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원장)

축구경기에서 브라질을 응원하는 응원단
축구는 브라질인들에게 삶이고 문화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사업장에서 혹은 주말의 여가시간에도 축구와 늘 함께 한다. 축구는 스포츠의 의미를 넘어 국민 문화로 정착해 있다. 축구를 통해 브라질 국민은 결속되어 있고, 국민으로서의 자의식을 느끼고, 브라질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는 느끼는 문화이다. 이런 면에서 브라질이 곧 축구이고, 축구가 브라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에게 ‘브라질은 축구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정도이다.
축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사회화 교육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브라질 축구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사회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접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축구의 경기 규칙과 운영 방법, 축구선수들의 태도 등을 통해 사회화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축구 클럽에서 훈련과정에서 스포츠 정신을 교육함으로써 인성 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축구가 브라질 사회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통계상으로도 브라질이 곧 축구임을 알 수 있는데, 현재 브라질에는 1부 리그 20개 팀, 2부 리그 20개 팀, 3부 리그 21개 팀, 4부 리그 40개 팀, 여자 리그 20개 팀이 운영되고 있어 365일 축구경기가 펼쳐진다. 여기에 남미 컵, 클럽대항전, 모래축구, 실내축구 등도 함께 갖고 있다. 브라질에 등록된 축구 클럽 수는 29,208개이고, 등록 선수 약 2,100,000명, 비등록 선수 약 11,200,000명, 등록된 심판 61,000명, 프로경기 연평균 5,000경기 이상, 27개주 챔피언십 리그, 전국 축구경기장 661개 27개 주 챔피언십 리그가 있고, 프로 경기가 1년에 약 5,000경기에 이른다. 그리고 2012년 3월 기준으로 전국에 축구 경기장은 661개가 있다. 선수 외에 클럽 운영 관계자, 연방축구협회와 각 주별 축구협회 관계자, 축구 경기장 운영 인력과 축구 산업 관계자들을 모두 합하면 전체인구의 1/3 이상이 축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규모를 지니고 있어 브라질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축구이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해외이적 선수가 1,063명에 이르고 있으며, 국가별로 보면 포르투갈 231명, 이탈리아 92명, 일본 62명 등 세계 108개 리그로 퍼져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축구선수는 브라질이 유일하게 전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이런 브라질 축구를 흔히들 ‘삼바축구(Samba Soccer)’라고 한다. 삼바 춤을 추듯이 부드럽게 축구공을 다루고, 상대 선수를 제치고 나갈 때도 부드러운 춤사위 같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브라질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삼바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정착 브라질에서는 삼바 축구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반화된 표현인 듯하다.
삼바축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브라질 축구에는 자신들의 문화가 녹아있다. 그 동안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이 항상 보여준 것도 브라질 스타일의 축구였다. 브라질 스타일의 축구는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지에 대한 분석들이 많이 이루어졌으나 국내에서는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축구에도 성과주의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배경보다는 성과를 낼 수 있는 브라질 축구의 전술에만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정체성 형성에서 아프리카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의 이면에는 20세기 초반 ‘흑인의 발견’에 참가했던 유럽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의 영향이 있었다. 갑자기 프랑스 지성인들이 아프리카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그 동안 터부시하던 브라질 흑인들의 상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는 ‘흑인에 대한 애정(negrophilia)’이 문화전환기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흑인들이 백인들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음악과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흑인 문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특히, 흑인들이 가지고 있던 리듬감을 잘 살린 재즈와 흑인들의 강인함을 나타내는 권투가 대표적인 분야였는데, 재즈와 권투는 엘리트들이 즐기는 문화 공간으로 침투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20년대 브라질 모더니즘에서 흑인과 흑인 문화에 대한 재해석이 시도되었던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흑인과 흑인문화가 브라질 문화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은 이제 배제되거나 통제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으로 전환되었다.
1930년대 바르가스의 등장은 사조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아깝게 3위를 차지하자 바르가스 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전국이 떠들썩했다. 질베르뚜 프레이리는 1938년 6월 17일자 지아리우 지 뻬르남부꾸(Diário de Pernambuco)지에 월드컵에서 선전한 브라질 축구를 설명하면서 물라뚜 축구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 용어는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는 브라질과 브라질 축구가 유럽과는 다른 차별화되는 단일성(singularidade, 독창성)을 강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혼혈이다’라는 것을 알리고 브라질만의 길을 찾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혼혈 문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판단했다.
브라질 축구의 물라티즘(Mulatismo)은 브라질인들의 실질적인 정신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착되어 “브라질인이 되는 것은 곧 물라토가 되는 것이다”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물라뚜 축구는 춤과 까뽀에이라 스텝을 연상시키는 화려함과 놀라움 그리고 탄력성을 지니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 지점에서 유럽과 브라질의 축구가 분명히 구분된다고 봤다. 좀 더 나아가 브라질의 축구는 지나친 대내외적인 조직과 획일화된 전체주의적인 상황에 저항하는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질베르뚜는 영국은 정통적인 아폴론(Apollonian)형 경기를 하고 브라질은 디오노시안(Dionysian)형의 춤을 춘다고 평가했다. 브라질 축구가 얼마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것인가를 찬양한 것이었다. 또한 호베르뚜 다마따(Roberto da Matta)는 브라질의 강하고 예술적인 축구를 서구유럽의 합리성과 마술적, 초자연적인 세계간의 관계까지 확대된 브라질 사회의 저항과 직접적으로 연결 짓기도 했다.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
1938년 이후 우리에게 알려진 물라뚜 축구 스타들은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Leônidas da Silva), 도밍구스 다 기아(Domingos Antônio da Guia), 지지(Didi), 펠레(Pelé), 자일징뉴, 호나우두(Ronaldo), 호나우징뉴(Ronalzinho), 호빙뉴(Robinho), 네이마르(Neymar) 등 많은 선수들이 있다. 브라질 축구 스타들은 물라뚜 축구를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축구 스타일을 만들었으며 동시에 축구를 통해 명예와 부를 쌓았다. 이것 때문에 브라질인들은 축구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미 기득권층이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사회구조에서 유일하게 아직 작동하고 연결되어 있는 분야가 스포츠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싶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축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브라질의 축구시스템은 한국의 교육제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물라뚜 축구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자유롭게 경기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두 선수가 있는데, 바로 레오니다스 다 시우바와 도밍구스 다 기아 이다. 둘은 1938년 월드컵에서 공격수와 수비수로 함께 뛰었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성격과 축구스타일로 인해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물론 두 선수에 대한 평가가 축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 상황에 따른 것으로 물라뚜 축구의 탄생과 발전 과정에서 겪게 되는 정치 문제들을 접근해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인물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축구와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경제에 많은 도움을 준다. 본고에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지만 경제효과가 매우 큰 산업이면서 브라질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산업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