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모(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이 책은 식민시기 파라과이 지방의 과라니와 스페인계 정복자들 사이에 발생한 문화접변(acculturation)을 인종과 정치·경제, 종교, 사회조직, 생활양식이라는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1982년부터 2년간에 걸쳐 총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 ‘오래된’ 연구물을 되짚어 보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라틴아메리카의 주요한 문화권을 형성했던 과라니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브라질의 아마존 유역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초원지대에 까지 분포하고 있는 과라니는 고지대에서 문명을 형성했던 아즈텍과 마야, 잉카지역의 원주민들과 비교하여 국내에 그와 관련된 소개나 연구물이 부족한 상태이다.

다른 하나는 이 저서가 파라과이 이외에 현재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지역을 아우르고 있어 식민시기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저자인 브라니슬라바 수스닉(Branislava Susnik)은 1920년 구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무렵인 1947년에 “자유의 슬로베니아인(Eslovenos Libre)”이라는 집단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로마 대학에서 수메르-바빌로니아 역사 고고학과 발틱어를 비롯한 아시아의 소수언어와 문화를 전공했으며, 비엔나 대학에서는 우랄-발틱어와 민족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고국의 류블랴냐 대학에서는 역사학과 선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그녀의 첫 연구는 파라과이와 인접한 아르헨티나의 국경 도시인 포르모사(Formosa)에 있는 또바(Toba)의 언어였다.

그녀가 과라니 연구의 전문가가 된 것은 민족학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1951년 아르헨티나에서 파라과이로 다시 이주하면서 부터였다. 이 박물관은 철학자인 안드레스 바르베로(Andres Barbero)가 과라니 문화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 정치가들의 지원을 받아 그의 소장품과 수집한 유물을 바탕으로 1929년에 설립되었다. 그 후 1934년 박물관장으로 부임한 독일계 민족학자인 막스 슈미트(Max Schmidt)가 세상을 떠나면서 1946년에 민족학 박물관은 문을 닫게 된다. 안드레스 바르베로의 가족들은 박물관을 재건하기 위해 수스닉을 관장으로 초대하였고 1956년에 설립자의 이름을 딴 지금의 안드레스 바르베로 민족학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그녀는 199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파라과이의 대표적인 인류학자로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연구를 진행하였다. 첫 번째는 사라져가는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파라과이에 산재한 원주민들의 언어를 기록하고 분석하였다. 두 번째는 파라과이의 사회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식민시기 원주민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였다. 여기서 살펴보고자 하는 책은 후자의 경향과 일치한다.

“파라과이의 생활양식과 그 형성에 있어 인디헤나의 역할”은 총 두 권으로 1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파라과이 독립에 이르는 시기까지 통시적인 맥락에서 원주민을 분석하면서 파라과이의 문화적 정체성을 엿보고 있다. 1장은 식민시기 이전의 파라과이 과라니를 다루고 있으며, 2장부터 12장까지는 식민시기의 과라니와 스페인계 정복세력 사이의 문화 접변을 고찰하고 있으며, 마지막 장에서는 파라과이가 독립한 이후 과라니의 사회·문화적 위치를 담고 있다.

각 장 별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장은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과라니가 아마존에 있는 원주민들로부터 기원했다는 것을 분석하고 있다. 2장과 3장에서는 과라니와 스페인계 정복자들 사이의 인종적 결합을 살펴보고 있다. 4장은 엔꼬미엔다 경제체제를 기술하고 있으며, 5장은 엔꼬미엔다 경제 체제로 야기된 과라니의 급격한 감소와 이를 막기 위해 스페인 정부가 원주민 보호를 위해 설립한 따바(Tava) 공동체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6장은 예수회가 레둑시온를 통해 과라니를 영적으로 정복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7장과 8장, 9장, 10장, 11장은 17∼18세기 식민지방 정부의 체계와 관련한 과라니의 사회조직과 생활양식을 분석하고 있다. 12장은 과라니이외의 파라과이의 원주민에 관해서 간략히 서술하고 있으며, 13장은 독립 이후 과라니들의 적응과 파라과이 사람으로서 과라니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다.

식민시기의 과라니에 관한 연구는 수스닉과 더불어 바르또메우 멜리아(Bartomeu Melia)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수스닉은 예수회와 과라니 사이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멜리아와 달리 총체적인 측면에서 과라니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였다. 이 책에서 나타난 수스닉의 과라니에 관한 연구는 독보적이지만 몇 가지 한계가 보인다. 첫 번째는 연구 대상의 시간적 깊이와 폭이 넓어 심층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멜리아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면서 식민시기 과라니와 예수회와의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두 번째는 정복자들과 선교사, 관리들의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과라니의 관점이 결여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그러나 문자가 없었던 과라니에 대한 입장을 자료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