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윤 (부산외대 중남미학부 교수)
최근 우리나라에도 큰 파장을 일으킨 브라질 산 부패고기 불법 유통사건의 원인이 고질적인 나눠 먹기식 부패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브라질의 일간지 이스따두 지 싸웅 빠울루는 지난 3월 22일, 전국 27개 주의 농축산물 검역 시설 가운데 최소한 19곳이 특정 정당에 장악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시스템 운영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보도하였다. 세계 최대의 농축산물 수출국인 브라질의 검역 과정에 상당한 이권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 때문에 검역 담당자가 주요 정당에 의해 임명되면서 부패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패고기 사건 이후 브라질 농업부는 육가공업체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위생검역 담당 공무원 30여 명을 해고하였지만, 단순히 공무원의 해고에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제공된 뇌물이 주요 정당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부정부패 사건 수사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인 차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이제 전국 주요 도시에서의 대규모 시위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부터 시작되어 질마 호우세피 전 대통령의 탄핵과 주요 정치인에 대한 부정부패 사건의 수사를 촉발시킨 브라질 사법 당국의 소위 ‘라바-자뚜’(Lava-Jato; 세차용 고압 분사기) 작전 수사는 이제 전직 대통령과 전, 현직 각료와 상, 하원 의원 등 83명에 대한 부패수사로 확대되고 국민의 96%가 ‘무제한 부패 수사’에 대한 지지와 시위를 계속하면서 브라질은 이제 성역 없는 전면적인 부패 수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브라질 사법 당국은 그동안 38 단계에 걸쳐 부패수사를 시작한 이래 260명을 기소했고, 연방법원은 125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이들에게 모두 1,317년 21일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우리 돈으로 3조 6천 370억 원이 넘는 국고환수 조처의 개가를 올렸었다.
브라질의 국영에너지회사 뻬뜨로브라스와 함께 정국을 뒤흔든 대형건설업체 오데브레시 그룹의 뇌물 스캔들로 시작된 브라질 부정부패의 현재는 가히 점입가경이다. 건설업체들이 뻬뜨로브라스에 장비 납품과 정유소 건설 등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뇌물을 제공한 사건을 조사한 ‘라바-자뚜’ 작전에는 오데브레시, OAS, 께이로스 가우바웅, 까마르구 꼬헤아 등 브라질의 주요 대형 건설업체들이 대부분 연루되었다.
특히 오데브레시 그룹은 전직 임원의 증언을 통해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정치권에 제공한 검은 불법자금이 4조원(33억 9천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임원은 오데브레시가 제공한 자금이 대부분 해외 건설사업 수주를 도와준 대가로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뇌물로, 이중 15~20%는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밝히며, 특히 불법자금 제공이 룰라 전 대통령 정부(2003~2010년)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지난 1944년 바이아 주 쌀바도르에서 창립되어 전 세계 26개국에서 활발한 기업 활동을 펴온 오데브레시 그룹은 건설 및 화학, 에너지 등의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번 부정부패 조장 혐의로 40년 전에 진출한 페루에서 남미대륙 횡단 고속도로 건설사업의 입찰을 따내기 위해 알레한드로 똘레도 전 페루 대통령에게 2천만 달러(약 230억 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조만간 페루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미국 언론은 오데브레시 그룹과 브라질 석유화학회사 브라스켐이 부정부패 조장 혐의로 35억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고 보도하였으며, 이 소식 이후 중남미 각국이 조사에 착수해 파나마와 페루, 에콰도르 등은 오데브레시 사의 공공입찰 참여를 금지하는 등 제재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73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 이미지에 큰 훼손을 입게 되었다.
오데브레시 사 전직 임원의 이와 같은 증언은 한편 부패 혐의로 기소된 이후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최근 정치 행보를 확대하며 2018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룰라 전 대통령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재판에서 부패 혐의가 인정되어 실형을 선고받게 되면 대선 출마가 어려워 질 수도 있으나, 룰라 전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전국 투어에 나섰으며, 오늘 7~9일에 열리는 좌파 노동자당(PT)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그의 대선 행보에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의회의 탄핵으로 쫓겨난 지우마 호우세피 전 대통령도 최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18년 브라질 대선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룰라가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였다. ‘좌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룰라 전 대통령은 최근 실시된 투표 의향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6.5%의 지지를 받은 극우 보수 기독사회당(PSC)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하원의원을 크게 앞지른 16.6%의 지지를 받아 재집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한편 브라질 대법원은 호드리구 자노 연방검찰 총장이 요청한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 즉 주제 싸르네이 전 대통령과 헤난 깔례이루스 전 상원의장, 호메르 주까 상원의원 등 83명에 대한 부패 수사를 허용하였으며, 이들은 브라질 현행법에 따라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현 집권당 우파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 소속이라는 점에서 미셰우 떼메르 현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공금 유용과 불법선거자금 수수 등의 혐의를 적용, 이들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호드리구 자노 연방검찰 총장은 “브라질 시민 사회는 국가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터무니없는 부패 관행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법과 제도가 올바르게 작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1990년대 이탈리아 반부패 수사의 영웅인 안토니우 디 피에트로 판사의 ‘마니 폴리테’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평가되며 브라질에서 ‘반부패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쎄루지우 모루 연방판사도 부패수사를 흔들림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최근 SNS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모루 판사는 부패수사에 대한 관심에 감사한다고 말하며, “부패수사는 전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관련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쳔 지는 지난해 3월, ‘모루 판사가 중남미의 오랜 부패 관행을 과거의 일로 돌릴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을 이끌고 있다’고 말하며 그를 ‘50인 지도자’ 명당에서 13위에 올려놓은 바 있다.
한편 브라질의 중앙단일노조(CUT)를 비롯한 6대 노조가 브라질 정부가 도입하려는 연금체계 개혁과 기업의 아웃소싱 허용 법안 추진과 관련해 이달 말 총파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각종 시민사회단체들은 연일 브라질 전국 주요도시에서 부패수사 지지와 확대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응답자의 96%가 ‘무제한 부패수사’를 지지하는 가운데, 90%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하더라도 부패수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난 주 일요일, 지난해 지우마 호우세피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바 있는 자유브라질운동(MLB)과 거리로 나오라(Vem pra Rua)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부패수사를 지지하며 고위공직자의 특권 철폐, 정치 및 사법 개혁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수도 브라질리아와 최대 도시 싸웅 빠울루를 비롯한 전국 90여개 도시에서 주도하였는데 이날 시위는 탄핵 확정 이후 거의 7개월 만에 최대 규모였었다. 이날 시위자들은 부패수사의 확대와 함께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고위 정치인과 공직자 등 기득권층의 특권 철폐, 정치, 사법 개혁 등을 주장하였으며 또한 미셰우 떼메르 대통령이 부패 의혹을 받는 자신의 측근들을 각료직에 임명해 부패수사를 피해 가려 한다고 강력히 비난하였다.
지난 2015년 이후 재정수지 악화 등을 이유로 국가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강등된 브라질이 그리고 고위 정치인의 뇌물 수수 등 고질적이며 만성적인 부정부패의 온상인 브라질 정치계가 이번 ‘무제한 부패수사’로 얼마나 이미지 개선을 이룰지 그리고 시민사회의 압력에 얼마나 굴복할 수 있을지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가히 대비되어 주목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