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국경 울타리의 설치 현황과 트럼프의 장벽 제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1월 27일 이슬람권 7개국 여권 소지자의 입국을 90일간 불허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뒤 일부 행정부 관리들의 시행 거부, 연방과 주 법원의 제동, 시민들의 반대 시위 등이 잇따랐다. 다양한 반발을 초래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누구라도 뚫기 어렵고 웅장하며 강력하고 멋진 장벽(wall)”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에 시동을 걸었다. 선거 운동 당시 트럼프는 “남쪽 국경에 뚫기 어려운 물리적 장벽을 건설할 것이고 멕시코가 그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국경 장벽의 건설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려는 트럼프의 열 가지 계획 가운데 첫 번째 순위를 차지하는 공약이었다.
연방 정부의 예산이 국경의 울타리(fence)나 장애물(barrier) 건설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였다.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캘리포니아 남쪽의 국경을 따라 14마일의 울타리가 세워졌는데 이는 샌디에이고와 멕시코의 티후아나(Tijuana) 사이의 위법적인 월경자(越境者)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국경의 울타리는 대부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6년 ‘단단한 울타리 법(Secure Fence Act)’에 서명한 뒤에 설치되었다. 그에 따라 특히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남부의 국경 653마일에 울타리가 세워졌다.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의 지휘 아래 2009년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까지 계획한 장애물의 설치가 거의 완료되었다.
그러므로 트럼프의 행보는 ‘단단한 울타리 법’의 재소환과 그에 근거한 국경 장애물 설치 작업의 재개인 셈이다. 트럼프는 위법적인 월경 사례뿐 아니라 마약 밀매업자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의 장벽과 유사한 형태로 콘크리트 석판을 이용해 높이 약 35-40피트(10.7-12.2m), 길이 1,000마일(1,600km)에 이르는 콘크리트 장벽의 건설을 제안했다. 장벽 건설 기획에 관여한 익명의 관리에 따르면, 국토안보부의 존 켈리(John Kelly) 장관에게 제출된 비공개 내부 보고서는 울타리를 26마일 연장하는 1단계 작업과 151마일을 추가하는 동시에 이미 설치한 272마일의 울타리를 교체하는 2단계 작업을 제안했다. 그럴 경우 모두 830마일에 걸쳐 장애물이 설치되는 것이지만, 여전히 2,000마일에 이르는 국경 전체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국경 곳곳에는 18피트 높이의 철제 울타리, 주름 잡힌 모양의 금속으로 만든 임시 차량용 장애물과 철조망뿐 아니라 30곳이 넘는 국경 순찰 시설, 25곳의 통관 수속 시설 등이 산재해 있다. 텍사스의 엘파소(El Paso) 동쪽의 국경에는 리오그란데 강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자연 장애물이 늘어서 있기 때문에 울타리가 전혀 없는 상태이다.
주요 쟁점
이제까지 장벽 건설 자체에 대한 이견은 물론 건설비용의 추산과 조달 방법, 사유지의 수용 또는 매입 필요성, 울타리냐 장벽이냐, 즉 장애물의 종류 등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이 대두되었다. 그 중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건설비용의 추산이다. 트럼프는 장벽 건설에 약 80억-12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최소 비용일 뿐이다. 다른 이들의 추산액수는 모두 더 높다. 상원의원 대표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을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는 장벽 건설에 120억-1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반면 번스타인 연구소(Bernstein Research)는 인건비, 토지 취득비와 건설비에 150억-2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고 계산한다. 또 <워싱턴포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그 비용은 25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며 ‘새로운 아메리카’ 재단의 선임 연구원 콘스탄틴 카카이스(Konstantin Kakaes)는 1,000마일에 이르는 장벽의 건설비용으로 270억-400억 달러를 추산한다. 2016년 10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그는 “서투른 계산이 트럼프의 국경 장벽을 떠받쳐준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따라 장벽을 설치하는 일이 현명한 방안인지,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인지 등의 문제는 제쳐 놓고 있다. 어쨌든 그것은 트럼프가 주장한 금액으로 실행할 수 없다.” 1) 그의 추정으로는 콘크리트 장벽에만 87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고 강철 매입과 인건비는 14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에 이를 것이다. 미국회계감사원(GAO)은 보행자를 막는 장벽의 건설에 마일 당 650만 달러, 차량용 장애물에 마일 당 180만 달러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추산한다. 앞서 언급한 국토안보부의 비공개 내부 보고서도 177마일의 장벽 건설과 기존의 울타리 272마일의 교체 등에 5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고 1,080마일을 추가로 건설할 경우, 즉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전체에 장벽이 설치될 경우 2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2)
미국 의회가 얼마나 신속하게 이런 요구에 부응할지는 불분명하다. 민주당 의원과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국경의 장벽 설치 방안이 불필요하다고 언급해왔다. 2016년 8월에 퓨 연구소(Pew Research)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1%가 멕시코와의 국경 전체에 장벽을 설치하는 방안에 반대한 반면 찬성률은 36%에 그쳤다. 2016년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2주간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더라도 미국인의 40%가 장벽 건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또 다른 19%가 아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절반이 넘는 미국인들은 국경 장벽의 건설을 지지하지 않으며 적극적인 반대자들의 경우 그 제안이 비현실적인 공상(空想)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건설비용의 조달 방법이다. 트럼프는 항상 멕시코가 장벽 건설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그의 바람대로 멕시코가 직접 이 비용을 지불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2016년 1월 말에 멕시코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멕시코는 장벽을 믿지 않는다. 거듭 말해왔지만 멕시코는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대응했다. 이미 2005년 12월 당시 멕시코의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조지 W. 부시의 유사한 계획에 대해 21세기에, 더욱이 2,000마일에 이르는 양국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것은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쌓겠다는 매우 고약한 발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민자의 국가’가 매우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뒤부터 트럼프는 미국이 대안적 방식을 통해서라도 멕시코로부터 장벽 건설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 어떤 방식도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지만, 트럼프는 미국에서 멕시코로 보내는 송금을 차단하고 그것을 장벽 건설비용 지불에 활용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미국이 멕시코로 보내는 연간 약 2억 달러의 원조구호비를 취소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2017년 1월 말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Sean Spicer)를 비롯한 트럼프의 비서진은 멕시코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20%의 국경조정세(border adjustment tax)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연간 100억 달러를 징수하고 그 방법만으로도 쉽게 장벽 건설비용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일종의 국경세가 고려해 봄직한 하나의 구상일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송금 관련 조치로는 두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2016년 4월에 트럼프는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 출신 이주민들의 자국 송금에 제동을 거는 데 ‘자금세탁예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멕시코은행(Banco de México)에 따르면, 미국 내 멕시코인들은 2016년에 257억 달러를 본국으로 송금했다. 그것은 2016년에 멕시코가 접수한 송금액의 95%가 넘는 수준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송금액에 대한 과세이다. 모든 송금 건수에 일정액을 부과하는 일률 과세나 합법적인 주거지를 증명할 수 없는 이들에게 훨씬 더 많은 액수의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의 구상은 해외 송금 시 요구사항을 늘릴 것이고 이주민들이 합법적인 지위를 증명하는 서류 없이 고향으로 송금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테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런 방안이 지니는 위헌 가능성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멕시코를 비롯해 좋지 않은 이력을 지닌 국가들의 주민을 대상으로 비자(입국사증) 발급 비용과 국경 횡단 수수료를 인상하는 방안이 많은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비용 조달 방법 외에도 트럼프가 제안한 새로운 1,000마일이 사유지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용(收用) 방식으로 매입하거나 소유주와 금전적 보상에 합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장벽이냐 울타리냐 역시 합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트럼프는 장벽의 설치를 주장하지만 현장의 전문가들은 울타리나 장애물의 설치를 원한다.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도 장애물을 언급한다. 국경 순찰대로서는 견고한 장벽이 야기하는 보안 문제에 대해 우려한다. 어떤 국경 순찰대원은 “견고한 장벽이 시야를 막아 국경의 건너편을 볼 수 없게 만드는데 당신이라면 그것을 원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장벽 건설 계획을 감독할 뿐더러 순찰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될 국토안보국의 부속기관 미국국경세관보호국(CBP)은 사실 콘크리트 장벽과 건너편을 관통해 볼 수 있는(see-through) 울타리 모두를 제안사항에 포함시켰다. 미국국경세관보호국이 예비입찰에 참가할 건설업체들에 통지한 시공계약 관련 내용에 따르면, 장벽의 최소 높이는 18피트(5.5m)이지만 계약을 따내려면 30피트(9.15m) 이상의 장벽 설계도를 제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2017년 3월 18일 CNN 등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원하는 콘크리트 장벽의 높이는 도저히 넘지 못할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국경세관보호국의 제안사항 중에는 최소한 미국 쪽에서 바라봤을 때 “장벽의 외관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고 색채를 비롯해 미적으로도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게 있었는데 이는 트럼프가 언급한 “웅장하고 멋진 장벽”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2005년 개정 이민법의 초점과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2017년 1월 말 반이민 행정명령에 맞선 시위와 반발에 앞서 2005년 12월 개정 이민법이 하원에서 통과되었을 때에도 유사한 선례가 있었다. 당시 개정 이민법은 연방 정부에 700마일에 이르는 국경 울타리나 장애물을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몇 가지 규제 조항을 마련했기 때문에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 법의 통과를 독려하는 가운데 상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2006년 3월 말부터 몇 주에 걸쳐 가두시위가 펼쳐졌다. 예컨대 2006년 3월 25일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약 50만 명이 참여해 개정 이민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개정 이민법은 ‘불법 이주자’를 막기 위해 경찰과 군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하고 여러 업체들의 고용에 대해 더 엄격하게 통제할 것을 연방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또 국경 통제뿐 아니라 이미 미국에 불법적으로 이주한 수백만 명에 대한 처리, 즉 합법화나 추방 논의, 그리고 미국 기업들이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노동 인력의 입국을 위해 합법적으로 제한된 통로를 마련하는 문제, 달리 말해 이른바 ‘초청노동자(guest workers)’ 프로그램의 실시 등을 포함했다. 초청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동안 임시로 법적 지위를 보장받도록 되었는데, 이런 초청노동자 프로그램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대표적인 전례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멕시코 정부 간에 체결된 협정에 따라 1942년 8월부터 1964년까지 운영된 ‘브라세로(bracero)’ 프로그램이었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은 합법적인 임시 농장노동자 임대 기획으로서, 협정과 미국 정부의 통제에 따라 미국에 이주한 멕시코 출신 농업노동자들은 전시 미국의 노동력 부족을 메워줄 ‘구원의 손길’이었다. 22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450만 명 이상의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의 농장과 철도 관련 노동에 합법적으로 고용되었다. 철도 브라세로 프로그램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중단되었지만, 농업노동자 프로그램은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 보고서의 제출과 각계의 비판에 직면해 1964년 양국 정부가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고 미국과 멕시코 간 순회 노동과 이주의 경향을 확립시켰다.
제2의 초청노동자 프로그램은 원래 2000년이나 2001년에 시행될 것으로 관측되었으나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었다. 하지만 2004년 말 재선이 확정된 뒤 조지 W. 부시가 멕시코의 비센테 폭스 대통령과 이주민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의 공동 추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재조명받게 된 것이었다. 불법 이주자 문제의 해결 방안은 현재보다 2005-2006년에 더 민감한 관심사였을 듯하다. 2005년 무렵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인들은 약 2,400만 명에 이르렀고(2010년의 공식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3,179만 명) 그 중 400만 명 이상이 불법 체류자로 추정되었다. 2003-2005년에 매년 50만 명 정도의 밀입국자들이 체포되었는데 매일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이들은 대부분 멕시코 출신으로서 그 추정치만 해도 1,500명에 달했다.
미국국경세관보호국은 감시 카메라의 영상, 족적과 쓰레기 등 일부 흔적, 지역 주민들의 보고 등을 근거로 밀입국자들의 전체 숫자를 추산해왔다. 2016년 미국 서남부에서 체포 건수는 408,000건에 달했고 2015 회계연도(2014년 10월-2015년 9월)에 국경 순찰대는 밀입국 시도자들을 체포하거나 돌려보내는 데 성공하는 비율이 약 81%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3년 초당파적인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국제 정치 문제 연구 기관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성공률은 40%-55%에 지나지 않았다. 또 다른 연구 기관인 방위분석협회(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는 약 2백만 명이 밀입국을 시도한 2000년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해 2015년에는 약 20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고 밝혔다.3) 국토안보부는 2017년 3월 초에 앞선 2개월 간 국경에서 체포된 이들의 숫자가 44% 하락했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2012 회계연도의 시작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최근 들어 국경 체포 건수의 거의 절반이 현재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텍사스의 최남단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리오그란데계곡국경순찰지구(Rio Grande Valley Border Patrol Sector)’로 알려진 그 지역에서는 2016년 회계연도 국경 체포 건수의 46%가 발생함으로써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체포 건수가 가장 많이 발생했던 애리조나의 투손(Tucson) 부근을 제쳤다. 애리조나의 남쪽 국경에 설치된 울타리가 밀입국을 줄이는 데 상당히 기여했지만 동시에 더 동쪽으로, 즉 텍사스를 통한 월경(越境) 사례를 증가시킨 셈일까? 장애물이 설치된 지역에서 체포 건수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국경 울타리가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감소에 다른 요인들이 작용했을 수 있지만, 1990년대 초 샌디에이고 부근에 울타리가 설치된 뒤 체포 건수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샌디에이고 부근에서 체포 건수가 줄어들면서 동시에 동쪽 국경, 즉 애리조나의 투손 부근에서 체포 건수가 급증했다. 울타리 작업이 애리조나의 남쪽 국경으로 확대되었을 때, 체포 건수는 그곳에서도 하락했다. 물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불황이 심각해 경제적 기회가 줄었을 때에는 체포 건수가 절반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
국경 장벽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직까지 양국 간의 잠재적 긴장이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NAFTA)의 개정이나 재조정, 나아가 폐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이 협정 아래 현재 연간 5,84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상품들이 관세 없이 국경을 넘고 있다. 블룸버그가 편집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멕시코의 대미 수출액은 2015년 멕시코 국내총생산의 26%를 차지했다. 또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인들의 송금 총액은 관광 수입을 능가할 정도이며4) 2015년 멕시코 국내총생산에 약 2%를 덧붙였다.5) 무역과 송금의 하락에 따른 혼란은 당연히 멕시코 경제에 큰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기업 역시 수익 하락의 가능성이 적지 않고 2013년을 기준으로 1,01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대(對)멕시코 투자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트럼프의 장벽 또는 울타리 설치 계획은 미국우선주의의 실제이자 현실태일 수 있으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구호와 잘 어울리진 않아 보인다. 더욱이 그것은 밀입국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나 대다수 국민이 그다지 국경 장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와도 동떨어져 있다. 자국의 안보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장벽을 쌓아올리겠다는 트럼프의 선택이 실현된다면, 그 결과물은 안전과 위대함의 유산이라기보다 포용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비호감의 표지판이자 일방적이거나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불쾌한 상징으로 남게 될 것 같다.
------------------------------------
1) https://www.technologyreview.com/s/602494/bad-math-props-up-trumps-border-wall/ (2017년 4월 8일 검색)
2)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4326912/Trump-wants-build-30-foot-high-wall-Mexican-border.html (2017년 4월 8일 검색)
3)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17-trump-mexico-wall/ (2017년 4월 8일 검색)
4) 손혜현, 「트럼프 행정부의 중남미 정책과 중남미 질서의 변화 가능성」, IFANS 주요국제문제분석 2017-08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7), p. 12.
5) https://www.bloomberg.com/graphics/2017-trump-mexico-wall/ (2017년 4월 8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