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2013년 라틴아메리카는 정치적으로 급격한 변화 없이 비교적 평온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전환이 시작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언뜻 불분명해 보이는 이러한 전망은 현재 라틴아메리카 정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ávez)의 건강이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의 존재를 이유로 한다. 1999년 집권하여 연임을 거듭했으며 지난 2012년 10월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하여 2019년까지 임기를 보장 받은 차베스 대통령은 집권 이후 볼리바르주의에 입각한 21세기 사회주의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치를 주도해왔다. 특히 새로운 정치 아젠다와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활용한 차베스 정권의 국제연대 강화 노력은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식 대안(ALBA), 남미국가연합(UNASUR), 그리고 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의 지역 기구에서는 물론,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에콰도르 등의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한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2011년 처음으로 알려진 차베스의 건강이상은 2011년 6월에 이어 2012년 12월에 실시된 두 번째 암수술로 이어지며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2013년 1월 10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 불투명한 가운데 차베스 대통령의 건강은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치의 운명은 물론 라틴아메리카 정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특히 지난 10월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 어떤 선거보다도 근소한 차이를 보였던 결과는 만약 차베스의 유고로 인해 치러질 수 있는 재선거에서 집권 좌파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풍운아 차베스의 건강 문제가 아니라면 2013년 라틴아메리카 정치는 비교적 평온한 해가 될 가능성이 많다. 2013년에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에콰도르, 파라과이, 칠레, 온두라스 등 4개국에서 대통령 선거와 의회선거가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쿠바 등 2개국에서 의회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는 예년보다 적은 규모로서 선거를 통한 큰 변화가 많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우선 2월 17일에 실시될 에콰도르 대선 일차투표(필요시 결선은 4월 7일)와 총선에서는 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와 그의 집권당이 큰 이변이 없는 한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2007년 집권한 이후 최근의 에콰도르 역사에서 드물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코레아 대통령은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1월 17일에 일차 투표(필요시 결선은 12월 15일)가 치러지는 칠레의 대통령 선거의 결과 또한 현재로서는 비교적 분명하게 예측되고 있다. 일 년여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러 변수가 개입될 여지가 있지만, 중도좌파 연합의 미첼 바첼렛(Michelle Bachelet) 전 대통령(2006-2010)이 현재로서는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상태이다. 차기 대통령으로 바첼렛 전 대통령의 부상은 2010년 3월 퇴임 당시 지지율이 84%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개인적 인기와 중도 우파인 현 세바스티안 피네라(Sebastián Piñera) 정권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2013년 라틴아메리카에서 치러질 다른 두 개의 대통령 선거에는 좀 더 복잡한 상황들이 연루되어 있다. 우선 4월 21일로 예정된 파라과이 선거의 경우 2012년 6월 페르난도 루고(Fernando Lugo)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빚어진 정치적 갈등이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해방 신학 사제 출신으로 2008년 보수 우파인 콜로라도당의 61년 집권을 종식시키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페르난도 루고는 집권 후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의 외면과 잇단 스캔들 끝에 결국 권력을 잃었다. 4월 선거는 2012년 일어난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강력한 권력기반을 가진 보수정당 콜로라도당은 기업가 출신의 오라시오 카르테스(Horacio Cartes)를 후보로 선출했으며, 루고가 결성한 중도좌파연합 프렌테 구아수(Frente Guasú)는 아니발 카리요(Anibal Carrillo), 루고의 연정 파트너였던 자유당은 에프라인 알레그레(Efrain Alegre), 그리고 또 다른 우파인 전국시민연합은 군부출신의 리노 오비에도(Lino Oviedo)를 후보로 선출하였다. 루고 전 대통령은 대통령 대신 상원의원에 출마하지만, 무기력하게 탄핵 당했던 루고 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한편 대통령 선거의 경우 강력한 선거 기반을 가지고 있는 콜로라도당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형세이나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이 드는 박빙의 상황이다. 11월 치러지는 온두라스 대선 또한 재기와 복수를 주제로 한 정치 드리마가 주제이다. 2009년 마누엘 셀라야(Manuel Zelaya)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되고 망명을 떠남으로서 시작된 온두라스의 헌정 위기 사태 또한 다시 한 번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셀라야 축출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당의 포르피리오 로보(Porfirio Lobo)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는 11월 대선에서는 기존의 양대 정당인 국민당과 자유당 후보는 물론 전 대통령 셀라야의 부인 시오마라 카스트로(Xiomara Castro)가 신당 리브레(Libre)의 후보로 출마한다. 19세기 이래로 구축된 보수당과 자유당의 전통적인 양당 구조에 셀라야의 신당이 가세한 온두라스 대통령 선거는 비슷한 구조로 치러지는 파라과이 대선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정치 민주화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베스의 건강과 선거 이외에도 2013년 라틴아메리카 정치에서는 살펴볼 몇 가지 이슈들이 있다.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 12월 1일 취임하여 실질적으로 집권 첫 해를 맞이하는 멕시코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정권의 행보이다. 집권 초기 노동, 연금,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개혁 조치들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리고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가는 마약 관련 조직범죄와 치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심사이다. 지난 12월 20일 야당인 민주혁명당 및 국민행동당과의 국정 협력을 위한 소위 '멕시코 협약'을 이끌어 내며 비교적 순탄하게 정권을 시작한 페냐 니에토 정권의 집권 첫 해는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차베스와 브라질의 부상으로 흔들리는 라틴아메리카 지도국의 지위를 되찾으려는 멕시코의 미래를 결정지을 한 해가 될 것이다. 물론 첫 해의 성과에 따라 실망감을 키울 개연성도 존재한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정치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슈로는 콜롬비아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좌익 게릴라와의 평화회담과 관련된 것이다. 현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의 주도 하에 진행되고 있는 최대 무장 좌익게릴라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FARC)과의 평화회담의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획기적 타결이 일어나기 보다는 생각보다 긴 정치적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평화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콜롬비아의 정치와 경제적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됨은 물론 지역의 폭력종식과 정치적 안정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다른 관심사로는 집권 2기를 맞이하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와 라틴아메리카의 관계이다. 세계 초강대국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중국,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 외교와 안보 정책의 핵심이 된 중동 그리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관심이 커진 유럽 등 산적한 대외 이슈에 묻힌 오바마 행정부 1기의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관계는 방치된 뒷마당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어울릴 정도였다. 하지만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집권2기 또한 앞서의 대외 변수들에 큰 변화가 없는 한 미국의 대라틴아메리카 관계는 집권 1기의 기조를 유지하리란 전망이다. 만약 변화가 있다면 집권 2기를 맞이한 오바마가 대쿠바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인데 이 또한 쿠바 내부의 가시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다는 점에서 카스트로 형제의 거취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밖에도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2011년 재선 이후 경제 침체로 지지율이 하락하여 고전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의회선거가 있다. 중간선거의 형식으로 치러질 의회선거는 페르난데스 정권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으나 2012년 하반기와 같은 사회적 저항은 경기회복과 함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월드컵 준비가 한창일 브라질의 경우 정치 이슈보다는 경기부양과 같은 경제 이슈가 더 큰 관심을 끄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2013년 라틴아메리카는 몇 가지 상황이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순탄하고 안정적이며 평화와 민주주의가 진전되는 한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