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오(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제도혁명당(PRI)이 2011년 7월 3일 실시된 3개 주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이번 선거는 칼데론(Felipe Calderon) 정부와 집권당인 국민행동당(PAN)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인 동시에 2012년 7월로 예정된 대선과 총선을 가늠케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특히 인구 1,500만 명이 거주하는 멕시코의 정치 1번지인 멕시코주 선거 결과는 그 상징성과 더불어 페냐 니에토(Enrique Pena Nieto) 현 주지사가 PRI의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PRI는 전통적인 텃밭인 멕시코주에서 62.5%라는 높은 득표율로 PAN(12.4%)과 제2 야당인 제도혁명당(PRD, 21%)을 제쳤다. 제2 야당으로 까지 위축되었던 PRI의 재부상은 이미 2009년 중간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서 확인되었기에 이번 선거 결과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좌파인 PRD와의 선거 연대에도 불구하고 PAN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구악으로 치부되던 PRI가 멕시코 정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PAN에 대한 민심이반, 내홍을 겪은 PRD의 대안 부재 등 정치적 요인을 차치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의 경제정책과 PAN 집권 11년간 경제실적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주된 요인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경제적 요인은 이미 2006년 대선에서 감지되었는데, PAN이 PRD를 박빙의 차이로 누르고 재집권했던 것이다.
경제적 요인이란 국민들의 힘겨운 삶, 잠재성장률 이하의 경제성장, 미래가 보이지 않는 국가경제로 지칭할 수 있다. 첫째, PAN의 친기업, 자유시장 경제정책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에 보다 주력함으로써 사회정책 및 친서민 정책에 소홀했다. 그 결과는 빈곤층의 확대로 나타났다. 1994년 페소화 위기이후 급증했던 빈곤층은 완만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줄어들었지만, 2006년을 계기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고, 최근 글로벌위기 후유증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멕시코의 국가사회정책평가위원회(Coneval)에 따르면, 의식주 및 교육, 보건, 교통 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빈곤층은 2006년 전체 인구의 42.6%에서 2008년 47.4%인 5,060만 명으로 590만 명이, 기본적인 먹거리를 충족하지 못하는 극빈계층은 13.8%에서 18.2%인 1,950만 명으로 510만 명이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경제성장률도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GDP 증가율은 1971∼2010년 연평균 3.4%, 1981∼2010년 2.4%, 1991∼2010년 2.7%, 2001∼2010년 1.7%로 낮아지고, 1인당 GDP는 1981∼2010년 연평균 0.5% 증가에 그치고 있다. 셋째, 세계 15위의 영토, 11위 인구(1억 1,230만 명, 2010.7), 14위 경제규모 및 12위 구매력(2009년), 경제대국인 미국의 접경국, BRICs를 창안한 골드만삭스가 2011년 2월 한국, 터키, 인도네시아와 함께 “성장시장(growth markets)"으로 선정한 멕시코의 미래를 국민들이 불신한다. 즉, 엄청난 발전 잠재력을 지니고도 BRICs와 같은 신흥시장의 리더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국민들은 좌절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경제 침체, 중국 등 경쟁국 급부상, 글로블 경제위기 발생 등 PAN 집권기간의 통제 불가능한 대외요인들이 경제난의 주범일 수 있기 때문에 대내적인 경제적 요인을 민심이반의 주된 요인으로 판단하는 것에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간 실시된 PAN의 경제정책들이 멕시코가 성장시장으로 발돋움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하는데 실패한 동시에, 서민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즉, 멕시코는 다른 신흥 경쟁국들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따르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늦게 출발한 경제의 글로벌화는 FTA 추진, 외국인투자 개방(2008년 석유산업) 등에서 한계를 보였고, 고부가가치 및 생산성을 갖춘 산업으로의 구조조정도 미흡했으며, 취약한 재정구조 개혁도 제한적이었다. 즉, 친기업 및 시장경제 개혁정책들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국민들을 압박하는 정책들이 쏟아졌다.
예를 들면, 재정구조 개혁은 석유산업에의 의존 축소, 조세징수행정 개혁, 세출합리화 등에 우선 집중해야 했지만, 2007년과 2009년에 시행된 세제개혁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간접세 과세기반 확충과 세율인상 등으로 국민들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1995년 부가가치세율 인상(10%→15%)이 2000년 선거 패배의 주된 요인이었고 현재도 PRI가 비난받는 주요 원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칼데론 정부는 서민생활 안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생필품 가격상승에 시장개입 억제라는 명분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비록 2008년에 철회되었지만 2007년 세제개혁 과정에서 유가보조금 철폐를 통한 가격인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교육노조(SNTE)와의 동맹 체결, 전력노조(SME) 와해 시도 등으로 PRD와 PRI의 지지기반인 노동계를 자극하고, 최근에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목표로 1970년 이래 개정되지 않은 노동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고용창출, 근로자 소득증대, 귀족노조 문화 개혁 보다는 고용 및 해고비용 축소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 경제일수록 임금보다는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는 구조로 발전해야 하는데, 임금 관련 비용을 조정하여 생산성 향상을 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PAN 정권의 주요 경제정책은 국민들로 하여금 과거 포퓰리즘으로 불리던 PRI 경제정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은 조합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통하여 지지층에 자원을 배분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기대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PRI는 2009년 중간선거 이후 국민이 지지하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2012년 집권 이후 중기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정책시행과 입법에 관해서만 정부 및 PAN과의 협력을 유지해 왔다. 따라서 2011년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노동개혁과 정치개혁, 그리고 추진될 예정인 세제개혁 등에 PRI는 민족주의, 실용주의, 자유주의라는 혼란스런 정체성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록 칼데론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되고, 2012년 집권 가능성이 높을지라도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면 PAN의 경험처럼 의회의 협력이 필요한 정책 추진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멕시코의 정치는 차기 정권에서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