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베네수엘라 정치 지형의 현재 국면은 복합적 위기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올해 12월에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파 야당으로의 정권교체와 체제 교체까지 이루어질지 전망하고 있을 정도로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낮다. 그러나 정권교체 가능성은 아직 애매하다. 왜냐하면 2015년 현재, 과거에 가장 높을 때는 약 40%를 웃돌기도 했던 야당진영의 지지율이 겨우 32%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총체적 위기국면을 반영하여 마두로 정부의 지지율은 20%에 머물고 있다. 과거에 차베스 정부의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넓은 의미의 차베스 체제를 지지하지만 현재 마두로 정부의 구조적 개혁을 주장하는 ‘독립적' 세력이 약 28%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1999년 이후의 차베스 체제가 만들어낸 자생적 ’대중권력‘ 덕분이다. 따라서 우파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런 차베스 혁명의 동력 약화의 핵심적 이유에 대해 특히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 효율성 부족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정부 고위급의 내부 토론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비판적 좌파 지식인인 데니스는 차베스 정부가 지속적으로 반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2002년에서 2003년의 극우파에 의한 차베스 축출의 쿠데타와 석유공사의 경영진과 노조 간부들에 의한 사보타지 파업 등의 첨예한 대결국면에 비해, 2005년 또는 2006년에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울 때, 이미 이념적으로 급진적 변혁의 정점을 찍고 그 이후에는 급진적 변혁의 실천도 부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시작은 좋았지만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급진적 실험(예: 노동자 공동경영, 조합운동 등)이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데니스는 약 2012년부터 독점적 다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원유 수익의 점유에 여당과 정부안의 부패한 관료와 군부 일부가 연루되어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부패 연결의 고리는 바로 ‘외환 통제’에 있다고 한다. 외환 통제는 소수의 금융 독점세력에게 외환 도피 등의 방법으로 엄청난 특혜를 부여했고 이런 과정에서 관료들도 부패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정부의 금융 외환정책의 실패에 차베스가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한다. 스티브 엘너에 의하면, 차베스 정부가 원유산업 등의 국유화 등 민족주의적 경제주권과 소수 과두 세력의 통제와 인프라 건설, 그리고 예를 들어, 중국과의 경제협력의 발전 등에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지만 실제로 농업을 포함한 대중의 수요를 채울 식품 산업 부문의 생산의 증대는 이루지 못했다.

데니스는 차베스가 이렇게 부패관료들에게 휘둘린 이유는 차베스가 군인 출신이었고 2002년 쿠데타 진압 후 무엇보다 충성심을 가장 중요시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 담론에 대해서도 큰 신뢰를 보이지 않고 차베스를 권위주의적인 ‘보나파르티스타’라고 평하는데 이는 엘리트 지식인 특유의 관념적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데니스에 의하면, “차베스 혁명은 80년대 중반부터의 대중의 저항과 반란에서부터 연원한다. 그리고 차베스 혁명의 이데올로기는 매우 복합적인데, 사회정의, 국가(민주주의)의 재구성, 인민의 헌법제정 권력의 인정,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주권 확립, 대중권력의 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대중권력의 출현을 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외되고 배제되어왔던 기층 대중의 요구를 2002년부터 수용하고 집단적 주체로서의 대중권력의 출현을 통해 국가와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실천한 차베스 혁명을 그렇게 권력 상층부의 움직임만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차베스 생존 시기인 2010년부터 저명한 좌파학자들부터 차베스의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토론 부재에 대한 비판 또는 경고는 있어왔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수직적(관료적) 의사결정과 권력의 집중을 가져오는 경향에 맞서 민주적 참여의 대중적 요구에 기초해야 하는 서로 모순적이고 역동적인 상황에 있다. 그런데 2010년 12월부터 새로운 정치지형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새로운 수권법의 통과로 의회권력이 약화되고 있고 이는 정치적 논쟁과 공공영역의 축소를 가져오고 있다. 그리고 2010년 9월의 총선에서도 차베스 지지세력 이었다가 현재는 야당이 된 ‘모든 이를 위한 나라’당(PPT)의 득표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야당세력이 투표의 52%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베스가 실질적으로 진 것이다. 또한 2009년의 선거법이 비례대표와 소수세력의 대의를 제약했고 선거구도 수정했다. 그 결과 여당인 ‘베네수엘라 통합 사회주의당’(PSUV)이 의회 다수를 점하고 있어도 카라카스 시장은 야당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야당은 제쳐두고 오랫동안 차베스를 지지했던 사회세력도 현재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인상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야당이 일부 기층 대중에게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2010년 12월의 여당 핵심부의 내부 문건에 의하면 가장 큰 문제는 집단적 리더십의 부족과 토론과 논쟁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야당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고 그들이 외부적으로는 정책 프로그램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베네수엘라를 다시 신자유주의 체제로 끌고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급진적 민주주의는 실제로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더욱 더 참여폭의 확대와 논쟁의 개방과 제안의 복수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수직적(관료적)의사결정과 권력집중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Lander, 2011).

현재 베네수엘라의 정치지형을 독점 금융자본과 결탁한 부패한 관료세력, 그리고 대중의 자기-통치를 실험하는 대중권력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로 돌아가려는 우파세력 이렇게 세 개의 정치세력 사이의 긴장과 투쟁의 관계로 보는 시각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부정부패와 관료적 비효율성의 문제는 베네수엘라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정치에서는 거의 상수이다. 2013년 차베스 사망 후, 베네수엘라는 마두로의 카리스마 부족과 유가 하락과 외환 통제로 인한 식품 등 기초 생필품의 인플레 등 경제 위기와 거리 시위 등 우파의 정치 공세와 국내외 주류 미디어와 미국정부의 공격적 비판 등 복합적 위기 국면에 직면해있다. 차비스모(차베스주의)로 불리는 차베스 체제의 사상은 유지되고 있지만 차베스 개인의 독특한 언술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리더십이 사라진 지금 마두로 개인에게 권력은 이양되었지만 그 권력이 새롭게 확장되지 않는 구조적 위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1998년 이후의 차베스 체제의 가장 큰 성과는 민주주의를 급진화 시키는 ‘대중권력’의 형성이다. 라틴아메리카는 16세기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식민지시대에도 그리고 19세기에 독립하여 근대국가로 출발한 이후에도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적이 거의 없다. 극소수의 대지주와 국가로 이루어진 ‘근대국가’가 대부분의 하위주체(원주민, 아프리카계, 하층 메스티소)를 ‘배제’하였고 배제된 이들은 그들만의 공동체적 ‘자연국가’로 이분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풍부한 원자재를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경제구조가 거의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대-소득’체제에서 ‘자본-소득’체제로 바꾸는데 대지주와 정치권력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대-소득 체제는 베네수엘라를 이해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베네수엘라에서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치고 그로인해 사회정책 또는 공공정책이 위축되어 가난한 대중이 사회경제적으로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중은 오래전부터의 그들의 고유한 ‘공동체적’ 삶의 방식과 집단적 주거의 ‘장소’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연대했다. 다시 말해, 차베스 등장 이전에 즉, 베네수엘라가 1990년대 말에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 모델에서 새로운 좌파 실험인 차베스 혁명으로 변혁되기 전에 이미 1980년대부터 소외되고 배제된 대중에 의해 집단적 주체인 ‘동네평의회’가 조직되었다. 예를 들어, 집 없는 가난한 주민들이 기본적 인권으로 집단적 주거권을 요구하는 ‘도시토지위원회’(CTU)가 80-90년대 내내, 자생적 사회운동으로 존재했다.

차베스 정부는 대중이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 출현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소위 ‘대중의 자기통치성’의 실험을 하였다. 예를 들어, 2002년부터 도시 빈민의 집단적 주거권의 인정을 법적으로 보장한 “도시토지위원회”의 제도적 실천을 들 수 있다. 이런 실험이 차베스 혁명의 장기 목표인 “21세기 사회주의”의 실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의미에서 차베스혁명은 좌파 혁명이다. 왜냐하면 샹탈 무페에 의하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최종승리를 하였다고 하지만 좌파의 목표가 되어야 할 유일한 대안은 ’급진민주주의‘여야 하고 민주정치를 재사고 하는 것은 매우 긴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급진민주주의를 이념 지향적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차베스가 1982년 최초의 비밀운동 조직을 만들 때부터 현재까지 넓은 의미의 차베스 체제를 지지하는 것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운동세력이라기보다 행상 등 비공식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1년-2004년의 차베스 정부의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농촌에 살던 빈민대중은 베네수엘라가 1920년대부터 석유가 발견되면서 1930년대부터 시작하여 주로 1950-60년대에 도시로 집단적으로 이주하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집단적으로 가난한 대중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면서, 이들이 근대성과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 불법적으로 국공유지와 사유지의 빈 토지를 점유하면서 빈민가 또는 슬럼가인 ‘동네’를 중심으로 그들만의 고유한 ‘영토’를 공간적, 사회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1980-90년대에 빈민 대중은 자기들 스스로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임을 인식하고 집단적 사회적 주체로 출현한다.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그들의 토지를 지키기 위한 오랜 투쟁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가짐으로써 그들 각자의 삶이 비록 힘들고 가난하더라도 ‘인간적’일 수 있었고, 따라서, 서로 연대하며 집단적 주체로 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