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충 교수 (울산대 스페인어과, 전 우루과이대사)
우루과이는 남미대륙의 동남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다. 국토면적은 약 17만 6천㎢, 인구는 340만명에 불과하다. 산업구조면에서도 제조업기반은 취약하며 농목축업을 국부의 주요 원천으로 삼고 있다. 다른 중남미국가들과는 달리 부존자원도 별로 내세울게 없다. 국력 면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을 가질 수 없는 여건에 처해있다는 뜻이다. 그런 우루과이가 금세기에 들어와서는 여러 면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지역정세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종종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나름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우루과이는 1828년 독립한 이래 전통적으로 홍당(Partido Colorado)과 백당(Partido Nacional 또는 Partido Blanco)의 양당이 교대로 정권을 담당해왔다. 두 정당은 독립과정에서 노선을 달리하였고 지역적, 계층적인 지지기반이 뚜렷이 구별되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보수정당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 전통적으로 홍당은 자유주의 성향의 도시 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반면, 백당은 보수적인 성향의 농촌 지주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그런데 2004년 대선에서 좌파정당의 연합체인 광역전선(Frente Amplio, 이하 FA)이 승리하면서 공고했던 보수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우루과이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광역전선의 승리는 국민들이 오랫동안 이어져온 양당 주도의 정치에 식상하여 등을 돌리고 변화를 택한 결과였지만, 1999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집권을 계기로 남미지역에 불어닥친 좌파이념의 확산(이른바 Pink tide)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튼 2005년 의사 출신인 따바레 바스께스(Tabare Vazquez)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우루과이에도 좌파정권의 시대가 열렸다.
기대와 우려 속에서 출범한 FA 정부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10년간 성공적으로 국정을 수행해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념적으로는 Pink tide의 흐름에 동참하되 일관되게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하고 사회통합에도 노력하여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우선 2005 ~2010년간 FA 정권 1기를 이끈 바스께스는 정권교체에 따른 사회 일각의 상실감 치유와 국민통합에 역점을 두어 각종 사회보장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교육 개혁과 치안 개선 및 인프라 확충에 정책역량을 집중하였다. 특히 전국의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 전원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무상으로 보급한 “Plan Ceibal”정책은 교육 개혁의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바스께스 대통령은 1차 임기중 초등학생 교육용 노트북 보급 100%를 달성한 데 이어, 2015년 2차 임기를 시작하면서 저소득 노인들에게 태블릿 PC를 무상 으로 보급하고 활용법을 교육시킴으로써 사회 전반의 정보화수준을 업그레이 드시키는 시책을 추진중이다.
바스께스에 이어 2010년 3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FA정권 제2기를 이끈 호세 무히까(Jose Mujica)는 1970년대 도시게릴라단체 Tupamaros의 핵심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이로 인해 14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풍운아이다. 정치적 박해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무히까는 따라서 정치.사회적 대립을 극복하고 국민적 단합을 도모하는 조치를 폭넓게 시행하는 한편, 실용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공공서비스와 교육 개혁, 보건의료제도 개선과 인프라 확충 노력을 계속해나갔다. 거시경제정책은 일관되게 정통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추진했다(이 점에서 지역내 다른 좌파정부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 결과 그의 집권기간중 경제,사회적 발전지표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5~6%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고, 이에 힘입어 2006년 34%에 달했던 빈곤율은 2013년 11.5%로 떨어졌다. 물가(8%내외)와 실업율(6~7%)도 안정적인 선에서 관리되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무역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 쪽으로 시장다변화를 도모한 노력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교육이나 치안분야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중남미를 통털어 늦은 저녁시간까지 혼자서 해변도로를 산책하고 시내를 거닐어도 크게 불안하지 않은 나라가 우루과이 말고 또 어디 있는가?
이같은 성과 외에도 무히까 정부는 일련의 진보적인 정책을 쏟아내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산모의 건강이 위태롭거나 원하지 않는 임신 등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고(2012.12월), 동성간 결혼도 허용하였다(2013.8월). 두 사안 모두 카톨릭국가에서는 감히 거론하기조차 어려운 주제이지만 무히까 정부는 인권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밀어붙였다. 이런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은 무히까 대통령의 사심없는 청렴한 리더십이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어서 국가가 대마의 재배와 유통을 철저히 관리한다는 전제 아래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하였다(2013.12월). 단속과 처벌 일변도의 마약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고, 가장 유해성이 약한 마리화나를 합법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국민들이 코카인 등 더 심각한 마약으로 빠져드는 경로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다. 과연 이같은 발상의 전환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마약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있는 다른 나라들도 그 결과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무히까 대통령의 인권중시정책은 더 이어져, 임기 말년에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중이던 아랍인 6명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야권을 비롯한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적지 않았고 이웃 국가들도 과연 우루과이가 이들을 관리할 능력이 있느냐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무히까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과 뚝심이 아니었다면 관철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우루과이는 FA정권 제3기를 맞고 있다. 같은 정당 소속이기는 하지만 바스께스와 무히까는 성장배경이나 정치적 역정이 사뭇 다르다. 바스께스는 무히까에 비해 개인적 카리스마가 강하지 않고 온건.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정책기조에 있어서는 무히까 정부와 궤를 같이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점진적이고 예측가능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 10년간 내치면에서는 안정적인 성과를 거둔 만큼, 앞으로는 외교에 무게중심을 두고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최근 메르코수르 내에서 베네수엘라가 차기 순번의장국을 맡는 문제를 두고 회원국의 입장이 갈리고 있는데, 메르코수르의 양대 강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반대입장에 맞서 우루과이는 베네수엘라가 당연히 차기 의장국을 수임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메르코수르 회원국은 다른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FTA를 체결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와의 양자 FTA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우루과이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임된데 이어 금년 1월부터 안보리 의장국을 수임하고 있는 것도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에 더없이 좋은 여건이다. 내년에는 세계적인 휴양도시 뿐따 델 에스떼(Punta del Este)에서 중국-중남미.카리브 비즈니스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다. 중국이 근래 중남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는 마당이라 이 포럼에서 또 어떤 보따리를 풀어놓을지, 그때쯤엔 세계의 이목이 뿐따 델 에스떼로 향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바스께스 대통령이 자신의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무렵에 어떤 성적표를 받아쥐게 될지, 또 FA가 2019년에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우루과이 역사상 처음으로 국정을 맡았던 좌파정부가 지난 10년간 일구어낸 성과에 대해서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평가를 내려도 무방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