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세계경제와 칠레

  지금 세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진국 중앙은행이 세계시장에 투입했던 자본의 회수를 의미하는 양적완화정책의 축소와 이에 따른 후유증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양적완화정책의 축소는 양적완화정책으로 인해 낮아진 이자율로 인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들이 몰려들었던 신흥국 시장에서의 자본 철수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이는 세계 경제 특히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신흥국가들을 중심으로 경제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또한 그동안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공업국의 고성장과 이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성장을 지속하던 자원수출국가들의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러한 대외 환경 속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자원수출국으로서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던 칠레 경제에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지난 9월 3일 LG경제연구원의 한 분석에 따르면 칠레는 경제 기초체력이 취약하여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주요 신흥국 15개국의 통화승수, 환율, 물가, 산업생산, 주식가격, 수출, 교역조건 등 10개 주요 거시경제지표를 바탕으로 취약도를 계산한 이 분석에 의하면 칠레는 브라질,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경제 기초체력이 취약하여 "미국의 출구전략, 원유가격 상승 등의 외부 충격이 경제적 취약성과 맞물려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2012년 '브레이크아웃 네이션'의 저자로 신흥국의 위기를 예언한 모건스텐리 신흥시장 및 세계거시경제 총괄대표 루치르 샤르마는 2013년 초 칠레를 브라질, 인도, 남아공, 터키, 인도네시아 등과 함께 위기에 빠질 위험이 많은 나라에 하나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과연 이들의 분석대로 칠레 경제는 위기에 직면할 것인가? 칠레 경제에 대한 점검과 분석을 통하여 칠레 경제가 직면할 수 있는 향후 시나리오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칠레 경제에 대한 몇 가지 사실

  1970년대 중반 이후 칠레 경제는 수출 주도의 성장 정책을 펴오고 있다. 현재 제조업이 거의 전무한 칠레 경제에서 무역은 국내총생산을 기준으로 60% 그리고 수출은 35%에 달한다. 칠레의 주요 수출품은 전체 수출의 50-65%에 달하는 구리를 비롯하여 리튬, 몰리브덴, 금, 은 등의 광물과 와인, 과일, 연어 등 농수산물이 대표적이다.

  특히 구리는 칠레 경제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칠레의 구리는 매장량과 생산량 모두 세계 1위이다. 세계 생산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칠레의 구리 생산은 국내총생산의 20%를 차지하며 칠레 경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성장한 칠레의 경제성장률은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 확대로 인해 촉발된 구리에 대한 수요 증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례로 칠레 정부의 광산업 부문으로부터의 수입은 2000-2005년 사이 연평균 21억 달러에서 2006-2011년 115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현재 칠레는 구리 산업으로부터의 수입 증가와 건전한 재정 운영으로 인해, 빌려온 외채보다 받아야 할 채권이 더 많은 순채권국이다. 한편 칠레는 구리 가격이 높을 때 구리 수출로부터의 이익을 저축하였다가 구리 가격이 낮아지거나 정부의 초과 지출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국부펀드인 구리안정화기금(Economic and Social Stabilization Fund)을 운영하고 있다. 구리안정화기금의 규모는 2013년 7월 시장가격 기준으로 153억 7천 8백만 달러에 달한다.

국제구리가격과 칠레 경제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광물 수출 특히 구리 수출은 칠레 경제를 가늠하는 절대적 변수의 하나이다. 따라서 구리의 가격 동향은 칠레 경제의 현재 상태와 미래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이다.

<표> 국제구리가격 동향, 2008-2013 (출처: infomine.com)

  현재 국제구리가격은 상대적으로 하락한 가격이다. 즉 2011년 파운드당 4.5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금융위기 이후 칠레 경제 회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국제구리가격은 2013년 9월 19일 현재 2011년 고점에 대비하여 약 27% 가까이 떨어진 3.31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의 구리 가격은 파운드당 3달러를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한 칠레 경제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사료된다.

  한편 대표적인 산업재인 구리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세계 경제의 상황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구리 가격의 상승을 가져온 것은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에서의 수요 증가에 기인한다. 1998년 세계 구리수요의 10%에 불과했던 중국의 경우 2011년 기준으로 세계구리의 40% 가까이를 소비하며 세계구리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되었다. 칠레 경제에 있어서 중국 경제의 중요성은 칠레 구리의 수출 대상국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구리를 비롯한 광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칠레 수출의 절반은 아시아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다. 이중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이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한다. 이는 칠레 전체 수출의 16%를 차지하는 미국과 20%를 차지하는 유럽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비중이다. 따라서 칠레 경제는 미국 또는 유럽과 같은 선진국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칠레 경제성장률 목표인 4-5%대의 유지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의 하나가 중국 경제의 7% 이상 성장이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칠레 경제와 위기 그리고 정치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일부 위기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현재 칠레 경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건실한 거시경제적 기초를 유지하고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Economist 2013년 8월호). 무디스(AA-), S&P(Aa3), 피치(A+) 등 세계 유수의 신용평가기관은 칠레의 국가신용등급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전망도 안정적으로 보고 있다. 세계 34위이자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1위에 해당하는 칠레의 신용도는 중국(세계32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칠레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4-5% 사이에 있으며 2013-17년 기간에도 칠레의 장기성장률에 근접한 4.8% 정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Economist 2013년 8월호). 칠레의 공공재정은 흑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약간의 적자로 변모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건실한 편이다. 또한 페소화가 평가절하되고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지만 칠레 경제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다. 한편 Economist지에 따르면, 국제구리가격은 향후 4년간 비교적 안정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최근 칠레 구리 산업 부문에서 이루어진 투자의 확대는 향후 구리가격이 일정 부분 하락하더라도 칠레의 구리 수출 총액을 유지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에 기반한 농산물 수출은 관산물 부문에서의 수출 축소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외부 변수 외에 향후 칠레 경제에 영향을 끼칠 변수로는 2013년 11월에 치뤄질 총선을 들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중도좌파연합인 Nueva Mayoría의 Michelle Bachelet 전대통령과 우파연합 Alianza의 Evelyn Matthei 전(前)노동부장관이 겨룰 대통령 선거는 인기도가 높은 바첼렛 전(前)대통령이 유리한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만일 바첼렛이 재집권한다고 해도 경제정책 상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만 공산당을 포괄하는 새로운 중도좌파 연합의 등장과 지난 수년간 학생 시위 등의 형태로 끊임없이 표출된 교육 및 복지 분야의 투자 확대 요구는 세제 개혁을 포함하는 여러 정책 수단을 통하여 수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 범위는 바첼렛의 지도력을 비추어 볼 때 거시경제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요약컨데, 칠레 경제는 가능한 위기의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중국 경제의 급격한 동반 침몰과 같은 세계경제의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여진다. 물론 최근 칠레 거시경제에서 보여지는 부정적 측면(경상수지 적자 및 재정흑자의 축소 및 적자 가능성 그리고 통화가치 하락)은 상대적으로 빼어난 실적을 보여온 칠레 경제에서 위기의 징후들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징후들이 세계 경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예상치 못한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신용평가 기관의 평가는 물론 오랜 기간 칠레가 보여준 거시경제 관리의 능력과 성과 그리고 현재 칠레 경제의 기초 여건들을 비추어 볼 때 칠레 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빠질 가능성은 여전히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상에는 칠레의 탄탄한 민주주의적 정치 여건도 하나의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