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소장 (루소폰문화연구소**)
건설, 엔지니어링, 석유화학 분야에 걸쳐 직원수 12만 8000명을 거느리고 총 458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브라질 국적의 재벌그룹 오데브레쉬치(Odebrecht)가 주도한 뇌물 스캔들의 전모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브라질은 물론이고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대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4월 15일자 온라인판 이자미에 따르면, 마르셀루 오데브레쉬치 전 회장을 비롯한 17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플리바겐(유죄인정 조건부 감형 협상)을 통해 뇌물 공여 사실을 진술했다. 이 진술에서 언급된 수뢰 정치인 수는 브라질 전체 정당 35개 중 26개 정당에 걸쳐 무려 415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브라질 정계에 핵폭탄급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세상 종말적 고발'로 불리는 이번 진술에서는 특히, 지우마 호세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페르난두 콜로르, 주제 사르네이 등 4명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미셰우 테메르 현 대통령도 수뢰 관련자로 언급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외에도 전현직 장관, 주지사, 상, 하원의원들의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테메르 현정부는 물론이고 브라질 전체 정치판에 대대적인 물갈이마져 예상되는 상황이다.
작년말 오데브레쉬치는 파나마, 멕시코, 도미니카 공화국을 비롯한 중남미 10개국과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2개국을 포함하는 총 12개 나라의 정계 주요 인사들에게 100여 건에 달하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목적으로 총 7억 8800만달러에 상당하는 뇌물을 공여했고, 이를 통해28억달러의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을 미국 법무부에 인정했다. 이에 따라 뇌물 관련사건으로 사상 최대 액수인 35억달러의 벌금을 브라질(80%), 미국(10%), 스위스(10%) 등 3국에 내기로 합의한 바 있다.
오데브레쉬치 스캔들의 특징 중 하나는 오롯이 거물급 정치인들을 뇌물 공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정계 주요 인사들을 매수함으로써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대형 공공사업을 수주하고 심지어 회사에 유리한 법규를 제정하도록 각국의 수뢰자들을 조정했다. 또 다른 특징은 그룹 계열사와 각국 법인마다 뇌물을 전담하는 부서를 두고 전산시스템을 분리시키고 뇌물 공여를 위한 은행을 인수하는 등 철저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비밀리에 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2014년 브라질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가 연루된 뇌물 스캔들 관련 수사(일명 '라바자투')로 오데브레쉬치 부패 경영의 전말도 하나씩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마르셀루 오데브레쉬치 회장을 비롯한 77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구속 수사로 자백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오데브쉬치의 부패한 검은 손이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들에게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오데브레쉬치 스캔들에 연루된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10개국에 이르고 전현직 대통령 등 거물급 정계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사진 출처: www.las2orillas.co)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오데브레쉬치 스캔들에 연루된 중남미 국가는 알파벳 순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에쿠아도르, 과테말라, 멕시코, 파나마, 페루,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주엘라 등 10개국이 확인됐고 쿠바와 온두라스 정치 인사들도 뇌물을 받았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어 중남미 관련국은 총 12개국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 알레한드로 톨레도전 페루 대통령, 바렐라 전 파나마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 전 콜롬비아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이 연루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작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은 오데브레쉬치가 막대한 대선자금을 자신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틴아메리카는 공공사업 수주에 따른 크고 작은 뇌물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해왔다. 오데브레쉬치 뇌물 스캔들은 라틴아메리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가 체계적으로 대형화, 다국적화된 사례로 분석된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패는 뇌물 공여자에게 합법적이고 공정한 경쟁 없이 독점적인 이익을 몰아주는 불공정한 경쟁구조를 낳아 불필요한 경비를 발생시켜 국가에 경제적인 손해를 끼칠 수 밖에 없다. 뇌물을 받아 축재한 소수의 부패 정치 엘리트들이 권력을 집중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 정경유착적 부패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정경유착이 낳은 부패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위 그래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최근 수 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하락한 반면, 정치에 무관심한 비율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그래프 출처: www.latinoamerica.org)
해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경제사회 발전도를 조사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라티노아메리카는 2016년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어떤 정치 제도를 선호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을 겨우 넘는 54%가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재작년 설문조사의 56%보다 낮아진수치다. 반면 정치 제도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답한 사람은 작년 20% 에서 올해 23%로 늘어났다. 이는 최근 수 년간 라틴아메리카를 뒤흔들고 있는 대형 부패 스캔들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데브레쉬치 스캔들은 라틴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뇌물 스캔들로 인해 브라질은 물론이고 중남미 국가들이 겪는 대외적인 이미지 실추와 정치적 경제적 손실 규모는 산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대하다. 하지만 이번 부패 스캔들 수사에 관련국들이 적극적으로 공조에 나서면서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 하겠다. 현재까지 관련 재판으로 모두 150여 명이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고 정경유착이라는 정치적 관례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이번 뇌물 스캔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러길 기대한다.
---------------------------------
* 오데브레쉬치: 국내 언론에서는 발음 편의상 '오데브레시'로 표기하고 있음
**루소폰문화연구소는 포르투갈, 브라질, 앙골라, 모잠비크 등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루소폰문화권 9개국에 대한 체계적인 융복합 연구를 통해 정책개발 및 자문, 콘텐츠 개발 및 번역출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이트주소 www.lusophonestudi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