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섭(연구교수, 한국외대 한중남미녹색융합센터)
들어가며: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4,300㎞에 달한다. 구리 광산과 포도주, 잘 반전된 민주주의 시스템, 민주적 거버넌스의 투명성, 밝고 안정된 사회와 문화, 그리고 환태평양 조산대의 지진 등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안정을 기반으로 칠레는 현재 중남미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 비록 여타 중남미 국가들과 비교해 자원이 많지도 않고(구리자원 예외), 경제여건이 더 유리한 편도 아니지만 칠레는 국가발전 전략으로 1980년대 이후 적극적인 경제개방과 민영화 정책을 통해 오늘날 안정적인 국가 운영을 하고 있다. 칠레의 경제개방 전략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가 FTA이다. 1990년대 초반이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에 이르러 61개국과 24개의 협정을 체결해 세계에서 FTA를 가장 많이 한 국가가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에서 무역 및 경제영토가 가장 넓은 국가가 칠레다. 칠레는 이제 대부분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됐으며, 21세기 들어서는 아시아 국가들과 차례로 FTA를 체결해 나가고 있다. 일종의 '아시아 기회(Asian Opportunity)' 전략이다. 스페인의 식민지로부터 19세기 초반 독립을 한 이후에도 칠레는 오랫동안 유럽과 미국을 대상으로 무역협력을 집중해 왔지만 이제는 시선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기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칠레만의 전략이 아니다. 21세기 시작과 함께 중남미 국가들에 특화된 농산물 가격의 상승과 자원 가격 상승으로 일종의 '라틴아메리카 붐'을 맞이하면서 수출 다변화 전략을 통해 중남미는 아시아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21세기 중남미와 아시아/아시아와 중남미 그리고 한국
21세기 들어 중남미 경제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이후 민주화와 더불어 중남미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경제 취약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들도 해결해 가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있고 동시에 거시경제의 안정성도 달성되었다. 중남미 각국 정부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산업구조의 개편, 자원개발 능력 확충, 재정 건전성 확보 등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의 교역도 다변화하여 전통적인 교역국인 유럽이나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교역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 비중이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32억 명의 인구를 가진 아시아 국가들은 연간 14조 달러에 이르는 국내총생산(GDP)을 기록 중이고 이는 인구 6억을 가진 중남미 입장에서는 교역 다변화뿐만 아니라 미래 잠재 시장으로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지역과 중남미 지역의 경제적인 보완 관계가 증대하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들이 중남미 지역에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제는 중남미 지역에서 아시아 국가들 간(특히 중국, 일본, 한국) 치열한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 중남미라는 거대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고 중남미와 더 높은 차원의 경제 협력을 달성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입장에서 매우 중차대한 사안으로 등장해 있다.
2010년대 들어 한국과 중남미 지역 간의 교역규모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낯설고 먼 지역으로만 여겨졌던 중남미가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면서 한국의 중요한 교역권으로 부각되고 있다. 2011년 브라질에 118억 달러, 멕시코에 98억 달러, 칠레에 23억 달러를 수출했고 많은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중남미 지역에 최근 아시아 국가들의 진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까지도 대거 진출하고 있으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두 대륙 간의 경제협력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환태평양 FTA 시대를 리드하고 있는 국가가 칠레이다.
태평양 연안 국가인 칠레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일찍부터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가져 왔다. 한-칠레 FTA는 한국의 최초 FTA이자 중남미와 아시아 국가 간 첫 번째 FTA이기도 하다. 이를 시발점으로 양 대륙 간에 많은 FTA가 체결됐고, 중남미·아시아 무역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남미 무역은 7년 동안 4배 이상 증가해 2011년 6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04년 4월 중남미 지역에서는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지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칠레뿐만 아니라 중남미 전체가 매력적인 시장이자 자원의 보고로 인식되면서 우리나라 정부 및 기업들 입장에서 많은 협력 노력을 해 오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근 중남미 자원협력·인프라 센터를 설립하고, 중남미 지역과 KOTRA, KOICA 등을 통한 한국 기업들의 중남미 진출 활성화는 물론 중남미 거점 국가에 현지 분소를 설치하는 등 중남미 지역 시장 확보 및 자원 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과학기술과 IT 분야, 환경녹색산업, 에너지 효율화 분야 등에서 중남미와 다각적으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과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교류 협력하고 있고, 멕시코와 칠레 등과는 IT 산업 협력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고, 콜롬비아, 페루와는 환경산업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중남미와 본격적인 경제 교류를 시작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렇게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남미 지역에 대한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중남미 간 FTA의 확대 강화이다. 물론 한-칠레 FTA가 시금석이 되었다.
한-칠레 FTA 그리고 '환태평양 FTA 벨트'
우리나라의 대중남미 지역과의 현재 FTA 체결은 지정학적으로 중남미 대륙에서 태평양연안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현재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칠레(2004. 04), 페루(2011.08), 콜롬비아(2012.06)를 포함해 향후 FTA 체결을 논의 중인 멕시코, 파나마 등은 외교적 차원에서 미국 오바마 정권이 추진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포함된 국가들이다. TPP와 맥을 같이 하면서 중남미 역내의 '태평양동맹협정(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 4개국, 코스타리카와 파나마 옵서버)' 국가들과 우리나라는 전략적으로 FTA를 맺어 가고 있다. 일종의 중남미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 'FTA 벨트'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태평양동맹협정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과 같이 이루어진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 8개국이 참여하는 좌파블록 '미주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일명 ALBA)'을 견제하는 새로운 블록이라고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논하기도 한다. 하지만 태평양동맹협정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경제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태평양동맹협정 지역 인구는 2억 1천 500만 명에 달하며(중남미 전체 6억), 국내총생산 GDP는 중남미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조 2천억 달러에 달한다.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라는 지정학적 한계를 보이지만 규모는 점차 확대 국면에 있다. 특히 광물 및 자원 분야와 한국 상품 및 자본 투자에서 미래 잠재 시장으로서 중요하며 향후 MERCOSUR나 대서양 연안 국가들로의 진출에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들이다.
2012년 올해 맺은 콜롬비아와의 FTA 경우, 콜롬비아는 중남미 3위 시장으로 잠재력이 크고 공산품과 농산품ㆍ천연자원을 서로 수출하는 형태의 보완적 교역구조라는 점에서 FTA의 긍정적 효과는 기대된다. 특히 콜롬비아는 이미 미국과 FTA를 맺고 있고 유럽연합(EU) 및 이웃국인 페루와의 FTA가 발효될 예정이어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가장 큰 무역창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지정학적으로도 콜롬비아는 이전 콜롬비아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가 주장했듯이 '미주 대륙 남-북을 관통하면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중요 교차로'로서 역할을 하고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칠레를 포함해서 페루와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들 중에 신흥경제 대국들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과 미국의 외교적 전략 그리고 이들 국가들의 아시아 진출에 대한 기대와 교역 다변화 전략 등이 맞물리면서 바야흐로 태평양 FTA 벨트를 통한 새로운 환태평양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칠레 FTA 및 이의 중남미 지역으로 확장 효과는 무역뿐만 아니라 한-중남미 간 관계를 전반적으로 넓히는 시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물과 에너지 자원과 더불어 IT산업, BT산업, 환경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두 지역 간의 상호 협력이 커지면서 문화(한류)교류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2년 현재 칠레를 포함해서 한국은 중남미 국가들과 대부분 수교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의 교류 협력이 FTA 경제영토 확장을 통해 더욱 다변화하고 있다. 이제 미래 관계 발전은 양 지역 간의 깊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과 칠레는 오래 묵은 포도주를 교환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