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섭(연구교수, 한국외대한중남미 녹색융합센터)

 

들어가며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은 2011년 3월 19일-23일까지 라틴아메리카 3개국 브라질, 칠레, 엘살바도르를 방문했다. 오바마 미대통령이 2009년 취임 이후 남미 국가들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 3개국의 반응은 일단 미국과의 새로운 국제정치 및 외교 관계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미국-중남미 국제관계사에서 1961년 미국 캐네디 정부 때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맺어진 ‘진보동맹(Alliance for Progress)’이후 50년 만의 국제정치적 사건이라고 정치적 수사를 아끼지 않았다. 1)예를 들어,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방문의 의미를 브라질-미국의 역사적인 관계를 21세기 들어 더욱 명예롭게 할 것이라고 국제정치적 상징성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의 논평은 미국-브라질 간의 새로운 경제 발전 동반자 모델 구축을 위해 양국 간의 에너지안보(석유, 환경 및 재생에너지) 공동협력의 잠재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칠레 우파 장권인 피네라 정부의 반응은 미국-라틴아메리카 간의 새로운 협력 관계 구축을 남미의 두 거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아닌 칠레가 주도하고 있다고 한껏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더해 이미 진행 중인 미국-칠레 간 자유무역협정(FTA)의 공고화 그리고 칠레의 자연재해(지진, 안데스 빙하 해빙) 및 기후변화 문제에 에 대한 양국 간의 공동 대응(연구 및 모니터링) 등을 주요 이슈로 21세기 들어 양국 간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엘살바도르는 수십 년간의 내전을 끝낸 이른바 '차풀테펙 평화협정'이 2012년에 체결 20주년을 맞으면서 중미 국가 가운데서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잔존하는 국내정치 불안과 다양한 사회문제들(빈곤, 마약, 범죄)을 위해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관심이 요구된다. 이러한 관심은 금번 미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현실화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위처럼 이들 3개국 각각이 처해있는 각기 다른 정치경제 및 국제정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다른 방향과 이슈들로 나타났지만 각기 3개국의 입장에서 일단은 역사적 관계까지 거론하며 새로운 관계 모색을 위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론적인 반응과 함께 오바마 미대통령 방문은 현재 라틴아메리카 입장, 혹은 이들 3개국의 특수한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동반성장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 잠재성은 많이 떨어지는 - 미국의 일방적인 국가 이익 획득을 위한 방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정론도 존재한다.

 

오바마 미대통령 라틴아메리카 3개국 방문의 긍정론

 미 국무부 장관 클린턴은 금번 미대통령의 라틴아메리카 방문의 의미를 2010년 현재 6%라는 기록적인 경제 성장율을 기록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경제 및 무역 관계 증진이라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시사했다. 특히 경제와 무역 관계에서 이들 국가들과의 동반자 관계 모색은 새로운 라틴아메리카 시대를 맞아 미국의 입장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의 무역에서 수출의 43%가 서반구 국가들이며 라틴아메리카 지역으로 수출은 중국의 수출보다 거의 3배에 달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따라서 이러한 무역량을 고려해도 서반구에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지역과의 새로운 경제관계 및 경쟁관계를 모색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경제적인 관계 모색은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 3월 21일 산티아고 연설을 통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해진 중남미는 미국의 경제적 번영과 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언급을 보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얼마나 위상이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도 라틴아메리카는 중요 지역이다. 미국 에너지 시장에서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에너지 자원 수입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전략에서 재생에너지 및 청정에너지 경제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라틴아메리카의 역할은 지대하다. 칠레에서 피네라 대통령과의 공동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이러한 정책적 기조는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는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청정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사용과 에너지안보를 위한 기술 개발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룰수 있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두 정부는 양국 간 '에너지 비즈니스 위원회(Energy Business Council)' 설립에 합의했다. 물론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도 공동 노력을 약속했다. 칠레의 국가재난위기관리부(ONEMI)와 미국의 연방위기관리에이전시(FEMA)와의 양해각서(MOU)를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국제협력 차원에서는 현재 안데스 산맥에서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빙하의 해빙 현상에 두 정부가 공동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기후 모델링에 대한 공동 작업을 선언했다. 뉴욕에 있는 ‘천연자원보호회(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는 이러한 계획에 대해 즉각적인 긍정적 시사를 통해 현재 안데스 지역뿐만 아니고 파타고니아(Patagonia)지역에서도 빙하의 해빙 속도는 급속히 빨라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에너지 사용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간의 협력 관계는 이번 방문을 통해 더욱 외교적으로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대한 협력 강화뿐만 아니라 민주적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시민의 안전에 대한 관심 분야도 중요한 이슈였다. 특히 치안이 취약한 브라질과 엘살바도르의 경우 이 분야에 대한 미국의 협력은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브라질은 21세기 들어 수백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불평등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으며, 경제는 2010년 8%까지 성장하는 등 지속성장 궤도에 접어들었다. 러시아, 인도, 중국과 함께 거대신흥국가(BRICs)로 국제적인 위상도 높여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미래의 나라 브라질에 미국 오바마 정부는 경제 및 에너지 부문 협력 강화를 주장했다. 미국은 미국수출입은행을 통해 대서양 연안 심해유전 개발과 2014년 월드컵 및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인프라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재생에너지의 하나인 에탄올 외교를 브라질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브라질의 치안 불안 문제는 시민의 안전 회복과 민주적 거버넌스 정립을 위해 중요한 이슈이다. 리오데 자네이루의 파벨라(favela; 빈곤 계층밀집 거주)지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브라질 정부의 노력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표명하며 이후 새로운 치안 시스템에 대한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브라질의 공동체 기반 범죄 예방 활동의 경험은 그의 엘살바도르 방문에서 거듭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경찰공무원을 교육하고 공동체 경찰 활동 기술을 통해 공공의 신뢰를 회복하고 주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체 기반 범죄 예방 시스템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관심이 적극적으로 표명되었다.

 

오바마 미대통령 라틴아메리카 3개국 방문의 부정론

 위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는 동시에 존재한다. 엘살바도르 방문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 중인 수 천 명의 노조 활동가들과 농민들의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경제 위기, 기후변화, 마약문제, 시민사회 불안정 그리고 식량 위기 등은 현재 미국이 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경제발전 모델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발전 방향을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미 대통령 연설 중에도 외부에서는 일단의 시위대가 등장해 게릴라 운동이었던 FMLN의 진압 과정에서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받은 기존 친미 정부의 무력 탄압에 죽거나 사라진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요구했으며 2009년 셀라야 집권 시절 발생한 쿠데타에서 죽어 간 수많은 활동가들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칠레에서도 시민들의 저항 시위는 있었다. 현재 재생에너지 혹은 에너지 안보 협력 차원에서 미국이 제안한 칠레의 원자력 발전소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1973년 미국 CIA 개입 혹은 미국의 묵인 하에 제거된 ‘살바도르 아엔데(Salvador Allende: 1970-1973년 집권한 사회주의 정부)’정권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명백하게 인정하라는 시위도 이어졌다. 브라질의 시민 사회는 또한 현재 미국의 브라질 심해 유전 개발 투자 계획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이들의 입장은 현재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 중인 미국-라틴아메리카 사이의 공동이익 창출과 상호 협력은 일방적인 미국만의 이익 창출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존 미국의 대 라틴아메리카 전략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전혀 바뀌지 않고 똑같이 이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다만 파트너십과 협력이라는 가면만을 쓰고 전략은 유지한 채 전술만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부각되었다시피 미국에 필요한 일자리 창출과 좀 더 경쟁적인 세계로의 경제 발전 논리는 라틴아메리카 상황과는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항변 논리와 사례로 브라질의 방문을 손꼽는다. 현재 브라질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연 평균 7.5%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브라질은 인구 면이나 경제 규모에서 중요한 국가이다. 재생에너지(에탄올)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 국가이기도 하다. ‘프레-살(Pre-Sal) 유전 지대의 발견으로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의 잠재성이 커 미국, 캐나다, 멕시코보다도 더 투자 매력도가 급격하게 증가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중국에게 빼앗긴 무역관계를 회복하고 에너지 분야 협력을 통해 미국의 에너지 안보를 확보한다는 전략이 중심이라고 비판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칠레에서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한 미국과 칠레 정부 간의 대화는 현재 일보의 후쿠야마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원자력의 공포와 방사선 유출 재난을 무시한 외교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칠레도 마찬가지로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지진이 빈번한 국가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계획 수립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는 주장이다. 비록 그의 칠레 방문 연설에서 17년간의 군사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루어 낸 칠레 민주주의 발전을 칭찬하는 동시에 칠레의 위대한 시인이자 외교가였던 파블로 네루다의 ‘우리는 모두 아메리카노’라는 말을 언급하며 협력을 강조했지만 이러한 언급은 외교적 수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지난 피노체트 독재 시절 동안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대한 언급이나 유감의 발언은 없었다.

 브라질과의 재생에너지 및 에탄올 외교에도 현재 미국이 수입하는 브라질산 에탄올에 대한 수입세 완화 언급이나 이에 대한 보다 국제무역 협력 차원의 어떤 논의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물론 브라질의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진출이라는 열망의 목소리도 외면했다. 에탄올 산업의 증가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브라질 내부의 원주민 공동체들과의 갈등에 대한 문제 해결의 의지는 더더욱 없었다. 비록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노력을 재생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 분야 국제협력 강화 같은 전략을 이야기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국내외 갈등의 목소리들에는 눈을 감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마우리시오 푸네스(Mauricio Funes) 대통령은 오바마와의 공동 연설에서 시민 안전을 위한 마약과 범죄 사건들을 줄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투자를 약속했다. 일자리 창출과 안전 시스템의 도입이 논의되었고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 방안들이 약속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지난 20년 전부터 여전히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행으로 대부분의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거시적 차원에서 경제 발전 구조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빈곤이 범죄를 부르고 많은 불법적인 폭력 단체들을 만들어 내고 그리고 수많은 엘살바도르 청년들이 마약산업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임시 처방같은 일자리 창출 혹은 이를 위한 미국의 투자 지원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단지 미국에 악영향을 미치는 마약 테러리즘의 중미지역으로부터 확산을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로서 미국의 투자 약속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고려라는 한계마저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중미지역안보이니셔티브(Central American Regional Security Initiative; CARSI) 구상은 그리 현실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론

 짧게 요약하지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라틴아메리카 3개국 방문은 개별 국가들의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에서 많은 진전과 외교적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경제협력과 투자 그리고 에너지 및 환경과 같은 이슈에서는 한층 진일보한 협력 관계를 이루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협력 이슈들과 성과들이 지나치게 임시적이며 미국의 일방적인 국가 이익만을 위해서 진행이 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동반자 관계 혹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면 좀 더 윈-윈 할 수 있는 좀 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사항들이 협력 이슈의 대상이 되었어야 했다. 실질적으로 이들 3개국들이 사회 내부적으로 깊숙이 안고 있는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에 더욱 많은 목소리를 기울여서 전체적으로 통합적이고 그리고 거시적 수준에서 다양한 협력 및 관계 모색의 방향이 설정되었어야 했다. ‘역사적인 방문이다’라는 수사학을 빼면 실질적으로 21세기 미국-라틴아메리카 간 새로운 협력 관계 창출이라는 언급은 오히려 무색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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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동맹’은 1961년 8월 ‘푼타 델 에스테’ 헌장에 따라 미국과 22개 중남미 국가들이 세운 국제경제개발계획으로 헌장에 명시된 이 계획의 목표들 중 중요한 것은 민주정부의 유지와 경제·사회개발추진 등이었고, 구체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의 지속적인 성장, 보다 공평한 소득분배의 달성, 농업·공업 개발의 가속화, 농지개혁, 위생과 사회복지제도의 개선, 수출품 가격의 안정화, 국내물가의 안정 등에 목적이 있었다. 이 국제경제개발계획에 따라 몇몇 학교와 병원, 등이 새로 세워지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 계획을 실패한 것으로 본다. 대대적인 토지개혁이 달성되지 못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의료와 복지혜택을 많이 받지 못했다. 이후 미국의 원조도 줄어들었으며, 이는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고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