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미 HK 연구교수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10월2일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콜롬비아 정부와 FARC가 체결한 평화협정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개표 결과 찬성 49.78%, 반대 50.21%로 부결됐다고 발표했다. 앞서 8차례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평화협정 찬성 반응이 우세해 무난히 가결될 것으로 전망되었으며 산토스(Juan Manuel Santos:2010~현재)대통령은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였다. 그러나 지금 콜롬비아 국민은 토지개혁과 내전피해자보상을 둘러싸고 FARC와 정부 간 재협상을 촉구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1960년대 결성된 좌익 게릴라 조직은 1970년대 중반부터 무력분쟁으로 정부를 위협하면서 콜롬비아 내전은 확대되었다. 1980년대 이후 더욱 격화된 무력분쟁은 정부군과 좌익 게릴라 그리고 좌익반군 소탕을 목적으로 정부에 의해 결성된 우익 무장조직 AUC(콜롬비아 연합자위군) 3자 상호대립 간계 구도 속에 지속되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마약조직이 좌우익 무장단체와 서로 얽혀 소모적인 투쟁을 일삼았으며 그 결과 콜롬비아의 내전은 심화되었다.
1990년대 접어들어 콜롬비아 정부는 양대 게릴라조직인 FARC(콜롬비아 무장혁명군) 그리고 ELN(민족해방군)와 평화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82년 취임과 동시에 베땅쿠르(Belisrio Betancur) 대통령은 게릴라에 대한 사면조치를 통해 정전협정을 체결하는 등 무력분쟁 종식을 위한 노력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게릴라 활동의 위축으로 일시적으로나마 평화가 유지되었다. 1998년 등장한 파스트라나(Andrés Pastrana)보수 정권은 내전종식을 목표로 협상과 진압이라는 이중전략을 통해 FARC와 대화를 시도하는 한편, 미국의 지원 아래 적극적인 마약 및 좌익반군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1999년 10월부터 콜롬비아 정부는 FARC의 통제 하에 있던 남부지역 메타(Meta)와 카케타(Caquetá)주 지역의 5개 자치구에 대한 긴장완화지역을 설정하고 공권력을 철수하는 등 3년 동안 평화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평화협상 진행과정 속에서도 FARC와 ELN에 의한 요인 납치와 암살과 테러는 지속되었다.
2002년 평화협상 불가를 선언하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 아래 힘에 의한 대 게릴라 소탕작전을 추진한 우리베 정권은 FARC 거점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를 인정하며 협상을 시도했으나 게릴라조직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지속되었다. 2011년 집권한 산토스 대통령은 2012년 10월 FARC와의 협상개시를 공식 선언한 후 평화협상을 진행하였다. 우리베 정권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며 게릴라에 대한 강경책을 추진해온 산토스 대통령은 게릴라와 대화가 가능한 인사들로 협상팀을 구성하여 신뢰에 기초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2016년 6월 23일 산토스 대통령과 FARC 지도자 론도뇨는 항구적인 쌍방정전 합의문에 서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콜롬비아의 내전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했다.
평화협상내용은 농촌개발 및 토지개혁, FARC의 정치 참여 보장, 분쟁종식, 마약 근절 및 밀매 퇴치, 내전 희생자보상 등 5개 의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FARC는 평화지대 역할을 담당할 23개 농촌구역과 8개 캠프로 이동하여 6개월 내에 점진적으로 무장을 해제할 것이다. 민간인 출입은 전면 통제될 최대 4㏊ 규모의 캠프는 FARC 조직원들 체류용으로 활용될 것이다. FARC는 평화협정 체결일로부터 유엔의 무기 반납 절차 감독 하에 최대 180일까지 무장해제하며 반납된 무기는 콜롬비아, 쿠바, 뉴욕 유엔본부 3곳에 기념 공간 조성에 활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은 찬반 묻는 국민투표 결과가 부결됨에 따라 난관에 직면해있다. 그 원인은 FARC 및 반군 그리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뿌리 깊은 불신과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우리베 주의자의 지속적인 캠페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달 30일부터 콜롬비아 북부 해안지대를 강타한 태풍 ‘매슈’로 인해 찬성 여론이 강세를 보여 온 농촌·시골 지역의 낮은 투표율도 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우리베 주의자인 협정반대 우파진영은 이번 협정안이 FARC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묻지 않고 있다며 평화협정 반대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평화협정 안에 따르면 FARC는 향후 투표 없이 2번의 의회 선거에서 10석을 확보하고 학살이나 고문 등 중범죄를 제외한 범죄를 자백할 경우 인신구속형벌 면제한다.
이에 대해 내전 피해자 가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투표에서 FARC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일수록 협정거부의사가 높을 비율을 나타냄에 따라 그동안 FARC에 대한 주민의 반감이 표출되었다. 국민투표가 부결됨에 따라 콜롬비아 정부와 FARC는 새로운 내용의 평화협정 체결로 재 국민투표를 진행하던지 아니면 정부가 아닌 의회가 기존 평화협정의 입법을 추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설령 이번 평화협정이 가결되었다 해도 마약 재배를 통한 수입에 의존해온 FARC는 마약재배와 무기거래로 인한 수입을 결로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카케타(Caquetá)와 메타(Meta) 등 FARC가 통제하고 있는 콜롬비아 남부지역 마약생산지를 중심으로 FARC의 정치와 경제적 특권은 유지될 것이다. FARC통제 지역에서 마약생산이 중단 된다면 페루, 브라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인근국가로 생산지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조직명을 개칭하여 거점지 이동을 통해 조직 활동은 국제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2006년 우리베 정권에 의해 무장 해체된 우익 불법무장조직 AUC와 민병대는 과거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신흥조직을 결성하여 마약밀거래를 주도하고 있다. 2008-2012년 말 신흥조직은 경쟁조직과 지배권을 둘러싼 격렬한 전쟁을 통해 부상하였다. 신흥조직의 핵심이자 최고 지휘부는 군사적으로 훈련되고 능력 있는 전직 게릴라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은 마약밀거래 지역 통제 및 거점지 확장 과정에서 동맹 혹은 협상을 동원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수반하기도 한다. 신흥불법무장조직 지도부의 게릴라 활동경험은 지역공동체와의 유대 및 관계 형성 및 ELN 그리고 ELP잔존세력과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FARC 최고 위원회 역시 마약밀매가 조직운영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FARC는 ELN와 ELP 같은 다른 게릴라 동맹세력과 함께 마약재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거래는 중앙이 아닌 일선 지휘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만약 FARC 지도부에서 마약밀매를 통제 한다면 일부 하부조직들의 불법조직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 무력분쟁은 동반될 것이다. FARC의 무장해체로 남부 마약재배지가 폐쇄된다면 조직원들은 신흥조직을 형성하여 미국시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유럽 및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인접 국가를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 확보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FARC가 해체된다면 전직 불법무장조직 출신의 조직원으로 구성된 신흥세력이 다른 지역에서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신흥조직은 범죄경력과 군사훈련 및 지역공동체의 지지확보능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