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욱(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지난 4월 6일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 의원을 만났다. 쿠바를 방문한 미 의회 흑인의원 모임 소속 6명과 만난 카스트로 의장은 미국과 쿠바의 양국 관계개선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은 쿠바 의회 의장 및 외무장관과도 회동했을 뿐 아니라,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전 의장은 이날 6명의 의원들 가운데 3명을 집으로 초대했으며, 그의 부인이 직접 미국의원들을 마중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쿠바의 혁명 이후 50년을 갈등과 반목의 긴장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던 두 나라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미국 하원이 쿠바와의 무역 및 가족방문 규제완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3월 31일 미국 상원의원 21명이 쿠바에 대한 미국인들의 여행제한 조치를 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의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 또한 미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을 기대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 변화 노력에 (우리가) 어떻게 협조할 수 있는 지 물었다”고 의원들이 전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안들은 미국과 쿠바 양국이 화해를 향한 쾌속정의 가속 페달을 힘껏 밟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양국의 화해 무드는 국제관계시각에서 볼 때 새삼스러운 행보이다. 1959년 쿠바의 혁명이 반미 독재정권 타도를 기치로 내걸고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양국의 반목과 갈등은 지속적인 단절을 확인하게 할 뿐이었다. 나아가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구축하면서 야기되었던 냉전의 위기 상황이후 시행된 1962년의 금수조치와 일련의 경제봉쇄는 오늘날 쿠바의 극심한 물자부족과 저개발 경제에 기인한 바 크다. 이러한 냉전적 대치 상황은 지속되거나 가속되어 1980년과 1994년의 대규모 쿠바인의 집단 탈출 소동이나 1996년 쿠바 미그기의 미 항공기 격추


건을 비롯하여, 2003년 대 쿠바 송금 및 방문 제한 및 2004년 조건의 강화 등과 같은 총체적 사안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각이 세워지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따라서 최근의 화해 분위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다.


1898

* 미-스페인 전쟁에서의 승전으로 쿠바 실질적 점령

1902-1906

* 쿠바, 명분상 독립 후 미국에 재점령됨

1959

* 카스트로, 바티스타 정권 축출 이후 총리로 취임

1960

* 쿠바 내 미국회사 국유화 전면 개시

* 미국의 대 쿠바 무역제재 개시

1962

* 구소련의 쿠바 내 미사일 기지 건설이 계기로 미-소 핵전쟁 위기로 상황 비화

* 미-소 양국 터키와 쿠바 내 핵 미사일 기지 건설 중단 및 완공된 시설의 철수 약속

1980

* 1만 5000 여 쿠바인의 미국 플로리다로 집단 탈출

1996

* 쿠바의 미그기가 미국의 민간 항공기 격추

1999

* 플로리다 해안에서 구조된 쿠바난민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 송황 문제로 미-쿠바 외교 분쟁 촉발

2003

* 미국의 쿠바 여행 제재 및 불법 송금 대대적 단속 등 대쿠바 적대정책 발표 및 시행

2004

* 쿠바 정부, 자국내 달러 통용 금지

2006

* 피델 카스트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 이양

2008

*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직 사임

* 오바마 당선

2009.04

* 미국, 쿠바계 미국인 쿠바 여행 및 송금 제한 완화 발표

이러한 해빙 모드는 전통적 적대 관계를 형성하며, 저마다의 국가적 정통성과 상징성을 내세우던 양국 모두의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이러한 양국의 입장 변화의 배경에 대한 분석이 다각적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번 해빙 모드의 원인은 미국과 쿠바 양국의 입장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첫째, 부시 행정부가 지난 8년간의 일방향적 외교정책으로 놓쳤던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신뢰성’과 관련된 부분을 일정 수준까지 조율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한 것으로서,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입지와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그것이다. 둘째, 자국의 경제적 이익으로서 보다 본질적인 이유이다. 하루 6만 배럴의 산유국이던 쿠바가 2008년 10월 돌연 해저 유전에 원유 매장량이 최대 200억 배럴에 달할 수 있음을 밝힌 이후, 미국 석유회사들의 유전개발 참여의 가능성이 보다 중요한 이유가 된다.



유전 개발이 이뤄지면, 쿠바는 하루 최소 6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스페인, 노르웨이, 인도, 베네수엘라,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의 석유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는 쿠바 원유 개발 사업에 현재 러시아와 중국이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만이 자신들의 앞 바다에 있는 막대한 자원의 개발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당면한 과제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쿠바의 입장에서는 경제봉쇄로 인한 물자의 부족과 그로 인한 저개발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 등과 관계망을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취임 이후 가시적인 변화를 추진해왔으며, ‘실용적인 공산주의’를 선언한 바 있다. 휴대전화를 허용하였고, 국영기업의 외화지출을 통제에서 부분통제로 정부 관여의 폭을 대폭 축소하였으며, 식품 배급 구조를 개혁하였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쿠바가 추진하는 변화의 물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실현 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실현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저 유전 개발을 위한 외자 유치는 경제적 실용주의를 천명하는 라울 정권이 내세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으며, 미국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인 것이다. 비록 피델 카스트로가 최소한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결국 미국이 거의 반세기 동안 해온 제재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지적을 했다고는 해도, 이는 미국과의 이념적 대결구도에서 쿠바가 상징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라 해석

하기 보다는 양국이 경제적 이익을 두고 일정 수준에서 타협하고 조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실용주의적 현실론이 실체적 승리를 거둔 것이라 평할 수 있다. 결국, 최근 미국과 쿠바의 화해의 손짓이나 해빙의 조짐들은 쿠바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200억 배럴에 달하는 유전과 9조 8000억 입방미터에 달하는 천연가스의 개발이 미국과 쿠바의 화해 모드를 위한 가장 큰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국은 해저 유전 개발과 외자 유치 및 경제 봉쇄 해제를 둘러싸고,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거시적 정책 결단과 미시적 정책 조율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국의 화해가 구조적으로 성립되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이는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국제관계에 긍정적 변화의 기류가 형성될 것이다. 다만, 양국은 각국의 국내의 이견들을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조율하며 동시에 국외의 교차적 관계망 재정립을 위한 단계적 수순을 밟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