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주(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우리는 언제부터, 왜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을까?

인간은 사바나의 쓰레기 청소동물이었던 35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부터,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수렵채집과 사냥으로 생활하던 1만년이전의 현생인류까지 식물재배 즉 "식량생산" 을 하지 않았다. 먹을 것을 직접 재배한다는 것은 350만년 이상 지속되어 왔던 전통적인 생존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급진적인 생활양식의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식물재배와 수렵채집이 의미하는 문화적 차이는 환경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인지,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것인지를 비교할 수 있는 문화적인 혁명과도 같다. 또한 수렵채집은 이동을 전제로 하는 생계수단이고, 식물 재배는 정주와 영구정착을 필요로 하는 생산방식이다. 정착생활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징하며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유아사망률이 낮아지고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인구는 증가하고 사회조직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계급과 함께 국가가 발생할 수 있는, 문명형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식량생산과 잉여농산물의 증가는 고대문명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고대문명은 중국의 동아시아 문화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동문화권, 중미의 메소아메리카문화권, 남미의 안데스 문화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의 문화권은 주된 식량원이 될 수 있는 주 재배작물을 집중적으로 순화시키며 품종개량을 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켰다. 야생식물이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로 개량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위적인 문화 선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환경에 적합한 생육조건을 갖추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보관이 용이한 품종이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재배되었지만 주된 열량공급원으로 선택된 식물은 극히 일부분이다. 이중 각 문명권을 상징하는 대표 작물로 중동의 밀, 아시아의 쌀, 안데스의 감자, 메소아메리카의 옥수수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이 네 가지 작물 중 최소한 하나이상을 매일같이 섭취하고 있다.

  주식으로든 간식으로든, 우리네 먹을거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인 열량공급원들이다. 그러나 이 먹을거리들이 유기농인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외에, 어디에서 왔는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문화적으로 어떤 상징을 의미하는지를 학술적으로 고민해본적은 없을 것이다. 매일같이 먹는 주식이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식탁이 풍요로워질 것 같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로 "옥수수 문명을 따라서" 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메소아메리카, 특히 마야문명에 대한 연구를 쉬지 않고 매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무이한 마야문명 전공 고고학자이다. 지금까지 메소아메리카 문명과 관련된 여러 저서를 출간 하였는데, 이번에 옥수수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을 집필하였다.

  필자는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과 발전과정이 옥수수의 기원 및 재배작물로의 순화 과정과 일치한다는 점을 주시하며 옥수수의 의미와 생산과정, 신화와 전설을 포함한 상징체계 등을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물, 유적과 고대 원주민 언어, 신화와 전설, 현대 원주민부족의 의례에 관한 민족지 조사 등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과 발전과정이 옥수수의 기원을 비롯해 재배작물로의 순화과정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메소아메리카에서 옥수수의 기원은 농경의 기원과 발달, 문명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리처드 맥니쉬와 켄트 플래너리 라는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해서 밝혀졌는데 이 책에는 이들이 떼우아깐 계곡과 길라 나끼쯔에서 수년간에 걸쳐 실시한 발굴과정, 유물 수집, 분석이후 분석결과에 따른 연대기 설정 상황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져 있다. 발굴결과에 의하면 메소아메리카의 옥수수 재배는 지금부터 5000-10000년 사이에 멕시코의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옥수수가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중요한 식량공급원이 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3000년 전 현재와 거의 같은 옥수수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라고 한다. 옥수수를 집중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메소아메리카 모든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로 선택 되었다.

  현재까지 옥수수의 기원이 되는 야생종이 발굴되지는 않았으나 초기 재배 옥수수는 떼오신떼라는 야생 옥수수를 순화시켜 품종 개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의 DNA연구의 결과도 떼오신떼가 옥수수의 직접적인 조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양한 지역에서 재배되는 옥수수 종 은 약 40여 가지가 되고 각각의 종 안에 수많은 변종이 있다. 멕시코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재배되는 끄리오요 종에는 17개 이상의 변종이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원주민 언어인 나우아뜰어로 옥수수는 성장상태와 줄기 잎 등에 따라 7가지가 넘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옥수수를 칭하는 단어가 부위별, 성장 정도에 따라 다양한 것은 그 문명에서 옥수수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도와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6600-3500년 사이에 나타난 대표적인 원주민 언어인 오또만게, 미헤소께, 우토 나우아뜰, 마야 언어 등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옥수수에 관한 용어들에 주목하면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언어의 연속성과 함께 옥수수와 관련된 용어들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언어와 함께 밭을 불태우는 화전이라는 기술적인 옥수수의 재배방법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사상, 관습 등의 정신적인 문화도 함께 보존되어 전승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옥수수문명이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에 의하면 옥수수와 연관된 모든 것, 옥수수인간의 창조, 풍요로운 수확을 위한 의례행위 등의 일상생활의 관습과 철학이 올메까, 마야, 떼오띠우아칸, 아스떼까와 같은 메소아메리카 고대문명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문명의 형성기인 선 고전기부터 스페인에 정복당하기 전인 후기 고전기까지 메소아메리카의 여러 문명들은 옥수수를 상징하는 제례의식이 행해지던 신전을 세우고 옥수수신의 형상을 새긴 부조와 토기, 벽화 등을 만들었다.

  메소아메리카 고대문명은 역사적인 시기구분과 정치적 변혁기에 따라 지배자인 왕의 모습을 옥수수재배와 관련된 비의 신 과 사제의 모습을 합친 절대 권력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이념으로 역법과 천지창조라는 복잡한 우주관을 발전시켰다. 또한 옥수수인간이 창조되는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의례행위들을 중시했으며, 현실적으로는 신전, 궁전, 도로 등을 건설하며 도시국가로 발전하여 고대문명이 되었다.

  필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마야의 이사빠, 빨렌께 유적과 유물, 떼오띠우아깐의 사꾸알라 궁전의 벽화에 그려진 비의 신 뜰랄록, 아즈떼까의 옥수수여신 치꼬메꼬아뜰을 포함한 여러 신들과 정복기 이전의 고문서등 고고학 유적과 유물 뿐 만 아니라 대표적인 마야창조신화인 뽀뽈 부 의 내용에 대해서 자세한 분석과 해석을 하고 있다.

  전기 고전기인 찰까친고 유적의 동굴부조에서 나타나는 지배자는 하늘에 있는 비의 신에게 비를 부탁하는 사제로서의 기능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옥수수는 지배자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다.

  올메까문명의 떼오빤떼꾸아니뜰란 유적의 중앙신전에는 지배자를 상징하는 재규어 가면을 쓰고 기우제를 주관하는 왕이 동서남북 네 방위에 옥수수를 세우고 그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네 방위의 가운데 중심 옥수수로 표현된 조상이 세워져 있다. 지배자인 왕이 신이 되어 하늘과 땅을 떠받치는 세계나무가 되어 세상을 지배한다는 메소아메리카문명의 세계관의 기초가 형성이 되는 것이다.

  옥수수의 중요성은 고대문명 뿐 만 아니라 현존하고 있는 메소아메리카의 원주민사회에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초기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던 내용들인 마야의 칠람발람 추마엘, 우아스떼까의 옥수수영웅신 띠빡 뿐 만 아니라 치아빠스와 과테말라등지의 원주민 부족들에게서도 옥수수에 관한 신화와 전설은 부족민들에게 구전되어오며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옥수수는 여전히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식량이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이다. 그들은 옥수수를 어떻게 재배하기 시작했는지, 옥수수색깔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인지, 자신들의 조상신과 옥수수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등에 관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문화적인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씨뿌리기 전 땅을 고르고 잡목을 제거하는 과정부터 추수가 끝날 때까지의 전 과정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의례도 여전히 원주민 마을에서 행해지고 있다. 유카탄 반도에서는 비를 기다리며 비의 신 착 에게 기도하는 비를 비루는 의례 "차착 기우제가 파종시기인 5월부터 추수가 끝나는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마을의 샤먼인 희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차착의례에서 네 방위에 기둥을 세우고 의례주관자인 희멘이 네 방위의 중심에서 세상의 가운데에 있는 옥수수나무로 변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옥수수문명의 정신과 문화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한 이후 아메리카는 원주민과 정복자들의 혼혈로 탄생한 메스티조가 전체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가톨릭과 원주민 문화가 융합된 라틴아메리카문화가 이루어졌다. 주민의 절대다수가 가톨릭 신자들인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은 정복이후 기독교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오늘날 원주민들의 의례나 종교행사에는 여전히 옥수수에 기초한 고대문명의 세계관이 나타나고 있다.

  식민지배 상황에서도 원주민들이 자신들 문화의 핵심 요소들을 유지할 수 있었고 원주민들의 문화가 전승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바로 옥수수인 것이다. 옥수수재배와 관련된 고대 메소아메리카 문화는 옥수수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가톨릭과 결합하였던 것이다. 옥수수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메소아메리카 문화의 연속성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이다. 즉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옥수수문명이다.

  옥수수에 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 거리가 존재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단언컨대,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메소아메리카 고대문명에 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읽는 도중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의 만족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메소아메리카 고대문명의 전반적인 내용과 현재 유카탄 반도에서 살고 있는 마야인들의 차착 의례라는 민족지 조사까지, 옥수수라는 먹을거리 하나로 흥미롭게 엮어낸 저자의 분석의지가 경이롭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로도 이렇게 흥미롭고 다양한 얘깃거리를 풀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