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우요아발렌수엘라(칠레국립대학교,마푸체 원주민 운동가)
한글번역 : 손현정(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연구보조원)
아라우카니아 지역에 대한 이해를 좀 돕기 위해 우리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빌리자면, 아라우카니아(La Araucanía) 1) 는 벨기에(삼만평방킬로미터)와 면적이 거의 같다. 이에 반해 한국의 면적은 십만평방킬로미터이다. 영토의 상하길이가 사천킬로미터인 나라인 칠레에 있다 보면 비율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라우카니아 지역은 벨기에나 한국과는 말할 것도 없고, 칠레의 다른 지역들과도 사뭇 다르다. 칠레사람들 중 한국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한국사람들 중에 칠레는 고사하고 아라우카니아지역이 어디있는지 지도에서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라우카니아 지역을 두고 이전 스페인 정복자들은 “땅(La Tierra)”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늘날 마푸체 자치권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라우카니아를 일컬어 굴루마푸(Gulumapu)라고 하는데 이는 “서쪽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현재 아르헨티나 영토 내에도 칠레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정부에 원주민 땅에 관한 원주민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이 땅은 푸엘마푸(Puelmapu)라 하며, 이는 “동쪽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원주민 자치권을 요구 받고 있는 이 일대의 원주민 영토를 모두 월마푸(Wallmapu)라 하며, 이는 “모든 땅”이라는 뜻이다. 필자가 본문에서 언급하는 아라우카니아는 아라우코전쟁이 일어났던 구역을 칭하는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몇 몇 학자들은 본 구역의 원주민인 마푸체족을 중국제국에 맞서 싸운 몽골인들과 비교하면서, 마푸체족을 정복하고자 했던 스페인 제국은 중국에 비교하기도 한다. 2) 중요한 점은마푸체의 저항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4년, 아라우카니아를 방문하는 동아시아 출신의 여행객이나 관광객이라면 무엇보다아라우카니아를 가로지르는 강줄기들과경관을 장악하고 있는 화산들, 그리고 아라우카니아 전역을 뒤덮고 있는 소나무들에 눈이 먼저 갈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소나무들은 최근에 심어놓은 것들이고, 아라우카니아 지역이 그 원산지도 아니다. 3) 필자가 아는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소나무를 ‘상록수’라 하며 귀하게 여기는데 이에 반해 아라우카니아의소나무 플랜테이션들은 이 지역에 아주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켜 왔다.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는 아라우카니아 주의 수도인 테무코에서 북쪽으로 육백칠십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칠레 총 인구 천육백만 가운데 산티아코 인구가 칠백만명 가량인데 비해 테무코 인구는 삼십만 명도 채 안 된다. 또한 아라우카니아 주 전체 인구는 주 안에 거주하는 칠레인들과 마푸체를 다 합쳐도 백만 명도 안 된다. 영토 크기가 거의 같은 벨기에의 인구가 천백만 명인 것과 비교해볼 때 아라우카니아 주는 인구가 아주 적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이 지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아라우카니아는땅이 부족했다.
이 지역민들에게 땅이 언제나 부족하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1881년 칠레군대가 테무코 도시를 건설했던 역사로부터 연유한다. 1541년 아직 잉카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던 곳에 정복자들이 세운 도시인 산티아고와 비교해 보면 테무코는 훨씬 최근에 건설된 편이다. 자치권을 주장하는 마푸체인들은 1881년 테무코 도시 건설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아울러 “아라우카니아 점령” 4) 이 130년이 넘도록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 한다.
아라우카니아의 경우를한국의 사례와 비교해 보자면, 한국은 이와는 달리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치하에 있었으므로,두 사례 사이에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시간 차이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그것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도 상당히 다를 것이다.이 외에도 산티아고와 테무코 사이의 거리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있는 800킬로미터가 넘는 휴전선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하지만 세계 13위의 경제강국인 대한민국과 달리 아라우카니아는 현재까지 칠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칠레는 기본적으로 1차 상품생산국이다. 구리, 셀룰로오스와 같은 삼림 부산물 그리고 생선가루 등이 칠레가 생산하는 1차 상품 품목에 해당한다. 언급한 세 가지 상품에 있어서는 칠레가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나, 막상 소나무와 유칼리나무 플랜테이션 농장들이 거의 모든 영토를 장악하고 있는 아라우카니아 지역은 이로 인해서 별로 득을 보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이들은 드물다. 필자가 가장 최근에 본 자료에도 확실히 아라우카니아 지역의 소득이 칠레에서 가장 낮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데이터들이 모든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아라우카니아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지속가능성”이라고 한다면정작 평가해야 할 것은 일인당 소득 따위보다플랜테이션 농법으로 인한 농약폐해, 농업폐기물, 수자원의 불평등한 배분 따위일 것이다.이런 요인들을“외부성(externalidades)”이라고도 하는데, 주류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다.아라우카니아의 문제는 어찌 보면 국내에서 가장 낮은 일인당 소득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외부성에 해당하는 요인들인 것이다.
칠레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지역들은 대체로 가장 오염이 심한 곳들이다. 그러나 아라우카니아 지역은 여전히매우 청정한 곳이다. 이 곳에서는 앞서 이미 소개했던이 지역 고유의 두드러지는 광경들이라 할 수 있는강들,소나무들 그리고화산들이각각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연 경관을 장엄하게 지배하는 화산들과 여러크고 작은 지류를 따라 흘러가는 강줄기들과 자연환경들이모두어우러져 아라우카니아 원주민들의 우주관과 땅, 더 나아가 대륙에 대한 관념 등이 형성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아라우카니아 지역과 관련하여 주목할만한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장 최근의 두 임기를 맡은전직 대통령 두 사람인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미첼 바첼렛이 각 각 아라우카니아 지역에 별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그들의 별장이 있는까부르구아(Caburgua) 호숫가지역에는 소나무들이 그리 많지 않아 호수의 물이말라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이 지역의 별장주들은 소나무 플랜테이션 농장들의 폐해와 동 떨어져서 자연경관을 누릴 수 있다.
한 편, 까부르구아 호숫가 외의 지역에는 플랜테이션 농법이 지하수를 마르게 하여 물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런 곳들에서는마치(machi) 5) 라고 하는 마푸체 무당(shaman mapuche)들이 활약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마푸체 의술과 주술을 실시하며 인간이 평온하게 살기 위한 방식으로써 자연과 화합하여 상생하기를 꾀한다. 마치들은 풀루(pullü)라고 하는 여성의 혼을 내림 받기는 하지만 이들 중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있다. 칠레는 이 마치들을 특정 전문인으로 인정해준다고 하였으나 그들의 의술행위가 환자의 상태를 도리어 악화시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며 부분적인 제한 사항을 두고 있다. 게다가 “소나무들에 의해 위협받은 땅의 정령들”과 “보이지 않는 세력들”, 그리고 “가뭄” 사이에 화해와 조정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마치들의 주술활동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많은 칠레인들은 이들이 동성애자들일 것이라느니, 테러범들이라느니 하며 이들을 두려워하고 혐오스러워 한다.
칠레는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는 국가이다. 그러나 카톨릭은 여전히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칠레의 카톨릭 교회는 몇십년 전부터 이미 이 마치들을 “마녀” 혹은 “사기꾼”들로 낙인찍은 전적이 있다. 또한 칠레 사회 전체가 이 마치들의 경고는 단지 지역 경제에 흠집을 내려는 의견일 뿐이라며 언제나 무시해 왔다. 그러나 아라우카니아 지역의 강들과 화산들은 이 마치들에게 계속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소나무들, 소나무들, 소나무들... 칠레와 한국을 비교하기 위해 소나무 얘기를 해보려 하였다. 한국에서 소나무는 언제나 푸르다 하여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지만 칠레 남부 아라우카니아 주에서 소나무는 마푸체들의 귀중한 물을 메마르게 하는 존재이다. 소나무 생산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칠레의 이 소나무들 중에는 가공 및 공정과정을 거쳐 아시아 국가로 향하는 것들도 있다. 일본과 더불어 한국 또한 칠레 소나무 소비국들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막에 얽힌 자세한 사정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갈등의 땅과 역사, 무당 그리고 소나무: 이런 것들은 아라우카니아와 한국을 공통분모로 이어주기도 하지만 내용의 이질성으로 서로를분리시키기도 한다. 같은 지구촌의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리고 이 도전을 극복하는 것은 서로 간 무역을 할 때나 언어장벽을 허무는데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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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레는 총 15주로 구성되어 있다. 아라우카니아는 칠레 남부에 있는 주이며, 주도는 테무코이다. 북쪽으로 비오비오강, 남쪽으로 로스 리오스 주, 동쪽으로 아르헨티나 그리고 서쪽으로 태평양 연안과 경계를 맞대고 있다. 이 지역은 마푸체 원주민들이 집중적으로 분포한 곳으로, 19세기 초중반부터 마푸체와 칠레당국간 전쟁이 몇 차례 발발하였고, 현재까지도 마푸체 원주민들이 자치권을 요구하여 정부와 대립 각을 세우는 등 역사적인 분쟁지역이다. (역주)
2. 마푸체와 몽골은 무엇보다 양쪽 다 부족집단에 기마민족이라는 큰 공통점이 있다. 반면 스페인과 중국은 모두 문명을 이룬 제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은 듯 하다.(역주)
3. 그렇지만 아라우카니아 땅에 소나무가 그 전부터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그 지역에서 나던 토종 칠레소나무의 학명은 ‘Araucariaceae’로써 아라우카니아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재래종 칠레소나무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실시하면서 들여 온 해외종 소나무와 유칼리나무들이 토양의 자양분과 물을 다 흡수해 가면서 동시에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뿌려대던 농약이 퍼지면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http://www.viveagro.cl/index.php/disminuye-el-bosque-nativo-en-chile-aumentan-plantaciones-de-pino-y-eucaliptos/(역주)
4. 보수역사가들은 이를 ‘아라우카니아 평정(Pacificación de Araucanía)’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평정이라는 말은 순전히 정복자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라고 비판한다.(역주)
5. 마치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 국내연구자의 자료로는 다음의 것이 있다. 사회적 행위주체와 칠레의 다문화주의 사회정책: 박윤주, Asian Journal of Latin American Studies, 2008, Vol. 21 (역주)
글쓴이: 페르난도 우요아 발렌수엘라(Fernando Ulloa Valenzuela)
칠레 테무코 출신, 아라우카니아 역사와 칠레의 식민시대와 19세기 역사 전공, 마푸체 연구에 특히 주력하고 있음.
<연구성과물>
2013년
“Cheuntu, los lenguaraces y su inserción en Araucanía siglo XIX. Ponencia presentada en las Primeras Jornadas de Historia de la Pacificación de La Araucanía, Museo Histórico Militar, Santiago.
“La guerra, la paz y la palabra: ¿Qué era un parlamento?”. Ponencia presentada en el Centro Cultural de Lautaro, en el marco de la extensión del Proyecto U-Cátedra Indígena, Lautaro.
“Parlamentos entre españoles e indígenas”. Conferencia presentada en el Museo Regional de La Araucanía, inserta en el Programa de la Semana del Patrimonio Cultural de Chile, 2013, Temuco.
2012년
“Defensa del Mar. Derechos, recursos comunidades y costumbres”. Presentado en el Festival Libr3. Tecnología, Cultura, Sustentabilidad, Facultad de Ingeniería, Universidad de Chile, Santiago.
2011년
“Los Lenguaraces de Arauco. Capitanes de Amigos y Comisarios de Naciones en el Siglo XIX”. Ponencia presentada en las VIII GarciadasCañetinas, organizadas por la Agrupación Cultural Artis de Cañete.
“Borde Costero y Defensa del Mar. El posible ducto de Celulosa Arauco en Mehuín”. Charla dada en el Festival Medioambiental de Santiago (FEMAS), Parque O’Higgins, Santiago.
2010년
“Entre la Autonomía y la Asimilación: Los mapuche, los lenguaraces y la naciente República de Chile hacia 1825”.Ponencia presentada en las X Jornadas de Estudiantes de Postgrado en Humanidades, Artes, Ciencias Sociales y Educación PENSANDO EL BICENTENARIO, Doscientos años de resistencia y poder en América Latina, organizadas por el Centro de Estudios Culturales Latinoamericanos, Universidad de Chile, Santiago.
2009년
“Trece años de resistencia: La situación de los mapuche-lafkenche de Mehuin”. Ponencia presentada en el Encuentro Nacional de Estudiantes de Antropología y Arqueología, FACSO, Universidad de Chile, Santiago.
2008년
“Mediación y conflicto en Araucanía en tiempos de la Guerra a Muerte: El caso de los lenguaraces Burgos, (1817-1825)” (avance de tesis). Ponencia seleccionada para ser presentada en las III Jornadas de Historia de la Universidad San Sebastián de Concepción, “Construyendo una Nueva Historia”, Concepción.
“Entre una Independencia y una Ocupación: Los mediadores mestizos y su accionar en la Sociedad Mapuche, Chile (1817-1825)”. Ponencia presentada en el Primer Encuentro Nacional de Estudiantes de Historia ENE.-Chile, Universidad Cardenal Silva Henríquez, Mesa Indigenismo y Resistencia, Santiago.
“Una [er]radicación temprana y un aeropuerto de corto vuelo: El caso de las comunidades de Maquehue (siglo XX)”. Seleccionada para ser presentada en las IV Jornadas de Patrimonio Cultural de la Araucanía: “Valorando nuestra memoria”, Victoria, IX región de la Araucanía, 8 de noviembre de 2008 (manuscrito inédito).
2007
“Juan Catriel Rain en el Parlamento de Koz-Koz: El surgimiento de un lonko del siglo XX (1900-1907)”. Ponencia seleccionada para ser presentada en las II Jornadas de Historia de la Universidad San Sebastián de Concepción, “Construyendo una Nueva Historia”, Concepción.
그 외 여러 학술활동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