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부산외대 중남미학부 학부장

중남미에서 부정부패는 이념이나 정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풍토병이다. 좌파 정권에서부터 우파 정권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많은 정권들이 최근에 사법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거나 언론으로부터 부패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멕시코에서부터 과테말라,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공금유용, 뇌물수수, 마약조직 및 다른 범죄조직과의 유착 등이 이 지역 지도층이 저지르는 부정부패의 일부 형태이다.

과테말라에서는 전직 부통령의 수행비서가 주도한 관세 횡령 사건으로 인해 로사나 발데티 부통령이 부패 혐의로 구속되었고,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국민들의 사임 요구로 오토 페레스 몰리나 대통령이 이 나라 역사상 최초로 부패혐의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칠레에서는 이제 막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미첼 바첼렛 대통령이 자신의 장남의 부패 혐의로 국정수행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 바첼렛 대통령은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면 개각을 단행했고 강력한 부패 방지대책을 발표해야만 했다.

브라질에서는 집권 여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유력 정치인, 공무원, 기업가들이 개인적인 부를 축적할 목적으로 국영석유회사의 공금을 유용한 부패 사건이 적발되어 현직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면서 현 정부가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파나마에서는 작년에 퇴임한 리카르도 마티넬리 전 대통령이 재임 시 저지른 공금유용 혐의를 받고 미국에 도피중이다.

멕시코에서는 부정부패 의혹이 대통령 가족과 현 정부의 실세 장관에게 쏠리고 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부인인 앙헬리카 리베라와 루이스 비데가라이 카소 재무부 장관이 현 대통령이 주지사 재임 시 다량의 관급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자로부터 호화 저택을 구입한 것을 두고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중남미에서 부정부패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단지 작금의 부패 사건들은 예전과 달리 은폐되지 않고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근에 대량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부패의 문제가 지금처럼 중남미 전역에서 동시에 제기된 적이 없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부정부패가 모든 시민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직접적인 주범이라는 인식의 확산으로 인해 이 지역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2014년에 나온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에 의하면 칠레와 우루과이를 제외한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은 부패지수 순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역내에서는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순으로 부패지수가 높게 나타났다. 국제 불법자금 조사기관인 글로벌 파이넨셜 인테그리티(Global Financial Integrity)에 따르면 중남미는 매년 부정부패로 인해 이 지역 총생산의 3%에 해당하는 1,429억2,000만불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에서 부정부패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국가는 멕시코와 브라질이다. 최근에 나온 연구에 의하면 2003년부터 2012년 사이에 멕시코와 브라질은 각각 부정부패로 인해 5,000억불과 3,000억불의 손실을 본 것으로 조사되었다.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들은 부정부패의 문제에 있어서도 유사한 역사적 궤적을 갖는다. 이 지역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기원은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 식민지와 본국과의 물리적 거리로 인해 세금징수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하여 부패행위들이 저질러졌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에 노예무역과 식민지 사이에 이루어진 거래에 대한 본국의 엄격한 규제로 인해 생겨난 암시장에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한 것도 그 기원으로 볼 수 있다. 매관매직이 시작된 것도 식민지 시대의 일로,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관직은 국민에게 봉사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관행이 생겨났다. 독립 이후에는 각 국가들이 공화제의 기틀을 닦는 과정에서 각종 선거와 대규모 관급공사 인허가 과정을 둘러싸고 새로운 형태의 부정부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 진행된 중남미의 재민주화과정과 함께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증가하면서 이 지역 모든 국가에서 내부적으로는 물론 외부적으로도 보다 엄격한 감시체계가 도입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부분의 국가의 공적 부문에서 시행중인 회계설명 책임성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는 일부 국가에서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아직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이 지역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이 한 몫을 한다. 루이스 이그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당이 의회를 부패시켰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중남미 정치문화는 부정부패에 관대하다며 “모두가 다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역시 멕시코의 부정부패 문제에 대책을 묻는 언론에 대해 부정부패는 일상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에 척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답변을 한 후 국민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부정부패는 중남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을 가라지 않고 감시와 제도가 느슨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중남미 정치 지도자들이 부정부패를 문화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이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20세기 중반 이후에 중남미를 지배했던 독재정권의 비호 속에 독버섯처럼 자란 부정부패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언론자유의 신장, 시민단체의 감시, 투명한 회계 책임제도의 도입으로 많이 근절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제 국민들도 언론의 폭로와 SNS를 통한 정보공유를 통해 각국의 지배층이 저지르는 부정부패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발생하는 부정부패 행위는 많은 국가에서 혹독한 정치적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과테말라에서의 페레스 몰리나의 실각, 브라질의 질마 후세프 대통령과 칠레의 바첼렛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급락 등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우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지방, 국가, 대륙 전체가 협력하여 처벌하려는 공조체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지금까지 중남미의 고질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는 부정부패와 무처벌 관행의 타파가 정부가 아니라 국가의 우선과제가 되어야 하며, 중남미 각국 정부도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행한 보여주기식 반부패 정책은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는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된 새로운 현상은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를 들 수 있다. SNS의 확산과 함께 그 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뇌물수수와 권력남용에 대해 강력한 처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부패 연루 의혹을 받았던 대통령의 사임에까지 이르게 한 과테말라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 역사상 최초로 부정부패에 연루된 대통령을 사임시킨 이 사건 역시 평범한 한 가정주부의 SNS를 통한 정보 공유로부터 시작되었다.

과테말라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민들 역시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지 않고, 정권의 퇴진을 요구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는 중남미 각국의 국민들의 일상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의식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고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 데 이제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중남미에는 이 지역 특유의 가족중심주의 문화로 인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지배적이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부정부패 척결은 사회구성원 전체가 매일 싸워야 하는 투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