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전북대교수・한국라틴아메리카 학회장)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성장
21세기 들어서면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지속적이고 빠른 경제성장을 보였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이같은 성장을 계속하였다. 경제성장 결과로 2011년 라틴아메리카 전체 경제규모는 5조 6천1백억 달러로 10년 전인 2001년의 2조 7백억 달러보다 2.7배 늘어났으며,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6.8%에서 8.2%로 크게 확대됐다. 그리고 2003년 이후 라틴아메리카지역에서 대략 7,300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경제성장을 보면서 2010.9.11.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유럽과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며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는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그 제목이 "라틴아메리카의 부상, 이제 라틴아메리카는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다(Nobody's Backyard, The Rise of Latin America)"라고 했다.
2008.5월 '유럽-라틴아메리카 정상회담'에서 후안 까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서 "닥쳐(Porque no te callas)"라고 소리 쳤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유럽에게 좌파이념이 지배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와의 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3.1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유럽-라틴아메리카 정상회담'에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두 대륙은 동등한 동반자간 전략적 관계"라고 얘기했으며, 헤르만 반 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라틴아메리카의 성공을 치켜세우고 "운명공동체(intertwined destinies)"임을 강조했다. 60%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스페인과 유럽지역 공공부채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일에 비해 라틴아메리카가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럽 지도자들의 언급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결국 유럽사람들은 양측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의 경제악화와 위기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주요 국가들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성장을 지속하던 라틴아메리카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2011년 4.4%에 달했던 라틴아메리카 경제 성장률이 2012년 3.2%를 기록하며 최근 10년 만에 처음으로 성장률이 하락했다. 라틴아메리카 주요국들은 2012년 수출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급락하고, 주가 하락, 환율 상승 등 금융시장도 크게 불안해졌다.
2013.5월 벤 버넹키 미국 중앙은행(Fed)의장의 양적완화 축소발언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유입됐던 글로벌 투자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라틴아메리카 주요국가의 통화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2013.5.1일 달러당 2.00헤알이었던 브라질의 헤알화가 9.1일에 2.27헤알로 11.3% 하락했으며, 멕시코의 페소화도 7.3%가 떨어지는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4개월 만에 평균 5.5% 하락했다. 이로 인해 유럽의 재정위기가 과거 빈번히 위기를 겪었던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2013. 9.13일 서울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코리아 인베스터 포럼'에 참석한 우고 사르미엔또(Hugo Sarmiento) 라틴 개발은행 최고재무책임자는 "대규모 자금 이탈에 따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통화가치하락은 '비정상'으로 올랐던 환율이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봐야한다"며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한국 기업과 기관투자가 등을 대상으로 '남미 세일즈'를 벌였다.
10여년간 급속한 성장을 이어오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리고 경제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과거 80년대와 90년대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경제 위기가 반복될까?
경제위기의 원인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은 유럽계 자금과 유럽시장으로의 높은 수출 의존도를 보이는 등 편중된 경제구조와 중국으로의 원자재 수출 둔화 등 유럽재정위기와 중국의 성장둔화에 따른 대외리스크로 경제가 악화되고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이에따라 투자환경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위기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첫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유럽의 금융부문과 연계성이 커서 유럽 재정위기에 취약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유럽은행에 대한 차입 비중이 높은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스페인 자금차입 비중은 45.6%에 달한다. 또한 브라질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중 34.8%, 아르헨티나 채권시장의 외국인 투자 중 58.8%가 유럽계다. 2012.3월 이후 그리스와 스페인으로 유럽재정위기가 확산되자 외국인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해 라틴아메리카 금융시장이 불안해졌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2001년 디폴트에 따른 낙인효과와 정책 불확실성 증대 등으로 금융불안 정도가 가장 높다.
둘째,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유럽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다. 유로존 위기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수출증가율이 급락하였다. 2011년 EU 수출 비중을 보면, 브라질 20.7%, 아르헨티나 16.4%, 멕시코 5.5%였다. 그러나 2011년 상반기 20∼30%대였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수출증가율이 2012년 1∼4월에는 각각 4.5%, 3.8%로 크게 둔화됐다.
셋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원자재 수출 비중이 60%대로 매우 높다. 따라서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가 악화되어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하락할 경우 충격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원자재를 대량으로 수입하던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국제시장에서 원자재 수요가 급감하고 가격도 하락했다. 2010년 브라질의 원자재 수출 비중은 64.2%이고 아르헨티나도 66%로 높은 수준이다. 멕시코는 NAFTA 발효 이후 북미로 제조품을 수출하면서 원자재 수출 비중이 25%로 다른 라틴아메리카 주요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주요 3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은 철광석, 대두 등 원자재가 대부분이어서 중국의 경기 위축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고질적 부정부패, 관료주의, 불안한 노사관계 등 비즈니스와 관련된 위험이 3국 모두 문제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불안한 노사관계, 관료주의 등으로 외국기업의 투자환경 리스크가 높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2012년 현재 191개의 수입규제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보호무역국가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멕시코도 마약범죄로 인한 치안이나 부정부패 문제가 많다.
향후 전망
유럽의 재정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화되가면서 유럽과 금융·수출 연계성이 큰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당분간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경제성장에 따른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져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나 재정위기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는 미국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멕시코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보다 안정적이다. 또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은 각국 정부의 추진력과 재정여건, 투자 유치 능력 등에 따라 국별로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브라질은 심해유전 개발과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 개최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투자가 경제의 모멘텀이 될 것이다. 브라질은 향후 3년간 490억달러를 들여 1만 km의 철도를 깔고, 600억 달러를 투입해 도심교통망을 확충하기로 하는 등 인프라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멕시코는 제조업 경쟁력이 강하고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수출이 받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약할 전망이다. 멕시코 역시 향후 6년간 고속철도, 항만, 공항, 정유시설 등 인프라분야에 3,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안드레스 벨라스코 전 칠레재무장관은 "열반경은 끝났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금융위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며, "상품생산들이 과거처럼 호황때 벌어들인 돈을 흥청망청 다 써버리지도 않았고, 민간 부채가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부채비율이나 달러화 부채가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위기와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때와 비교하면 낮다'는 점을 들어 '과거와는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2013.9.9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적자, 외환보유고대비 단기 대외부채비율, 급속한 신용증가율, 금융시스템 개방도 등 4가지 척도를 기준으로 26개 이머징마켓의 자본동결 취약성 지수를 산출했다. 그리고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로 자금유입이 끌날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국가로 터키를 꼽았다. 이어 취약도가 심각한 '레드존' 그룹에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가 남아공, 우크라이나와 함께 포함됐다. 멕시코와 칠레, 페루는 중간단계의 국가에 포함됐지만 주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위험한 국가군으로 분류되었다.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라틴아메리카는 여전히 불확실한 시장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