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이미 저유가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데 더해 현재 베네수엘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극심한 경제침체와 빈곤과 범죄가 난무하는 상황에 정치적 혼란이 겹쳐서 매우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출발점은 2015년 12월이다. 이 당시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야당(MUD)이 승리하여 여소야대 의회가 되었다. 그 후 야당은 마두로 대통령을 끌어내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 투표를 정부 여당에 요구했다. 국민투표 지지 서명운동도 진행되었으나 정부(선관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이를 거절한 이유는 서명 청원서가 일부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2016년 5월 국민소환 투표를 요구하는 대규모의 거리시위가 발생했다. 이 시위는 2002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시위대와 경찰의 무력충돌도 일어났다. 야당 세력에 의한 과격한 시위가 지속되었던 이 시기는 브라질의 지우마 대통령에 대한 의회 탄핵의 움직임의 시기와도 맞물린다. 그리고 2017년 1월 9일, 베네수엘라 의회는 국민소환 투표의 성사가 여의치 않자 마두로 대통령을 불신임 의결했다. 그러나 헌법적으로 베네수엘라는 의원내각제 국가가 아니었으므로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것은 국민 즉 국민투표뿐이다.
현실적으로 정부와 여당은 몇 년째 계속되는 야당과 지지 세력의 다방면의 파상적 공세를 겪고 있다. 야당 세력의 정치적 힘은 상당부분 국내외 미디어의 도움에 기대고 있는데 이런 도움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펼쳐지는 여 야 세력 사이의 결정적 정치적 대결의 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야당의 정치적 공세의 중심에 엔리케 까쁘릴레스 등 야당 지도자들의 정치권력 획득욕구가 강하게 놓이면서 날카로운 정치 공세가 무디어 졌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결정적 순간에 정치적 힘이 응집되지 못하는 이런 맥락의 배후에는 다양하고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오직 차베스 혁명에 반대하는 명분 하나로 뭉쳐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야당세력에는 2002년의 실패한 쿠데타를 지지했던 정치세력도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2014년의 야당세력에 의한 폭력적인 시위에 이어 2016년에도 과격시위가 지속되자 소위 친 차베스 진영의 반격이 있었다고 보인다. 이렇게 마두로 정부는 여당세력의 전략적인 맞불 시위와 함께 야당의 탄핵 공세를 정치적으로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된 중요한 정치적 명분중의 하나는 너무나 심각한 식료품 및 의약품품귀 등의 민생문제 앞에서 지나친 정치적 대결이 여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지적은 좌파세력으로서 야당에 합류한 <사회주의 공세>(Marea Socialista)지도부도 인정하고 있다. 식료품 등의 공급부족에 대해서 정부가 ‘지역 식료품 공급 위원회’(CLAP)를 통해 일반국민에 대해 특별 배급을 하고 있으나 가구 당 필요량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일부 빵 공장 등이 판매 분량을 속이는 등의 부정행위에 대해서 정부가 한시적으로 국유화 조치 등의 대응을 하면서 단속하고 있다.
현재 야당세력 안에서는 총체적으로 국민소환투표도 마두로의 퇴진도 지방선거도 모두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외 언론 미디어를 통한 정치 공세에 있어서는 야당 세력이 성공하고 있지만 국내 정치지형에서의 헤게모니 확보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에서 최근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국제기구에서 강한 정치적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예를 들어,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의 정치적 공세에 야당이 함께 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다름 아니라, 2017년 3월 중순에 미주기구 사무총장인 루이스 알마그로는 베네수엘라 정부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야당 즉, 반대자들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고 따라서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베네수엘라를 미주기구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앞으로 일 년 정도 남은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당겨한 달 이내에 치러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국민소환투표가 성사되지 않았는데도 야당세력은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주지사 등을 선출하는 지방선거는 2016년에 치르기로 되어있었지만 정치적 혼란 때문에 연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미주기구 사무총장의 보고서는 작년에도 있었지만 미주기구 대부분의 나라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번에도 미주기구 내부에서는 사무총장의 보고서를 승인하지 않는 나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와 코스타리카는 베네수엘라 축출의 제안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내에서는 3월 21일에 약 90명의 야당의원들은 베네수엘라가 비민주적이라는 상기 보고서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제출했고 야당이 다수인 베네수엘라 의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3월 22일 차베스 진영의 의원들은 항의하며 의회를 보이코트하고 있으며 대법원이 이미 상기 결의안을 무효 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의원들은 의회가 대법원의 명령을 경멸하고 있다고 의회의 회기를 보이코트하고 있다. 왜냐하면 작년에 대법원은 세 명의 야당 의원들이 선거운동 당시 매표의 부정혐의가 있다고 의원 활동 금지명령을 내렸지만 이들은 이런 대법원 결정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당선을 무효로 하였으므로 다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베네수엘라 사태를 다루는 국내외 미디어가 제대로 조명하고 있지 못하다.
친 정부 의원들은 3월 21일의 의회 결의안이 매우 무책임하고 위헌이라고 비난했다. 마두로 대통령도 의회의 결의안을 비판하며 베네수엘라 국내문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거부한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미주기구 내에서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열린 비상총회에서 미주기구 상임위원회는 지속적으로 베네수엘라 정부가 야당과 대화할 것을 결의하고 상기 사무총장의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남미의 여러 정치 문제에 대해 중재하고 싶어 하는 바티칸도 여 야 사이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베네수엘라를 지지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많음을 의미한다. 4월 1일에는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의 외무장관들도 베네수엘라의 국내 정치 상황을 들어 베네수엘라의 메르코수르 정회원국 지위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항의했다.
최근 대법원은 의회의원들이 계속해서 법원의 결정을 경멸한다면 법원이 의회의 입법 활동을 대신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야당출신의 의회의장은 법원 판결문을 찢는 행동을 했다. 심각한 경제위기와 정치위기가 진행되면서 마두로의 퇴진을 야당이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여당은 위기 때마다 친 차베스 진영의 시위대들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리를 메우는 전략으로 간신히 이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친 차베스 진영의 반격에는 2014년의 야당세력에 의한 유혈 희생이 있던 대규모 거리 시위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사회학자인 마리클렌 스텔링은 보고 있다. 아무튼 세 개의 서로 다른 야당은 2018년 대선을 위한 야당연합(MUD)의 후보 경선에 나설 예비후보로 각각, 엔리케 카프릴레스, 엔리 라모스, 레오뽈도 로뻬스를 내부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현재 2014년 수 십 명의 희생을 가져온 유혈 반정부시위의 주동 혐의로 감옥에 있는 극우 정치인인 레오뽈도 로뻬스는 경선에 나설지 불확실하다.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의 결정적 국면은 2018년의 대선에서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질지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이미 마두로에 대한 정치적 탄핵의 국민투표는 물 건너갔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여 야 사이의 대치전선은 격화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무튼 최근의 라틴아메리카 정치지형이 좌파에서 우파로(예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전체적 흐름이 바뀌어 가는 국면에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부는 아직 남아있는 신발안의 돌멩이 같이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좌파도 좀 더 유연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현재의 극심한 정치, 경제위기를 벗어나 평범한 베네수엘라 시민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고 안정되기 위해서는 우파의 공격이라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거부할 것이 아니라 성찰할 것은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속적인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차베스가 내세웠던 “21세기 사회주의”가 이데올로기적 담론 수준에 머물고 보다 전략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에 실패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합리적 경제정책과 이에 수반한 사회정책의 실패이다. 이점을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좌파적 지식인들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농업, 식품 유통업을 포함하여 베네수엘라의 전반적 산업생산 구조를 개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회정책에 있어서도 일시적으로 고 유가에 기댄 것 말고 지속적인 부의 재분배의 기초적 구조를 탄탄히 만들지 못했다.
[참고문헌]
Rachael Boothroyd Rojas, "Venezuela's Legislative Opposition Back Application of OAS Democratic Charter", http://venezuelanalysis.com/print/12997(2017.3.24출력)
"Venezuela suma nueva victoria diplomática en la OEA", http://www.telesurtv.net/news/(2017.3.27출력).
Marcelo Pereira, "El sueño terminó“, http://rebelion.org/noticia.php?id=224817(2017.4.2출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