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대학교 외래교수 남종석

 

 2000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기초 체력은 점차 개선되어 왔다. 2008년 위기가 왔을 때, 이 경제가 보여준 모습은 1980년대나 90년대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꾸준히 경제가 성장해 온 결과 세계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국가 디폴트와 같이 상황으로 경제가 악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2008년 위기 이후 이 경제의 평균성장률은 2010년 6%로 회복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속되어 왔지만 여전히 OECD 경제권의 평균 성장률보다는 높게 나타났었다. 그러나 아래 그래프에서도 보듯이 라틴아메리카의 성장률 감소폭은 OECD 국가들의 그것보다 더 높게 나타났었다. 2012년 이 지역 전체 경제성장률은 2.9%였으나 2013년 2.5%로 낮아졌으며, 2014년에는 OECD 국가들의 평균성장률보다 더 낮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 1>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들과 OECD 국가의 경제성장률 추이

Source : OCDE(2014), OECDE conomic Outlook,Vol.2014/1 ,OECD Publishing.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붐을 이끌었던 것은 수출시장에서의 원자재 가격 상승이었다. 2001년 미국 IT 호황이 붕괴되면서 침체에 빠졌던 세계경제는 연방준비은행(미국 중앙은행: 이하 연준)의 경기부양정책과 모기지의 증권화(파생금융상품)로 인해 세계적인 부동산 붐을 형성하며 호황으로 반전되었다. 더불어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고성장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엄청난 시장을 제공했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의 흐름은 석유가격을 비롯하여 철광, 구리 등 공업용 원자재 가격을 높였으며, 이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수출을 순조롭게 만든 것이다. 이 지역 경제에서 수출은 안정적인 경제성장의 틀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흐름은 2008년 금융 붕괴 이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세계경제는 반짝 경기상승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2010년 이후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묘사했다. 미국은 3조4천억 달러를 투입하여 자국 은행들의 부실채권들 구매했지만 좀처럼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았다. 유럽 주변부 경제는 재정위기로 가라앉았고, 일본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중국만이 홀로 고성장을 유지해온 것이다.

 세계경제의 침체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주력 수출품이었던 석유와 공업용 원자재의 가격을 하락시켰으며 교역 조건의 악화를 초래했다. 경기침체로 석유 수요는 감소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석유를 증산하고 미국의 세일 가스 생산이 확대되면서 가격 인하폭은 더 커졌다. 공업용 철과 구리 가격 역시 주요 수입국인 아시아 국가들의 경기침체로 하락하는 경향이 일정기간 지속되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 인하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에너지 가격이나 공업용 원료의 가격은 당분간 하락 국면이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시일이 좀 더 필요한 시점이다.

 단기에 있어서 라틴아메리카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연준의 금리정책 정상화이다. 2008년 금융 붕괴 이후 연준은 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해 왔다. 제로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이 되지 않자 달러를 찍어서 시장에 공급했다. 제로금리 정책 이후 금융정책은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달러를 찍어 낸 것이다. 기간도 2009-2014까지 무려 5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결과 세계시장에 미국 달러들은 엄청나게 공급되었다. 새로 찍어 낸 달러는 실물경제로 이어져 산업투자를 촉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화 된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흘러들어 갔다. 라틴아메리카에도 대량의 단기 자금이 유입되어 자산효과(부동산, 주식 등의 가치 상승)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는 반짝 경기 상승을 의미할 뿐이었고 화폐공급 증가가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미 연준은 2014년 후반기부터 시장에 지속적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시장 주체들에게 이에 대비할 것을 요청했다. 2015년 초에도 연준 의장 옐렌은 금리인상에 대해 ‘아직은 인내하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금리인상 가능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었다.

 만약 미국이 금리정책을 정상화하고, 풀려진 유동성을 다시 회수하게 되면, 라틴아메리카에 유입되었던 단기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외환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경제권은 전반적으로 외환보유고가 안정되어 있고 경상수지 균형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 2> 경상수지 적자, 자본유입(% GDP 대비, 2010-2013 평균)

Sources: CAF and ECLAC data.

 

 <그림 2>에서 보듯 지난 4년간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국제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해외직접투자에 큰 관심을 두어야 했다. 경상수지 적자를 매우기 위해 외국으로부터 해외직접투자와 자본유치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자금 유입은 연준의 금리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주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주엘라의 상황은 조금 더 심각하다. 이 세 국가는 달러대비 평가절하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달러 유출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브라질의 경우 2014년 명목 환율이 20.1% 절하되었으며, 아르헨티나는 2014년 18% 절하되었다. 베네주엘라는 정책적으로 자국 화폐인 볼리바르(bolivar)를 절하시켰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국제자본시장 접근이 어렵게 되었다. 석유 가격의 하락으로 베네주엘라에 대한 국제자본시장의 우려가 커져가면서 국채 이자율은 26%까지 치솟아, 세계최고가 되었다.

 그러나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미국경제가 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시아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유럽이 여전히 매우 취약한 상황이지만 미국은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는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같이 미국과 시장이 통합된 국가들은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지난 2~3년간 국제적인 수요부족과 자국 내 투자부족으로 경기 하강이 뚜렷하게 나타났던 칠레와 페루는 확장적인 재정, 금리 정책을 통해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국면이다. 또한 유럽에서 조금씩 경기회복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도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단기적인 변동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수출은 제품 경쟁력에 의존하기보다 1차 상품의 수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석유나 공업용 원료, 곡물가격 등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1차 상품 수출이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를 성장을 지속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이래로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꾸준한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데에는 이와 같은 구조적이 제약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중위소득 국가의 성장의 덫”이라고 표현한다. 저발전 국가가 초기 산업화 국면에서 농촌 노동자와 같은 저임금 노동자의 풀을 활용하고 에너지나 자원이 뒷받침 될 경우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성장단계를 지나 중위적 수준의 산업화에 도달하면, 저임금, 1차 산업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나타난다. 더 이상 저임금을 통한 수출경쟁력이나 천연자원을 통한 지대추구만으로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단계에 필요한 것은 노동생산성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투자와 양질의 노동력이 공급이다. 제조업 부분에서도 숙련도가 높은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산업구조가 고도화될 수 있다.

 

<그림 3> 지역별 기업 활동에서 숙련노동부족을 느끼는 기업 비율

Source: Enterprise Surveys (2012), World Bank, Washington DC.

 

 <그림 3>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제대로 찾지 못해 곤란을 겪는 비율을 실증 조사한 자료이다. 지역 간 비교에서 보듯이 라틴아메리카의 기업들은 숙련노동자의 부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양질의 숙련노동자가 공급되지 않음으로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양질의 노동력 공급은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질 문제이다. 중등교육을 확산시키고 고등교육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여 노동력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을 때 이와 같은 문제가 해결된다.

 교육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더불어 국민 다수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는 국가 내 불평등의 약화시키며 경쟁력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는 교육 인프라 투자의 확대를 통해 보다 통합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취해야 하며, 국가 경쟁력도 향상시켜야 한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경제성장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과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