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

이번 웹진 5호부터 한국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의 역사를 정리하는 ‘뿌리를 찾아서’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원로학자들의 학문적 열정이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의 뿌리가 되어 가지를 치고, 그 가지에 싹이 돋아 나무로 성장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뿌리를 찾아서’는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신 민만식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님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동기, 학회형성과정, 라틴아메리카지역연구의 중요성 및 학자로서의 보람 그리고 향후 중남미지역연구방향에 대해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녹취해서 선생님의 어조를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국제정치학을 전공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서울법대에 입학해기 때문에 변호사나 법조계에 있을까 했는데 6.25 사변이 나서 해병대에 입대했지요. 해병대 8기 사관학교에서 훈련받고 나와서 연평도, 백령도 그리고 부산으로 와서 홍종대 중대에 있다가 해병대 사령부에서 통역장교와 연락장교로 군대생활 마쳤죠. 서울대에 복학해서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었어요. 미국 가서 정치학 그리고 사학을 공부했는데 주로 미국역사하고 미국정치를 공부했어요. 박사학위는 사학으로 받고 정치학을 부전공했지요. 워싱턴디씨에 있는 아메리카 유니버시티에서 공부할 때 내가 제일 모르는 분야인 중남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중남미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생기더라고요. 한국에서는 그 당시 중남미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한번 내가 파이오니아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죠. 귀국하면 중남미 정치 파이오니아로서 국제정치를 어느 대학에서든지 가르쳐야겠다고 맘을 먹었어요.

우선 한국에서 중남미 정치를 가르칠 수 있는 대학이 어느 대학인가 찾아 봤 더니 한국외국어대학이 나에게 딱 맞더 라고요. 내가 미국 아메리칸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을 당시 주미 한 국대사관에 장기욱 대사님이 한국외국어 대학 최한복 학장님이 유엔일로 미국에 오셨는데 한번 만나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래서 최한복 학장을 만나게 되었죠.

학장님은 내가 찾던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기뻐하셨어요. 외국어대학이 세계 각국의 지역연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중남미지역에 대한 강의를 좀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그때가 1963년도 쯤이예요. 1963년도에 외대전임으로 임용되었어요. 처음에 정치학과도 없고 사회과학계통의 과가 없어서 서반아어과에서 중남미지역 정치 경제과목을 개설했죠. 강의 교재가 필요해서 1965년으로 기억하는데, 일신사에서 ‘중남미 정치와 경제’라는 책을 출판했어요. 서반아어학과에서 중남미 정치와 경제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게 됐어요. 그야말로 개척분야였죠. 한국에서 내가 처음 중남미 정치와 경제과목을 가르쳤고 당시에는 인기가 꽤 있었어요. 동아방송에 PD로 근무하던 중학교 동창은 중남미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해 줄 사람이 국내에 없다며 나에게 방송을 부탁했어요. 그래서 매주 방송을 시작했고 반응이 괜찮았어요. 오래했어요. 1년 이상 했다구요. 당시 국내에서 중남미에 대한 관심이 생길 때 였어요.

지방에서 중남미관련 세미나가 자주 열리다 보니 자연히 우리도 학회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그래서 중남미 학회도 만들었어요. 우리 학회는 시작이 좀 늦었어요. 2년도 인가? 그때 시작했으니까 늦은 편이죠. 주로 서반아어과와 브라질. 포어과를 중심으로 중남미지역 강의가 집중적으로 개설되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내가 학회장을 한 이후 권문술 박사 그 다음에 김박사가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이어받아서 학회가 발전해 나갔어요. 나는 아시다시피 권력 지향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초대와 2회 회장까지 하고 무조건 딴사람에게 자리를 넘겼어요. 권문술 박사가 2번 이상은 못 하겠다 그러더라고요. 권박사가 2년 동안 회장하고 그 뒤 김우택 박사가 학회를 이끌었어요. 그다음에는 누가 했나? 기억이 나질 않아요. 2년 마다 학회장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전통이 되더라고요. 학회 내에서도 한 가지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회내부의 일종의 파워 경쟁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학회장을 하면서 I'm very proud of myself 할 수 있는 이유는 실력 있는 후배들이 대를 이어갔다는 거지요. 지금은 이렇게 부산에 지사까지 생겨서 열심히들 하잖아요. 하하하하

1960년대에 브라질 뿐만 아니라 그 주변국가도 방문한 적이 있죠. 돌아다니면서 학문적인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정당정치에 대한 것도 많이 듣고, 그걸 정리해서 귀국하여 글로 남겨두기도 했죠. 중남미는 학문적으로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직 정치인들을 만나 토론을
나눴던 점이 나로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전에도 말한 것처럼 처음 강의를 했을 때 중남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중남미지역연구가 중요한지, 아닌지 사람들이 모르 고 있었죠. 나는 중남 미지역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니까 처음에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중남미의 영향력에 대해 강조했었죠. 영토만 하더라도 브라질이 일본이나 한국 그리고 웬만한 나라들 다 뭉쳐놓아도 더 크잖아요? 중국은 예외지만. 중남미 내에서도 브라질 그 나라 하나만 뽑아내도 대단히 크다고요. 그래서 중남미에 대한 연구는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국토의 크기만이 아니라 철강, 석유, 석탄, 구리 등 지하자원도 어마어마하고 지상자원도 대단한 지역이잖아요? 자원의 보고란 말이죠. 보물 이예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방송과 학교강의 그리고 교재출판이후 경희대학을 비롯한 서울시내 여러 대학에서 중남미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어요. 서울 시내 주요대학에 나가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댄 나로서는 영어로 말하면 Calling 소명이라고 해야 할까? 중남미지역 강의를 처음 개척한 사람으로서 열심히 후배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소명감과 사명감에 열심히 강의 했죠. 경희대, 고대, 성균관대, 중앙대등 정말 중남미에 관한 것은 내가 전도사 역할을 했다구요. 하하하.. 저녁에도 야간대학 특히 그때 막 생기기 시작한 무역대학원 원장들이 찾아와 강의를 부탁했어요. 그분들이 부탁하는 건 다 들어 줬어요. 될 수 있는 한 한군데라도 더 나가서 가르치게 좋을 거 아니겠어요. 제자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배출되어야 앞으로 학문적으로도 중남미에 대한 지식을 우리 대한민국에 인식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열심히 가르쳤고, 후배들도 배출되어 강석영교수가 석사학위를 나한테 받고, 박사학위도 받았죠. 석사학위 1호, 박사학위 1호네요. 지금은 은퇴했지만. 내가 이제 까지 보람을 느끼는 건 체계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제대로 가르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석영 교수, 선우 박사와 같은 많은 후배들이 배출되어 학계에 뿌리를 내렸다는 거예요. 이런 게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잖아요? 대를 이어서 만들어지는 거죠.

그리고 그 당시에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니까 중남미 진출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정치, 경제, 역사를 체계적 으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출판한 것이 일신사에서 나온 책 이예요. 이후 중남미 정치론을 일조각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했지요. 서울시내 대학 초 청강연회에 가면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때 마다 내가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했죠. 내가 전도사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참 흐뭇했어요. 은퇴할 때까지 사명감을 가지고 정외과에서 강의 했죠. 정외과에서는

중남미 뿐만 아니라 미국정치에 대한 걸 주로 강의를 했어요. 그때도 미국 정치론을 가르치는 학교가 별로 없었다고요. 국방대학에서도 강의 부탁이 와서 단골 강사가 됐어요. 한 10년 했지요. 공군대학원 그리고 심지어는 중앙정보부에서도 강의했으니 내가 지금 생각해봐도 전도사역할은 꽤 한 것 같네.하하하

성균관대 야간대학 강의 나갔을 때 삼성에 근무하던 한 학생이 내 덕분에 스페인어를 독학해서 지금으로 치면 화차를 계약했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승진도 하고 나의 가르침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현장에서 써먹으라고 가르쳐 준건데 아주 보람 있더라고요. 중남미 전도사로서 나름대로 굉장히 즐거웠어요. 요즘 세상엔 물질적인 보상이 더 중요하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적 재산을 학생들과 후배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서 보람 있었어요. 나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결국 우리국가, 우리민족에게

그 결과가 되돌아온다고 생각해요. 내가 바보 같이 칠판에다가 ‘Calling’이라고 써놓고 강의하곤 했는데 내가 바보가 아니라 진짜 Calling 이었구나 라고 보람을 느낀 적이 많아요.

중남미 지역은 워낙 방대하고 학문적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상당히 세분화되고 있기 때문에 딱히 찍어서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건 없어요. 그러나 각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중남미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니까 자연발생적으로 어떤 것이 중요하다는 나름대로의 귀착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봐요. 나는 총론으로 책도 쓰고 강의도 했지만 워낙 나라도 많고 해서 내가 볼 때 앞으로는 각론으로 연구가 진행 되어야 해요. 콜롬비아의 게릴라에 대한 것도 각론적으로 연구가 되어야 해요. 각 국마다 특징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중남미를 안다고 한다면 세부적 분야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가끔 질문하죠? 당신이 중남미에 대해 안다고 하는데 어떤 분야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요. 중남미 지역은 나라가 그렇게 많은데 다 안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예요. 이제부터 각론으로 들어가서 예를 들어 콜롬비아 정치면 어떤 정치인지 즉 제도적인 정치인지 게릴라에 대한 연구인지 아니면 제도권 바깥의 정치인지 세분화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해요. 나라도 많고 분야도 다양해서 이제 앞으로 세분화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가가 양성되어야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선생님의 등 뒤로 지난번 안데스 산맥여행길에서 스쳐간 풍경이 떠올랐다.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있는 안데스 산맥의 비스듬한 계단식 밭을 일구는 농부들의 모습은 넉넉한 저녁 풍경을 선사했다. 20시간 쉼 없이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이름도 알 수 없는 마을이 지나고 또 지났다. 그 마을 사이로 수많은 시간을 침묵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고목나무들도 스쳐갔다.

잠시 그 나무의 뿌리와 깊이를 헤아려 보았다.

너무나 작은 내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