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국 교수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016년에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여느 때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양대 정당의 수렴현상이 사라지고 양극현상이 나타나는 중이다. 양극현상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라는 주요 후보들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가 미국과 국경을 연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두드러진 영향을 보여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민주당의 클린턴이 개입주의라면 공화당의 트럼프는 고립주의에 가깝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와 라틴 아메리카 사이에 놓여있는 다양한 현안들, 예컨대, 자유무역협정, 불법이민자처리, 마약퇴치, 미국-쿠바의 국교회복, 좌파정권과의 국교재정립, 우파정권에의 지원, 환경협약 등의 정책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미국 내 라틴계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대책이다. 클린턴은 이들에게 합법적 거주를 보장하는 「불체아동추방유예법 (DACA)」를 확대시행하려는 반면, 트럼프는 1954년에 시행했던 아이젠하워의 「불법체류자 대량추방 작전 (Operation Wetback)」을 재개할 것이라 선언하고 있다. 지금도 매년 40만 명 정도가 추방되고 있는 데 트럼프의 추방계획이 실시되면 그 인원이 1천1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순히 추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육로로 다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2천 km에 달하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15m 높이의 장벽을 쌓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 정책이 실천된다면 라틴 아메리카의 각국들 특히 멕시코가 겪게 되는 혼란은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다.

  Washington Consensus, WTO, NAFTA 혹은 TPP로 대변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대외정책은 대표적인 수렴현상이다. 그러나 미국의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클린턴은 신자유주의적 대외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데 반하여 트럼프는 자유무역의 폐해를 강조하는 국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라틴 아메리카의 소위 좌파정부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좌파정부에 대한 그녀의 매파적 개입정책이 트럼프의 경우 보다 훨씬 더 집요하게 이루어지리라 예측할 수 있다.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의 「콜롬비아 계획(Colombia Plan)」이나 버락 오바마의 「메리다 전략(Merida Initiative)」으로 이어지는 마약퇴치작전은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지속적으로 운영될 것이다. 개입주의적인 클린턴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고립주의적인 트럼프조차도 코카인 밀수에 대한 미국 내의 혐오감정을 거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마약퇴치를 빌미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 군사개입은 점차 해당 국가들의 안보의존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대마초자유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마약문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 의료용 마리화나는 24개 주에서, 오락용 마리화나는 5개 주에서 합법화되어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미국 의존이 강해질수록 미국 대선이 라틴 아메리카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번영하는 국가체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감스러운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국력의 절대적 열세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현상은 지난날 스스로의 역사적 선택이 만든 결과이다. 19세기 동안 남아메리카에 이주한 유럽인들은 957만 명이었던 반면에 북아메리카에 이주한 유럽인들은 2,600만 명에 이르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자영농 중심의 민주주의적 북아메리카를 대지주 중심의 독재주의적 남아메리카 보다 선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타국의 대통령 선거에 휘둘리는 나라의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