에는 큰 성장세를 보였으나, 70달러 이하로 떨어진 2009년과 2014년에는 경제 성장률이 하락하고, 일부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들 국가의 석유 기업들은 노후 설비가 많고, 상공정의 기술 부족으로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성이 낮다는 점이다. 공급 과잉의 지속으로 글로벌 경쟁이 심해질 경우, 향후에도 경쟁 열위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남미 석유 기업들은 대부분 국영으로 운영되는데, 석유 판매 수입으로 정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석유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베네수엘라의 경우, 작년 PDVSA의 석유 판매를 통해 국가 수출의 84%, 외화 수입의 96%, 정부 수입의 42%를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업이 위험에 직면할 경우 정부 재정에도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남미에서 반복되는 위기와 고질적인 문제들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재정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저유가 시황의 지속은 당장의 정부 투자도 어렵게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라질 정부가 올 해 추진해 오던 각종 심해 유전 개발이나 발전소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의 확충도 서서히 동력을 잃고, 순차적으로 재검토되거나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2016년 전망 – 전반적 경기 둔화 속 경제 권역과 산업 구조에 따라 각 국별 성장률은 차이
중국의 저성장이 현실화 되고, 미 금리 인상이 결정됨에 따라, 1차 산품 수출이 많고, 자본 구조가 취약한 중남미 경제는 전반적으로 성장세 둔화가 예상된다. 특히, 올해와 같이 저유가 시황이 지속다면, 석유 의존도가 높은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들의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으로서 개방 경제인 칠레는 원유의 순수입국이어서 저유가에 따른 리스크는 없으나, 구리의 국제 수요 감소로 내년에도 다소 고전이 예상된다. 다만, 페소화(CLP) 환율 하락과 구리의 국제 가격 하락에 따른 생산과 수출이 다시 늘고 있어 반등도 기대해 본다. 또 다른 태평양동맹국으로서 원유 순수출국인 멕시코는 일부 해외 자본 유출과 폐소화(MXN) 하락 속에서 대미 제조업 수출 확대를 통해 고군분투할 것으로 예상된다. 치안 불안과 고질적인 정경유착 문제가 국가 신뢰도와 해외 투자 유치에 악영향을 주고 있지만, 에너지 개혁에도 성공한 만큼 더 이상 정치 스캔들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나은 성과를 기대해 본다.
문제는 브라질 경제이다. 경상 적자와 재정 적자가 모두 커지는 상황에서 Petrobras 기업 비리로 시작된 부패 스캔들이 전국적인 탄핵 시위로 확대되면서 연립 여당 내부에서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 각료 중 유일한 시장주의자였던 레비 재무 장관마저 사임하면서 이제 호세프 정부 내에서는 균형 재정을 외치는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경제 해법을 두고 묘수(妙手)보다는 오히려 정수(定手)가 필요한 시점에서 내년 브라질 정부가 내놓을 경기 부양책들을 매의 눈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내년 개최 예정인 리우 하계 올림픽은 그 성공 여부에 따라 국민들의 불만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을 지, 국제 사회에 브라질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남미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지난 10년 넘게 중남미를 지배하던 핑크 타이드(Pink Tide: 중도 좌파의 물결)는 조금씩 약화되는 모습이다. 지난 11월 아르헨티나 대선과 12월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야당이 모두 승리함에 따라 이 국가들은 이제 과거와 같이 정부 재정을 마음껏 쓰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은 벌써부터 시장 경제로 복귀와 서방과의 협력 의사를 밝히고 있어 올해보다는 경제가 다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개별 국가와의 FTA 협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들도 이제는 부족한 재정과 경상 수지를 메우기 위해 EU 외에 TPP 국가 등과도 협상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년은 그 시발점으로서 태평양동맹과의 통합 논의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할 때,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서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손꼽힌다. 향후 이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서는 중남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블록이 탄생할 수도 있어 그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