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

임두빈(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지난 4월 19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3일간에 걸쳐 열렸던 제5회 미주기구(OAS) 정상회담이 폐막되었다. 비록 쿠바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공동선언문 채택 없이 회담을 마무리 지었지만 중남미 정부지도자들에게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미국은 그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베네수엘라,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정상들과 우호적인 만남을 통해 관계개선의 기회를 열게 된 생산적인 회담으로 평가하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함으로써 생기게 된 “천재일우”라면서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재회를 촉구해왔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과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간에 냉각되어 온 관계를 가능한 한 빨리 개선시키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그에 준하는 고위급 정부인사의 방문을 추진시킬 것과 중남미 특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그와 함께 셀수 아모링 브라질 외무장관은 미 정부가 미국-중남미 관계개선을 위해 2008년 5월 남미대륙 12개국이 참여하여 출범한 남미연합국가의 중요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렇듯 이번 정상회담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수장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브라질이 21세기 좌파열풍에 휩싸인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속내는 무엇일까?

먼저 과거로 거슬러 라틴아메리카 좌파열풍의 이전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가 세계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정부를 출범시켰을 70년대 당시 라틴아메리카는 좌파 열풍에 휩싸였었다. 같은 시기에 페루와 볼리비아 역시 ‘좌파 민족주의’ 노선으로 뛰어들었다. 페루의 후안 벨라스꼬 알바라도장군은 외국인 석유회사들을 국유화시켜버렸고 농지개혁 및 언론통제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페루는 대외적으로 쿠바와의 재결속을 피하면서 미국에 다시 다가서는 전략을 폈고 볼리비아의 호세 장군 역시 페루가 제시했던 모델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실질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변화는 칠레의 사례였다. 그러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창출된 정권일지라도 미국의 이해에 부합되지 않는 정권의 말로가 그랬듯이 칠레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 역시 1973년 미국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1990년 꼰쎄르따시온 정권이 등장할 때까지 실현가능한 사회주의 개혁은 중단되었다. 현 칠레 미첼 바첼레트 정권은 경제안정, 생산성 향상, 교육과 과학기술부문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칠레의 경제성장은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가장 높은 연 평균 5%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고 그 결과는 각종 사회지표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페루의 경우, 1980년대 시작된 민주화 이후 1990년 이후 후지모리를 중심으로 경제와 정치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후지모리는 국회를 폐쇄하고 재집권을 위해 헌법을 수정하는 등 부패의 전형을 보였다. 페루는 지난 시간 동안 “좌파 민족주의” 노선과 “민족주의의 허물을 쓴 정치적 부패” 사이에서 역사를 낭비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볼리비아의 경우는 다시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 인상을 보여준다. 2006년 대통령에 당선된 에보 모랄레스는 사전 통지도 없이 외국기업에 군대를 보내 가스와 석유산업 등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감행했다. 모랄레스 정권의 이러한 정책추진 과정에서 볼리비아에 수십억 불을 투자했던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사가 최대의 피해기업이 되었다. 볼리비아의 부존자원에 대한 국유화는 1937년과 1969년에 이은 세 번째로 시도였다. 그러나 과거에 진행되었던 두 차례의 국유화 시도 역시 정작 볼리비아 자국민들의 생활여건 향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으로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또한 모랄레스 정권은 토지분배를 통한 농지개혁 등 경제 전반에 대한 국가통제를 강화하고 원주민 권익을 극대화 하는 사회주의 개헌안을 의회에 통과시켰는데 그의 정신적인 멘토는 바로 다름 아닌 베네수엘라의 유고 차베스 대통령이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1960-1970년대 군부독재시기를 거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는 21세기에 들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 차베스는 과거의 까우디요들처럼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국내정치 안정 및 인접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이용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라페엘 꼬레아,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떼가가 바로 그 동맹선상에 있다. 이번 6월28일 온두라스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추방된 셀라야 대통령 역시 베네수엘라의 원조를 통해 ALBA(미주를위한 볼리바르 동맹)에 가입한 바 있다.

사실, 오늘날 브라질은 좌파, 우파와 같은 과거의 낡은 대립구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브라질의 시가에서 볼 때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정권들은 “책임감 있는 정부”와 “포퓰리스트 정부”로 나눠진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안정을 위한 정책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낮아졌고 외국투자는 증가했다. 남미 포퓰리스트 정권은 좌파적 수사법을 통해 담론을 채색하는 공통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차베스와 모랄레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키르츠네르가 이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

좌파정권이 과거 체게바라나 아옌데의 좌절된 이상을 실현할 것인지 아니면 소모적인 “좌파민족주의 노선”과 “포퓰리즘”사이에서 다시금 역사를 낭비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