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한국외국어대학교)
지난 해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된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의 여파가 정치권으로 확산되며 브라질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일명 ‘자원의 저주’라고 불리는 원자재의 국제가격 하락에 따른 경제성장 둔화, 복지정책 추진을 위한 재정확대정책에 따른 재정건정성 문제가 위기의 주요인이라 한다면,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싼 정·재계 부패 스캔들과 지난해 대선 부정 시비, 정부회계 부실 등은 정치적 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경제위기를 가중시키는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재의 브라질 상황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위기의 중첩적인 악순환을 구조화시키는 것이 부패라는 점은 현재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로 드러난 브라질 부패구조의 특징을 주목하게 한다.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의 성격
일반적으로 부패는 ‘사적이익을 위해 공적 권력을 남용하는 것’으로 정의되어진다. 이와 같은 정의가 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영역-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기업 내 혹은 기업 간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을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각각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규범이나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부패한 행동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부패가 갖는 은폐적인 속성과 적발되었을 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공범적 속성은 부패의 다양한 유형과 정도를 측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적인 규범 레짐 내에서 부패는 주로 상거래에 있어서의 뇌물공여나 정치인 또는 공직자의 뇌물수수 스캔들에서 보여주는 범법행위를 규정하고 퇴치하는데 집중되어 왔다.
페트로브라스의 뇌물스캔들은 초기에 대형건설업자들과 페트로브라스 일부 임원들의 뇌물공여 및 수수라는 부패양상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비록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 자체는 자산가치 및 주가 폭락 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처벌의 대상이나 이후 부패방지의 대책은 비교적 명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트로브라스가 브라질 국영 에너지회사이며 노동자당 정부가 페트로브라스에 심해유전 독점개발권을 주면서 유전 설비의 80% 이상을 브라질산으로 사용하도록 해 각종 불법행위가 가능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는 점, 또한 임원들이 받은 뇌물의 상당한 금액이 정치권의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단순 뇌물스캔들이 아닌 구조화된 정치부패의 양상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이 스캔들은 노동자당 소속 상원의원 13명과 하원의원 22명, 주지사 2명을 포함해 모두 50여 명의 정치인을 조사대상에 올리고 전, 현직 대통령의 부패 연루 가능성을 증대시켰으며 하원의장을 기소하는 초대형 부패사건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연루된 사람들과 불법적 자금의 규모가 매우 크고 국민의 불만과 불신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현직 대통령의 탄핵 요구로 이어지면서 부정적인 정치적 효과는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은 본질적으로 비즈니스와 국가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브라질 국가자본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구조적 부패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경제부패가 정치부패에 의해 가능해지고 정치부패가 경제적 부패를 심화시키며, 부패를 퇴치해야 할 주체가 대상이 되고 처벌 대상과 방식이 광범위해지게 된다. 부정적 효과 또한 개별적인 권력 남용의 여파를 넘어서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손상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패현상은 브라질만의 문제인가?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지지수(CPI) 순위에 따르면 180여 개 국가들 중 브라질은 평균적으로 60-70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부패수준을 가진 국가로 인식된다. 물론 역사적으로 부패 문제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없고 거의 모든 국가는 반부패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 또한 다양한 형태의 부패스캔들이 발생했으며 그때마다 반부패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규모의 부패 스캔들, 구조적인 부패현상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브라질의 구조적 부패가 갖는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반부패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브라질 부패의 구조적 특성
사실상 브라질의 경우는 부패에 대한 인식과 책임성(accountability)에 대한 인식의 단절을 명확히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즉, 부패현상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정도, 반부패를 위한 정책과 제도들, 국민적 합의 수준이 비교적 높은 반면, 부패한 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응하는 부패행위에 대한 책임성의 정도가 낮다. 실제로 한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대다수가 부패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지만 막상 자신이 공적 영역에서의 직책을 가지게 되었을 때 부패한 행동으로 이익을 취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0%에 이르기도 했다. 때문에 종종 책임성의 부재로 인해 정치시스템에 대한 불만이나 좌절이 때로는 단순히 정치가 부패했다는 인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부패를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특정한 부패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반부패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모호하고 불특정하게 부패가 심하다고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포괄적인 반부패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항상 반복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먼저 브라질의 부패가 갖는 구조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브라질은 대통령이 의제결정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가지지만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의회, 법원, 미디어 및 여타 공정영역의 역할 또한 상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정책결정과정에서의 권력 독점 정도가 낮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주로 연립정부에 의해 유지되는 정권은 특정 정당 또는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제한한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수직적 독점은 정치시스템 내에서 미약하거나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공직자의 재량권은 브라질의 정치부패에 독특한 형태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행정부처는 일단 예산이 정해지면 예산 내에서 지출항목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갖기 때문에 지출 결정을 둘러싼 상당한 정도의 재량권을 갖는다. 공직에 대한 임명권에 있어서도 연방정부 내 이천 여 명에 가까운 인원에 대한 재량권이 주어진다. 예산 내의 지출과 임명에 대한 재량권은 취약한 정당체제와 더불어 정치부패가 발생할 여지를 넓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브라질의 개방명부식 비례대표제 시스템 하에서 명목적으로 속해 있는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인들은 정당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개별 정치인들의 대표성이 강조되는 경향을 갖게 하고 개별 정치인들은 자신의 조건에 맞춰 정치적 노선을 전환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스템은 정치인들에 대한 보상과 뇌물의 기회를 넓히고 이에 따른 부패 네트워크를 구조화하기가 비교적 쉽다. 룰라 정부 하에서 대규모 부패스캔들로 논란이 되었던 멘살라웅 스캔들(mensalão scandal)은 이와 같은 정치적 요인이 어떻게 정치부패로 연결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의 민주화 및 경제안정화, 건전한 거버넌스의 담론은 개별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재량권을 계속 축소시키고 정부 지출을 투명하게 할 것을 대내외적으로 요구했고 이들 부분은 점차 개선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서 반복적으로 부패스캔들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조사와 반부패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원인 중 가장 큰 요인은 부패에 대한 책임과 이것이 강제되는 방법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브라질 국민들은 부패로 탄핵을 당한 콜로르 전대통령을 포함해서 부패혐의로 기소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실질적인 형사적 처벌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브라질 사법 시스템이 모든 상고가 완료될 때까지 피고가 처벌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재판을 무한정 끌면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제도적 허점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반부패를 위한 정책적 노력도 부패가 발생했을 때 이를 조사하는 것에 치우쳐 있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나 효과적인 처벌의 방법 모색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다. 주로 범법행위의 여부나 관련 인물들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는 부패 방지 대책들은 부패행위를 정치적인 동기를 갖는 권력싸움의 부분이나 보다 큰 부패의 한 측면을 강조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뿐 부패한 행위를 저지른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에게 근본적인 정치적 책임성을 강제하기에는 한계를 갖는다. 이는 유력자가 버티다가 결국은 감옥에 가지 않고 피자를 주문하고 즐긴다는 “결국 모든 것은 피자 파티로 끝”(New York Times, 2015/8/9)나거나 범법행위가 발견되었을 때 전체적으로 조사는 진행하지만 덜 신속하고 덜 효과적이며 덜 직접적인 법적 처벌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패의 가능성은 “부패를 권력의 독점(M)과 공직자의 재량권(D)의 합에서 책임성(A)를 제한 값(C=M+D-A)”(Klitgaard, 1988)에서 나온다고 할 때, 브라질의 경우는 권력의 독점과 공직자의 재량권의 문제보다는 부패 발생에 대한 책임성의 문제가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브라질의 부패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패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로 잃은 것과 얻을 것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의 여파는 브라질 경제에 악재가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부패 및 비리를 브라질 경제의 주된 문제로 지적했고 IMF는 9월 발표한 분기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올해 브라질 GDP가 -1%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1월 내놓은 0.3% 성장 전망에서 크게 하향 조정된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호세프 대통령이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개편을 단행하고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과 관련된 자신의 연루설을 단호히 부정하고 있지만, 호세프 정부의 지난해 정부회계가 재정법을 위반했으며 재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법자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최고선거법원의 조사내용 등으로 탄핵에 대한 압박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과 연관된 부패문제는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을 더욱 어렵게 하고 정치적 혼란과 불신을 확대하면서 대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주도적 국가로서의 위상과 특히 좌파정권들의 정책적 모델로서의 위상이 손상되었다. 이와 같이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과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정치부패 양상은 브라질의 구조화된 부패문제를 확연히 노출시키며 가시적인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브라질을 장기간 뒤흔들고 있는 이번 사건은 브라질의 구조적 부패 고리를 약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 현직 하원의장의 기소와 전, 현직 대통령들의 부패 연루에 대한 의혹 조사까지 매우 광범위하고도 심도있는 조사와 이에 따른 엄격하고 확실한 처벌이 이루어진다면, 또한 이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면, 그동안 브라질의 부패를 구조화하는데 가장 큰 요인이었던 부패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강제하는 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아가 부패가 특정한 정부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이전의 정부부터 이어지는 부패 네트워크의 형태를 가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하고, 때문에 특정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나 사회개혁 프로그램에 한정되지 않는 반부패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페트로브라스 뇌물스캔들로부터 촉발된 일련의 사건들은 거대한 부패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브라질이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부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Segalaug David. 2015. “Brazil’s Great Oil Swindle,” 「New York Times」 2015년 8월 9 일자(검색일 2015/10/2)
Blake, Charles H. & Stephen D. Morris, eds. 2009. Corruption & Democracy in Latin America. University of Pittsburgh Press.
Klitgaard, Robert. 1988. Controlling corrupt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그 외 다수 신문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