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석(닉 페어웰 Nick Farewell) 작가
한글번역 : 박규원(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연구보조원)
2007년 브라질에서 15번째 판아메리카 경기가 개최되었다. 브라질 회계감사법원(TCU)은 “엔지냐웅(Engenhão)”으로 더 잘 알려진 주앙 아베란지(João Havelange) 주 경기장 공사예산이 초기에 6천만 헤알로 책정되었으나 경기장이 개관했을 당시 금액이 불어나 20억 헤알 이상의 예산이 들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초기 예산의 7배 이상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판 아메리카 대회는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국가적인 시위나 소동은 발생하지 않았다. 단순히 언론 및 분석가들의 “비난”이 있었을 뿐, 아무도 이 상황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미 예산초과, 갈취, 부패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고, 바에 앉아 서로 대화를 하며 분노하지도 않았으며, 자신들의 속마음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그것은 아마도 평화롭고, 친절하며, 금방 잘 잊어버리는 브라질 사람들의 천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2013년부터 바뀌었다. 대폭적인 대중교통비의 인상은(상파울루의 경우 3헤알에서 3.20헤알로, 20센타부스 인상됨)시민들을 거리로 이끌었으며, 도시를 마비시켰다.
나 또한 그곳에 있었다.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와 센트루(Centro)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소규모 시위는 경찰들의 강한 진압으로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모든 사람들은 이제 거리로 나와야 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매우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거리를 걷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전부터 당연하게 요구해야 했던 권리였지만, 시민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우리가 뒤쳐졌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
그랬다, 더 나은 미래가 어렴풋하게 보이고 있었다.
오늘날, 시위 이래로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상황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브라질 정부가 추진한 쿠바의사 수입계획과 같은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났다(호세피 정부는 쿠바의사 수입계획은 국민들이 요구했던 보건,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논란의 여지가 많은 해결책이라는 반발에 직면했다).
시위는 정해진 시간 안에 대표자 없이 비조직적인 형태로 브라질 곳곳에서 사회적 약속처럼 계속되었다. 시위자들과 경찰들 간의 무수한 폭력사태도 발생했다.
사회변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폭력과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블랙 블록(Black Bloc)”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으며, “도시 전사(guerreiros urbanos)”라는 새로운 사회계층이 형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야만적인” 시위대라고 칭하면서 시위자들이 폭력적이라고 비난하는 다수의 국민들과 미디어를 통해서 확신을 얻은 경찰은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억압하고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제압하고자 했다.
“거인이 일어났다!”
시위대는 거리에서 소리쳤다. 그러나 대중의 각성은 그것보다 더 늦게 이루어졌다. 거인은 아직 잠에 취해있었으며, 여러 해 동안 교육을 받지도, 지식을 갖추지도 못한 채 마치 길에서 기절한 듯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도 같았다. 그 거인은 로봇처럼 몇몇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거리의 차, 나무, 행인 사이를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 시민들의 요구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지속되어온 빈곤한 국가로 인해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잠시 뒤로 돌아가 보자.
단 몇 페이지만으로 전체 요구와 이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솔한 행동일지라도 말이다(먼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의 단순화에 대해서 사과의 인사를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화 혹은 표면적인 분석이라는 오류에 빠질지라도 사건의 전개에 대한 개요, 실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소개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건에 대한 반성과 자극, 이 두 가지는 브라질의 현재 사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현대사는 한국과 매우 닮았다. 두 국가는 60년간 군사쿠데타로 고통 받았지만 서로 반대의 길을 걸었다.
브라질이 거품경제의 가속화를 위해 국내 부채를 증가시키는 동안, 한국은 사실상 인프라와 교육에 투자했다. 현재 통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브라질 인구의 단 18%만이 대학에 입학했으며, 한국의 경우 83%가 대학에 입학했다.
이제 2억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세계 국가들 중, 경제발전에 있어서 7위의 자리에 있는 브라질의 교육수준을 상상해보자. 21세기 브라질은 13%의 문맹률을 기록하고 있다. 과연 무엇에 대해 시위를 할 것이며, 어떻게 시위를 하고, 시위대는 어떻게 조직이 되며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건강과 교육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해 설명 하지 않는 한, 시위자들의 기본적인 요구에 대해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그 동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기본적인 요구, 사회 불평등의 증가, 빈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응해야 하는 제도들의 무능력함이 계속해서 증가한다고 상상해보자. 특히 기아제로(Fome Zero), 볼사 파밀리아( Bolsa-Família)와 같은 룰라 정부의 계획들은 삶에 대해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가지고 있는 빈민층에게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포퓰리즘과 연결되어있으며 지극히 사회적인 이 정책은 이전부터 소외되어왔던 빈민층의 개선에 있어서 실질적인 효과를 주었다. 이 효과는 투표를 통해 지속되었다. 룰라는 재선에 성공했고, 그의 계승자 호세피 대통령이 후임으로 등장했다.
사회적이면서, 학교와 병원을 짓는 대신 시민들에게 돈을 주는 등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워 보이는 이 계획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돈을 쓸 것인가? 시민들은 충족되지 않는 기본적 요구에 대한 불만족과 삶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그들의 권리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을 견뎌야만 했다. 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깜짝 놀란 정부는 중앙고원의 빌딩을 오르는 시민들을 바라보았다. 상파울루 시청의 문은 부서졌고, 리우데자네이루 시청의 문도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만족으로 가득 찬 시민들에게 브라질이 그렇게도 갈망하던 월드컵의 개최는 빵과 서커스 정책이 아닐 수 없었다. 격분한 시위자들은 선발전 경기, 길거리 등 각지에서 “월드컵은 없을 것이다! ”라고 소리쳤다.
톰 조빙(Tom Jobim)은 브라질은 전문직 종사자만을 위한 나라였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한국기업이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듯이, 브라질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정열적인 나라다.
이 글을 기고하는 이 순간, 월드컵 개최까지는 3달도 채 남지 않았으며, 경기가 열릴 12개의 경기장 중 단 6개 경기장만이 완공되었다.
시위대는 격렬한 시위를 계속 할 것을 약속했으며, 정부는 엄격한 보안조치를 공표했다. 내게 있어서 이 상황은 라이벌 팀과의 경기에서 지는 경우에 울음을 터트리고, 싸움이 일어나며,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도 빈번한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가장 초현실적인 장면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인 월드컵 개최에 대항해 시위를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브라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매 주마다 브라질은 월드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치며 거리로 나가고 있다.
변화는 엄청났다. 판아메리카 대회의 치욕스러운 경험에 대한 냉담함에서부터 시작해 월드컵에 대항한 폭력적인 시위자들의 등장까지 브라질 내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견해에 따라 나뉘어졌다.
“학교, 병원으로 월드컵을 개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기장은 필요하다.” 라는 축구선수 호나우두(Ronaldo)의 무지한 발언은 이미 자극받은 시위대에게 불씨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현재 브라질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을 아직 모르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인프라 문제는 월드컵 기간까지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편의시설과 대중교통수단이 부족하다는 점과 브라질 사람의 대다수가 영어를 말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은 월드컵 기간 동안 브라질을 방문할 수천 명의 관광객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 시기에 맞춰 이미 치솟아 버린 물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호텔들은 이미 365% 가격인상이 되었다. 이를 통해 브라질의 유명한 기회주의를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월드컵에 대한 찬성, 반대자 간의 논쟁이 얼마나 더 발생할 것인가이다. 브라질은 예민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적 무관심과 불평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다.
마치 융합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문화적, 민족적 도가니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사회적 관심에 대한 회복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축구에 대한 낡은 열정이 브라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잊도록 만들 것인가? 과연 이 암흑기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이질적인 목소리를 시위대들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월드컵 우승국이 과연 어느 나라인가에 관한 궁금증이 남아있다.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번 월드컵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은 브라질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경기를 하고 있다. 망각의 위협에 맞서고 있으며,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는 시위자들의 정신을 없애버리고자 하는 행위에 맞서고 있다. 특히 잃어버린 정치적, 사회적 의식의 회복을 위한 시간의 흐름에 맞서고 있다.
결국 브라질은 단 하나의 우승컵을 위해 일어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삶 혹은 죽음을 쥐고 있는 경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소개:
이규석(닉 페어웰: NICK FAREWELL)
브라질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본명은 이규석이다. 197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열네 살이던 1985년 브라질로 이민했다. 브라질의 상파울루 주립대학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으며, 대학교 재학 중 오브제치보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후 브라질 유수의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며 광고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2007년 닉 페어웰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GO》를 발표했다. 《GO》는 브라질 교육부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전국 고등학교 도서관에 배포되었고, 청소년들이 책 제목을 문신하는 등 전국적인 붐을 일으켰으며,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을 다시 삶으로 이끌었다.
그밖에도 시집 《자살하는 사람들의 생존법 MANUAL DE SOBREVIVÊNCIA PARA SUICIDAS》과 소설 《미스터 블루스와 레이디 재즈 MR. BLUES & LADY JAZZ》 《상상의 삶UMA VIDA IMAGINARIA》, 희곡 《리버시블 REVERSIVEIS》등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