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현(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멕시코혁명 이후 20세기 멕시코의 정치사를 지배했던 제도혁명당(PRI)은 곧 대선을 승리로 장식한 후 로스 삐노스(Los Pinos, 멕시코 대통령관저)로 제 입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젊고, 키 크고, 멋진, TV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같은 빼냐 니에또(Pena Nieto) 대선후보는 이미 여성유권자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한 번도 여론조사에서 1위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게다가 제도혁명당은 최근에 있었던 여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언론으로부터 "제도혁명당이 부활하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32개의 주 중에서 20개 주를 제도혁명당이 장악하고 있는 점도 빼냐 니에또 후보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선거를 치루며 축적한 경험, 인력, 전략들을 보면 잘 기름칠해진 완벽한 기계 같은 느낌을 준다. 최근 선보인 선거 홍보용 비디오를 보면 질적인 면에서 다른 경쟁 상대들의 광고용 비디오를 압도하는 면이 있다.

  빼냐 니에또 선거캠프의 전략가들은 바스께스 모따(Vasquez Mota) 국민행동당(PAN) 후보보다 오히려 펠리페 깔데론(Felipe Calderon) 현 대통령을 더 큰 적으로 인식한다. 최근 몇 달 깔데론 대통령의 동선은 도로, 교량, 공공사업의 개통식이나 완공식 참석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 여당의 업적을 최대한 선전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자기 당 후보인 바스케스 모따를 지원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비록 암묵적이긴 하지만 제도혁명당에게 투표하는 것은 곧 부패나 마약과 공생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것도 제도혁명당에게는 큰 부담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선거공학적 이론에 기초한 전략보다 선거전에서는 단순한 메시지가 더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혁명당 선거캠프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도서전시회에서 빼냐 니에또는 자신이 인상 깊게 읽은 책의 저자와 작품을 혼동하고, 최저임금 수치를 기억하지 못한 실수를 범했다. 또한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두 차례 TV 후보자공식토론회 중 먼저 열리는 5월 6일 행사에 불참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나리오 없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헤쳐 나갈 능력이 없는 후보가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여당인 국민행동당 후보인 바스께스 모따는 빼냐 니에또 후보에 이어 여론조사에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지지도를 상승시키지 못한 채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민행동당이 장악한 주에서 발생한 부패문제와 당원들 간의 갈등은 선거전에 임한 바스께스 모따 후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2006년부터 깔데론 정부가 남긴 부정적인 유산이다. 먼저 조직법죄와의 전쟁이 남긴 5만 명의 희생자 문제이다. 이 전쟁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치안부재와 통제불능의 '실패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심어주었다.

  또한 처음의 공약과 달리 고용을 창출하거나 경제성장도 이루어 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국민들에게 제도혁명당의 결함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당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바스께스 모따는 최초의 멕시코 여성 대선후보로서 중산층이 겪고 있는 문제를 삶으로 체험한 후보로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또한 당내 합의를 이끌어 내고 조화를 중시하는 정치가란 이미지도 부각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비전이 명확하지 않다는 단점도 함께 드러났다. 비센테 폭스(Vicente Fox) 정권의 대변인 이었던 루벤 아길라르(Ruben Aguilar)가 평가한 대로 그녀의 선거운동 팀은 약하며, 전략도 부재하고, 선거전에서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정치평론가는 바스케스 모따의 이미지 속에서 국가최고수반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역량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 때문인지 바스께스 모따는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 후 열흘 만에 지리멸렬하던 자신의 대선캠프의 멤버를 교체하고 선거 전략도 대폭 수정했다. 외부 인사들을 수혈했으며, 폭스 대통령과 깔데론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뛰었던 노련한 선거전문가들을 영입했다. 당내 침체된 분위기와 국민에게 "바스케스 모따의 승리는 가능하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멕시코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깔데론 현 정부와도 다르다는 차별화를 시도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민주혁명당(PRD)과 노동당(PT)을 주축으로 한 멕시코 좌파연대의 대선후보인 로페스 오브라도르(Lopez Obrador)는 2006년 대선에서 현 깔데론 대통령에게 0. 56%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나 결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후 끊임없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투사로서의 강성 이미지를 드러냈다. 그는 전국을 돌며 다양한 좌파인사들과 만나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작년 11월 여론조사와 당내 지지도를 합산해 후보를 결정한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6년 만에 다시 좌파연대의 대선후보로 복귀했다. 그러나 현재 여론조사 3위를 기록하며 빼냐 니에또와 바스케스 모따에 밀리고 있다. 그가 남긴 강성 이미지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인권단체와 시민운동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공동의사결정기구를 결성하고, 진보주의운동도 일으키겠다고 공약했다. 마약과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는 군대를 6개월 내 병영으로 복귀시키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특히 폭력과 치안부재의 상황은 모두 사회정의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폭력으로 대응하기에 앞서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젊은 층의 호소에 귀 기울여 고용을 창출할 것임을 약속했다.

  현대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선거전략은 무엇보다 강성 이미지를 탈색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최근 그의 연설에서 급진적인 표현과 언사가 사라졌다. 자신이 얼론 마피아라고 비난했던 언론재벌 텔레비사(Televisa)와 같은 대중매체나 언론에도 적극적인 화해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기업이나 민간부분과의 접촉 빈도도 넓혀가며 자신의 변화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표를 도둑질해 갔다며 비난했던 깔데론 대통령을 용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전략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만큼 위험성도 커 보인다. 그의 지지층은 아직도 그에게 강력한 좌파 이미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가 180도 바뀐 모습은 그의 지지층을 낯설게 만들고 있다.

  현재까지도 세 명의 대선후보는 자신의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특히 기술적 해법이 요구되는 문제와 관련해서 자신들이 취할 구체적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 외무부장관 호르헤 까스따네다(Jorge Castaneda)를 비롯해서 48명의 멕시코 지식인들은 신문 광고를 통해 대선후보들이 멕시코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현안인 군대의 역할, 노동개혁, 세제개혁, 교육, 경제, 외교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대선을 바라보는 멕시코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전이 치열해 질수록 아래의 몇 가지 사항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천만 명 이상이 트위터를 사용하는 멕시코에서 SNS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이번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또한 이미지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TV와 같은 대중매체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이미 텔레비사와 같은 언론재벌은 빼냐 니에또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한 마약단과 조직범죄자들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치안이 불안한 멕시코에서 선거전이 치열해 질수록 후보들의 안전문제도 중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데모테크니아(Demotecnia)가 실시한 4월의 여론조사는 빼냐 니에또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만, 다른 여론조사 기관과 달리 두 자리 숫자의 차이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권자의 53%가 선거에 참여하고, 빼냐 니에또는 39%(천육백만 명), 바스께스 모따는 31%(천이백육십만 명),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9%(천이백만 명)를 획득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아직도 60일 이라는 긴 공식선거 기간이 남아있고, 20% 이상의 부동층이 선거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7월 1일의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우리를 놀라게 할지 알 수 없다. 2006년 대선에서도 여론조사에서 항상 승리했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0. 56%의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2010년 주지사 선거에서 많은 여론조사 결과들이 최종 선거결과와 달랐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