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진

  "멕시코의 풍요로움이라고? 글쎄, 내 삶에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멕시코의 호황기가 있을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내가 40여 년 내 삶 가운데 기억하는 것은 수 많은 위기들 뿐인데,,, 멕시코에서 태어난 나는 항상 위기와 같이 살아온 기분이라네,,,"

  1971년생, Colegio de México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마친 동료에게 그 삶 가운데 경험한 멕시코의 호황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멕시코에서 경제위기란 말은 결코 낯 선 말이 아니다. 1976, 1982년, 1986년, 1995년, 그리고 2008년의 위기까지, 잊을 만 하면 터지곤 하던 굵직굵직한 경제위기는 지난 수십 년 간 이미 멕시코인들의 삶에 체화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소화 가치 폭락과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를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살아온 멕시코 인들의 삶이 그간 일련의 경제위기 속에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매도 자꾸 맞으면 맷집이 좋아진다고 했던가? 2008년 이후 여전히 경제위기의 상황이라지만, 실상 멕시코인들이 그들 삶 가운데 느끼는 바는,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 삶에 천착해 온 고단함의 연속이려니 하지, 새삼스레 무슨 새로운 위기냐 싶은 것이 이곳 멕시코인들이 느끼는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에 대해 정부는 금번의 위기는 멕시코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상황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사실 국민들은 위기의 진원지가 내부인지 외부인지 조차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생활물가에 크게 놀라지 않고, 정부를 믿기 보다는 자기들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 맬 뿐이다. 수십 년 간 훈련을 통해 깨달은 바는, 덜 먹고 덜 써가며 그저 참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2008년 경제위기의 여파인지, 아니면 오래된 습성으로의 회귀인지, 2012년 12월 1일 제도혁명당은 12년 간의 와신상담 끝에 권좌에 복귀했고, 그로부터 딱 아홉 달의 시간이 흐른 뒤 2013년 9월 2일, 엔리께 뻬냐 니에또 대통령의 첫 연례보고가 있었다. 멕시코에서는, 크든 작든, 기관이라면 일년에 한 번 반드시 치뤄야 하는 일이다. 흔히 짐작할 수 있는 의미대로라면, 권력의 행적에 대한 국민의 감시적인 성격이어야 할 것이나, 사실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권력자들이 일년에 하루 정도는 선심 쓰듯 국민들에게 내려와 그간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준다는, 시혜의 성격이 짙다. 대통령의 연례보고부터 저 아래 아주 미미한 기관장의 그것까지 그저 일방적인 보고일 뿐이다. 질의 응답도 없고 그에 대한 비판도 없다. 보고를 듣는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일이란, 혹 운이 좋아 기관장이 연례보고 이후 의례 베푸는 향연에 초대되어 그간의 공덕에 하염없는 칭송을 올리는 정도일 것이다.

  매년 영원할 것 같았는데, 어쩌다보니 12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연례보고를 앞에 둔 엔리께 뻬냐 니에또 정부는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연례보고의 골자는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라는 것이었다. 지난 아홉 달의 행적에 대한 보고 보다는 다시, 그들에게 영원할 것 같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전망이 주를 이루었다. 변화의 골자는 재정, 교육, 자원, 통신 부문에서의 '개혁'이었다.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었고, 교육자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것이었고, 자원과 통신 부문에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내용들이었다. 이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요지였다. OECD회원국이면서 G20 회원국이기도 한 그리고 세계 12-3위에 랭킹되는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의 위상에 당당하게 걸맞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 안에 오래 된 경제위기 속에 살고 있는 멕시코 인들의 삶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실제로, 수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멕시코라지만, 2013년 현재 경제지표가 썩 나쁜 것은 아니다. 브라질에 이어 라틴아메리카 내 2위 경제대국이면서 일인당 국내총생산도 구매력 평가 기준 1만2천 불을 넘어서고 있다. 비록 1% 대로 하향 조정되긴 하였지만, 국내총생산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실업율이 5%를 넘어서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 평균 6%대 보다는 낮은 편이다. 1980년대 혹은 1990년대와 같이 한 해 1000%를 능가하던 인플레와 페소화 가치의 폭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면, 엔리께 뻬냐 니에또 정부가 장밋빛 전망을 그려볼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통계의 이면이다.

  무엇보다도 오래된 위기 속에 갇혀 살고 있는 멕시코인들의 삶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것은 법정최저임금이다. 2013년 현재 1일 법정 최저임금은 62페소다 1). 미 달러로 환산하면 5불이 채 되지 않는다.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13.5%에 해당하는 670만 명 정도는 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1일 법정 최저임금의 두 배라 해도 1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멕시코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38.2%가 이와 같거나 혹은 그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 임금수준이 낮더라도 구매력 평가를 반영하면 좀 나아질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2013년 현재 1인이 한 달을 생존하기 위해 필요로하는 최소한의 식량과 생필품 구입비(Canasta básica)는 1,167페소다 2).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기아빈곤이라는 말 외에는 도무지 표현의 방법이 없다.

  실제로 멕시코 전체 인구 1억 1천6백만 명 중 2천3백만 명 이상이 가구 소득 전체를 식량소비에 사용해도 배고픔을 면치 못하는 기아빈곤자들이다 3). 멕시코인 다섯 명 중 한 꼴인 셈이다. 라틴아메리카 내에선 그래도 경제대국이라 불리는 멕시코에서 전 국민의 20%가 기아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들 외에 또 다른 3천 8백만 명 가량은 식량, 의복, 의료, 주거, 교통, 교육 분야에서 전반적 부족함에 시달리는 빈곤자들로 분류된다. 절대 빈곤자와 빈곤자를 합하면 멕시코 인구 절반 이상이다 4). 멕시코 전체 2,458개 시(Municipio) 중 32%인 796개 시에서 거주민 기아빈곤율이 50% 를 넘어선다. 기아빈곤을 포함한 빈곤자 비율이 절반을 넘는 경우는 멕시코 전체 Municipio의 88%에 이른다 5). 빈곤의 만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반정부 성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유포된 루머가 아니라, 멕시코 정부에 의해 공식 발표된 통계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암담해진다.

  이마저도 버거운데, 더욱 걱정스러운 사실은 기아빈곤과 빈곤자의 숫자가 최근 몇 년간 해를 거듭할 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2012년까지 멕시코 내 기아빈곤자의 숫자는 2,021만명에서 2,30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4년 만에 3백만 명에 가까운 멕시칸들이 소득이 있음에도 배고픔을 면치 못하는 기아빈곤자로 전락하였다. 기아빈곤을 포함하여 생활 전반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빈곤자의 숫자도 5,229만 명에서 6,135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4년 사이에 17.3%의 증가다. OECD와 G20 회원국,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라는 사실이 무색해진다.

  오래된 빈곤의 지속 혹은 심화는 또 다른 측면에서 경제위기의 단면으로 포착된다. 배고픔 앞에 가장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이다. 무상교육이라 한들,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교육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배고픔을 면하자면 가구 소득원을 늘려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1일 법정최저임금과 그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는 수 많은 멕시코인들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공부를 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앞에 강요된 포기일 수밖에 없다. 2013년 현재 15세 이상 멕시코인들의 평균교육연수는 8.6년에 불과하고 6) 6백만 명의 아동이 초등교육 조차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7). 절대빈곤 가구의 자녀들 대부분이 15세가 되기도 전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정부의 공식 통계가 제시하는 8.6년보다 더 짧아 질 것이다.

  절대빈곤으로 인한 교육기회의 제한 혹은 박탈은 절대빈곤의 지속과 심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한편 범죄의 증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멕시코에서 살인은 온 국토에 만연한 빈곤만큼이나 흔하다. 한꺼번에 수십 구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큰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백주대로에 한 두 명이 총에 맞아 죽는 일은, 물론 총에 맞아 죽은 이가 아주 유명한 정치인이거나 배우가 아닌 이상, 뉴스 축에도 끼지 못한다. 2006년 12월 이후 6년 간 펠리페 깔테론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6년간 13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다(정부는 6만 명이라도 주장하지만) 8). 그 중 오인사살이나 교전 중 유탄에 맞아 사망한 어린이만 1300명 이다 9). 전쟁 중이 아닌, 정상적인 나라에서 가능한 일일까 싶은 수치다.

  늘 그러하듯이, 현실은 통계가 말해주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마약과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과거 정부의 묵인하에 그들끼리 가지고 있던 질서가 무너졌고, 마약조직들 간에도 전면전이 치뤄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범죄자의 나이는 더욱 어려졌고 범죄의 양상은 더욱 비인간화 되었다. 그리고 살인은 일상화 되었다. 미화 300달러 정도면 청부살인에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숱하게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어지간한 사건이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수사는 기대하기 힘들고, '아마도 죽은 사람이 마약에 연루되어 있었을거야' 라는 사회의 암묵적 동의가 불문율처럼 강요된다. 뭐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고,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처처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이들 중 상당수는 마약과 상관없이 그저 누군가의 손에 건네진 200불 혹은 300불 정도 선에서 그들의 목숨값이 거래된 경우임을 부인하기 쉽지 않다. 한 사람의 목숨 값이 2-300불에 감히 비해질수 없는 일이지만, 절대빈곤 혹은 빈곤에 처한 젊은이들이 이런 기회가 아니고서는 절대 만져볼 수 없는 돈이라는 사실을 멕시코 사회는 씁쓸히 받아들이고 있다. 2006년 이후 불과 6년 새, 인구 10만명 당 살인율이 9.85에서 24.23명으로 급증하였다 . OECD 국가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1위다. '마약과의 전쟁'이 아니었으면, 과연 이 멕시코 사회가 작금의 현실 앞에 어디서 그들의 궁색한 변명을 찾았을까, 참으로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엔리께 뻬냐 니에또 대통령의 첫 연례보고는 원래 9월 1일 대통령실 소속 경호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Campo Marte에서 치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일 연례보고의 주 내용 중 하나인 교육개혁이 언급된다면, 이미 수일 째 멕시코 시티의 소깔로에 진을 치고 시위를 조직해가며 이에 반대하고 있는6,000 여 명 교육노동자 조합원(Coordinación Nacional de Trabajadores de la Educación)들의 거센 반발이 불을 보듯 환한 일이었다. 또한 이들의 반발이 그간 오랜 시간 불만을 억눌러 왔던 사회계층으로 퍼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지난 해 대선 기간 동안 엔리께 뻬냐 니에또에 반대하며 조직적인 시위를 이끌어낸 'Yo soy 132'와 정부가 말하는 소위 '무정부주의자'들이 소깔로에 진을 친 교사들과 합류하게 되는 상황이야말로 어쩌면 정부가 걱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모일 수 있는 일요일에서 하루를 살짝 빗겨 선 월요일로 첫 연례보고 일정이 변경된 것이다.

  멕시코 내에서 가장 가난한 주로 꼽히는 오아하까와 미초아깐에서 올라온 교사들이 멕시코시티의 차가운 일기 속에 장기간 노숙을 해가며 주장하는 바는, 새 정부의 개혁이란 것이 그간 충분히 힘들었던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는 커녕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는 거였다. 자신들이 받는 임금의 수준으로는 새 정부가 원하는 경쟁력의 기준을 도무지 갖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항 진입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하루에 1,500여 명의 승객이 비행기를 놓치기도 하고, 의회를 점거하여 국회의원들이 임시로 마련된 장소에서 회기를 이어가는 전대미문의 상황 앞에 이들의 폭력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들이 살아온 삶과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기에 한 달 여 풍찬노숙에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흩어지지 않고 군대처럼 움직이는가 하는 의문이 일기도 한다.

  계획과 달리 하루 뒤 늦게 대통령 관저에서 치뤄진 연례보고 가 있던 날 아침, 페소-달러 환율은 13페소를 훌쩍 넘어섰고 만 명에 가까운 교원노동조합원들은 공항 뿐 아니라 멕시코시티로 진입하는 고속도로와 방송국까지 점거하였다. 그 며칠 후 올해 들어 아홉 번째로 가솔린 가격이 상승하였고, 하룻 동안, 백주대로에 두 명의 국회의원이 총과 마체떼칼에 맞아 죽었다. 물론, 사건과 사고가 있었다는 뉴스 뿐, 그 이후 수사결과에 대한 뉴스는 전무하다. 수사결과에 대한 뉴스까지 전하기엔 아마도 시간과 지면이 부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같은 스펙터클한 사건사고도 일회성 뉴스로 쉽게 잊혀 지는데,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대통령의 연례보고 쯤이야, 관심도 없다. 내가 보기엔 최근 며칠 간 보도되는 사건 사고 하나하나가 충분히 빅뉴스인 듯 한데, 이들은 크게 놀라지도 않고 살아간다. 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인지, 위기가 위기인지도 느끼지 못하는 채 살아가는 것 같다. 대통령이 말하는 장밋빛 미래가 실현된다 한들, 그들 만의 리그일 것이라 굳게 믿고 살아가는 것 같다.

  

1) 멕시코 노동 사회보장부Secretaria de Trabajo y Previsión Social 산하 최저임금위원회Consejo Nacional de Salario Mínimo 통계자료. www.conasami.gob.mx

2) 멕시코 사회발전 정책위원회Consejo Nacional de Evolución de la Política de Desarrollo Social 통계자료.

3) 멕시코 통계지리청 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 y Geografía , 2013, Ingreso y gastos de hogares.

4) 멕시코 통계지리청, Ibid.

5) 멕시코 사회발전 정책위원회, op. cit.

6) 멕시코 교육평가위원회Instituto Nacional para Evaluación de la Educación.

7) Emir Olivares Alonso, 2013, "No puede ir a la escuela 6 millones de menores de entre 3 y 17 años", en Periódico La Jornada, 16 de abril 2013, p.47

8) Alfredo Méndez, 2012, Documentan 136 mil muertos por lucha al narco, más que en un país en guerra, en Periódico La Jornada, 11 de diciembre 2012, p.15

9) CNN México, 2011, 1300 menores han muerto por la guerra contra el narcotráfico desde 2006, en CNN Mexico 13 de julio 2011, citado en http://mexico.cnn.com/nacional/2011/07/13/1300-menores-han-muerto-por-la-guerra-contra-el-narcotrafico-desde-2006

10) INEGI, 2013, En 2012 se registraron 26mil037 homicidios, Boletín de Prensa Numero 28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