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복(경희대학교)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현재 암 투병중이다. 우방인 쿠바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하였다. 1999년 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14년째 권좌를 이어오고 있는데 오는 10월 7일에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에 재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현재 위독하다는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과연 이것은 정말일까? 그리고 현 상황의 진위여부를 떠나 이와 관련하여 중남미에 대한 한국의 보도행태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베네수엘라의 현 정치 상황은 어떤가?
차베스의 의학적인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서방과 한국의 언론은 당장 내일이라도 차베스가 죽을지 모른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앞으로 살날이 기껏해야 45일 정도라는 구체적인 기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사망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차베스는 이러한 보도들을 일축하며 회복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정확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베네수엘라와 중남미의 상황을 잘못 이해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먼저 차베스와 관련된 잘못된 보도가 많았으며 이러한 것들이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의도된 왜곡이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2002년 반차베스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언론은 그가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쿠데타세력을 지원하는 보수언론의 일방적인 보도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유엔의 선거감시단이 중립적이고 철저한 검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에 관한 보도는 항상 끊이지 않았다. 2007년 RCTV 관련 문제에서도 언론은 일방의 주장을 마치 전체의 이야기처럼 보도하였다. 심지어는 그를 마치 과대망상을 가진 정신이상자로 몰고 있는 오보들도 존재한다. 2009년 차베스가 한 사회행사에서 "비 오게 하는 레이저"를 대통령궁에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에 고통 받고 있는 지역에 곧 비가 내리도록 레이저를 쏘겠다고 이야기 하였다는 기사가 한국 신문의 외신면을 장식하였다. 필자가 확인해보니 이는 완전한 오보로 "... 라고 농담을 하였다."를 "... 라고 말했다"로 살짝 바꿔 치기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 한 단어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차베스를 이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독재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경우도 있었을 테지만 이에 대한 오보정정 등은 전혀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왜곡보도와 오보가 차베스와 관련된 한국 언론보도 내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현재의 차베스 병세가 실제로 위독한지 아닌지 확신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
다. 만일 차베스가 한국의 신문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정말 병세가 위독하여 당장 내일 사망한다 하여도 베네수엘라의 정치 지형이 하루아침에 보수와 친미의 방향으로 바뀌기는 힘들 것이란 점이다. 신문들은 차베스와 좌파 그리고 그런 체제를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고 이는 시대적인 오류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차베스가 죽으면 많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순리에 따라 잃어버린 지난 과거를 후회하며 우파 정권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2000년 이후 중남미식의 사회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차베스와 그 지지자들의 정부가 해오고 있는 사업은 사회전반에 걸쳐 꾸준히 뿌리내리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수세력이 상당한 영향력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베스의 지지기반은 현재까지 경제와 민생 현안 등에 있어서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을 이끌었으며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차베스에 대한 지지세력이 상당히 굳건하다는 점은 여러 번에 걸친 선거를 통하여 확인되었다. 즉 이러한 점을 볼 때 만일 차베스가 사망을 하더라도 제 2, 제 3의 차베스와 맥을 같이 하는 인물이 득세할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차베스의 카리스마적 인기가 쉽게 대체 혹은 전환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격변과정을 잘 거친다면 1인 지도자 체제를 극복하고 더욱 공고한 제도적인 사회주의 체제가 뿌리내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찌되었거나 현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의 좌파 세력은 단순히 차베스 일인에 의하여 지탱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서 탄생한 만큼 그렇게 쉽게 와해된다고 보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여기에 현 중남미 주변 국가들의 상황이 힘을 더한다. 만일 차베스가 사망을 하고 베네수엘라에 우파국가가 들어선다면 이는 현 중남미의 상황과 배치가 된다. 얼마 전에 폐막된 미주정상회의가 실패로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남미 좌파의 방향성이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남미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친미 우파 국가인 콜롬비아마저도 중남미 좌파국가와의 협력을 가장 중요한 외교, 정치, 경제적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위 우파 국가들마저도 중남미 좌파연합과의 협력을 공고히 하며 경제적인 해법을 찾는 마당에 베네수엘라가 우향우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은 단순히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정말이지 차베스가 위독한지 아닌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차베스의 건강상태에 대한 왜곡된 보도를 통해 형성되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그리고 중남미에 대한 정보와 이해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베네수엘라만 보더라도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직 간접적인 중요성이 많은 나라이고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산유국이며 한국의 사회간접자본과 건설산업, 플랜트산업, 방산산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교류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교류가 예상되는 국가이다. 특히 베네수엘라와 북한과의 교류 협력이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고 하는 점은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하여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점 역시 앞으로 한국과 중남미 좌파국가와의 외교적인 관계 등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베네수엘라만 이야기해도 이러한데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브라질을 위시한 중남미 좌파 연대의 외교, 정치, 경제적인 힘은 그리고 그 영향력은 한국 무역수지 흑자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우리의 미래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는 마냥 이데올로기적인 잣대로 하여 사실관계 마저도 왜곡하는 한국언론의 중남미 관련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의 왜곡에 힘입어 무조건 차베스를 악마로, 그리고 차베스를 지지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바보로 몰아서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 이것은 단순히 이념과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당장 돈벌이를 위한 판단근거라고 하는 극히 현실적인 면에서도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