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2012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실용적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로의 수렴이라는 최근의 경향이 지속되었다. 급진적 노선으로 나아갈 것이 우려되었던 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함으로써 오히려 시장경제를 활성화했다. 한편 199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석유산업을 전면 민영화했었던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는 스페인의 Repsol사가 보유한 YPF의 주식 51%를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석유산업에서 외국인 투자가 미약했던 페루는 그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반면, 과거 과도하게 민영화를 단행했던 아르헨티나는 석유산업의 국가통제를 오히려 다시 강화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데올로기적 선택이라기보다 각국 석유산업이 처한 현실에 따른 실용적 선택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말해 현재의 선택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석유산업의 국유화가 앞으로 계속 강화될 것이라거나, 페루에서 외국인 투자 개방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제 좌파와 우파를 떠나 석유산업의 국유화나 개방화 문제도 실용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6월 22일 파라과이 의회가 사실상의 쿠데타를 통해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을 해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범위한 토지개혁을 추구함으로써 보수층에 의해 '지나치게 과격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루고는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남미에서 가장 낙후한 파라과이는 아직 중도좌파 성향의 개혁조차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12년간 정권을 잡았던 우파 국민행동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중도파 성향의 제도혁명당이 다시 복귀했다. 과거 72년간 멕시코를 지배했던 제도혁명당의 승리를 '민주주의 후퇴'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파의 실패와 좌파의 준비 부족이 제도혁명당의 승리를 가져왔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10월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가 네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야권이 단합하여 도전했지만, 차베스는 54.6%의 득표율로 무난히 승리를 거두었다. '급진 좌파'라는 딱지가 여전히 붙어있지만 최근 들어 차베스 정부는 보다 온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같은 달 칠레에서는 현 여당인 우파가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러한 결과는 2013년 대선에서 중도좌파 정부의 복귀 가능성을 보다 높게 만들었다. 9월에는 콜롬비아에서 정부와 좌파 게릴라 사이에 평화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좌파 게릴라가 사라질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013년에도 실용적 중도좌파로의 수렴이라는 최근의 경향은 전반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세계의 주목을 끌 두 가지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첫 번째는 카스트로의 사망 가능성이다. 그의 사망은 매년 그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그를수록 매년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카스트로의 사후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행하고 있는 개방과 개혁 정책이 보다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회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카스트로 사후의 쿠바를 흔들 것이다. 어쨌든 만약 카스트로가 정말로 사망한다면 그것은 한 동안 모든 이의 관심을 쿠바로 집중시킬 2013년 최대의 빅 이슈가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사망 가능성도 2013년 라틴아메리카를 크게 뒤흔들 중요 이슈이다. 그는 네 번이나 암수술을 받았으며,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회복이 불확실한 상태이다. 그는 이미 1월 10일로 예정되었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현재 취임식은 연기된 상황이다. 차베스는 그가 물러난 후에도 볼리바르 혁명을 지속하게 하기 위해 그를 대신할 인물로 최측근인 니콜라스 마두로를 부통령에 임명했다. 그러나 마두로는 차베스와 같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최근에 차베스주의에 대한 지지도도 많이 떨어졌다. 과도한 재정지출로 2013년 재정적자가 GDP의 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됨으로 긴축정책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차베스가 사망하고, 대선이 다시 치러져 차베스파가 승리한다 하더라도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가 제대로 지속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또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유지된 반미 볼리바르 동맹(ALBA)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결국 차베스가 권력에서 사라진다면 누가 권력을 잡던 베네수엘라도 브라질의 룰라 정부와 같은 실용적 온건좌파의 사회민주주의 모델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와 함께 또 하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역사적 사건으로는 콜롬비아의 평화협상 성공 가능성을 들 수 있다. 2014년 재선을 노리는 마누엘 산토스는 평화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수십 년 지속되어온 콜롬비아의 폭력 상황을 끝내기를 원한다.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전통적 좌파 게릴라가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만약 폭력 상황이 종식된다면 콜롬비아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통해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FARC도 지루한 무장 투쟁을 끝내고 2014년에는 선거에 참여하기를 내심바라고 있다. 따라서 콜롬비아에서 무장 투쟁이 종식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2013년 라틴아메리카에서 선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가장 중요한 선거로는 11월에 치러질 칠레 대선이 있다. 이 선거에서 중도좌파의 미첼 바첼렛은 현 여당인 중도우파의 라우렌세 골보르네 후보와 접전을 벌이겠지만 결국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기존의 건전한 재정정책과 시장주도경제는 지속되겠지만 칠레 국민은 그것이 우파보다는 좌파에 의해 실행되는 것을 더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국가들 중에서는 2월에 열리는 에콰도르의 대선이 있다. 여기서는 현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가 오일 붐과 복지로 얻은 인기로 분열된 야당을 제치고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차베스의 볼리바르 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안 어센지에게 기꺼이 망명처를 제공할 정도로 미국과 각을 세워 왔다. 따라서 카스트로와 차베스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재선 과정을 통해 코레아가 라틴아메리카 반미주의의 상징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파라과이에서도 4월에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여기서는 보수 성향의 콜로라도 당의 재집권이 예상된다. 남미 최빈국 파라과이에서 좌파 정권의 개혁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콜로라도당이 집권하더라도 토지 없는 농민과 정치적 '루고파'의 저항, 좌익 게릴라의 준동 등으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대선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선거로는 10월에 있을 아르헨티나 의회의 중간 선거가 있다. 현 대통령 크리스티나는 3선에 필요한 개헌을 위해 여당이 3분의 2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라겠지만 그녀는 먼저 심각한 경제적 상황을 타개해야 할 것이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불안한 국제수지 등으로 언제 폭파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풍작과 브라질 경제의 회복 등으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대가 순조롭게 충족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어 사회적 불안이 야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적 전망이 결국 경제적 상황에 의존한다면 2013년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변수는 역시 원자재 가격이다. 따라서 그의 가장 중요한 수입국인 중국 경제의 회복 여부가 큰 관심사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지탱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중국 때문이었다. 중국은 이미 브라질, 칠레, 페루의 1위 교역국이며, 아르헨티나와 쿠바의 2위 교역국이다. 멕시코를 제외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여전히 1차 산품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중국 경제가 경기둔화를 넘어 불황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이 지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상황이 몰고 올 정치적 영향 또한 매우 클 것이다.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 경제와 재정절벽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미국 경제가 조만간에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중국 경제의 변수는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편 라틴아메리카의 두 대국 멕시코와 브라질은 큰 정치적 경제적 이벤트가 없는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새로 출범한 페냐 니에토 정부가 '석유는 국민의 것'이라는 오래된 인식을 깨고 천연가스, 심해석유, 정유 산업 분야에서 민간투자를 허용하는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멕시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석유산업의 민간 투자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이다.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부패 척결 의지가 후견인주의 정치적 전통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관심사이다. 그러나 그보다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브라질 경제의 회복 여부가 2013년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중요한 관심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래저래 2013년 또한 흥미로운 한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