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현(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대통령은 지난 3월 19일부터 23일까지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 칠레, 엘살바도르를 방문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라틴아메리카 순방은 올해 들어서 실시한 첫 해외방문이며, 특히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브라질과 칠레 등의 남미 국가를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라틴아메리카 순방은 국내외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리비아에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아랍의 연쇄적인 민주화 시위와 대지진에 이은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국제적 방사능 공포를 일으키고 있는 일본과 같은 외부적 문제로부터 2009년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경제 여건과 연방정부 폐쇄를 운운하는 여야 간의 정쟁까지 오바마의 라틴아메리카 순방은 미국 대통령이 지니는 통상적인 분주함을 뛰어 넘는 시기에 진행되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지닌 경제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번 방문의 목적이 라틴아메리카와의 무역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있으며 이는 미국경제의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을 널리 홍보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브라질에서 이틀, 칠레에서 하루를 머문 후 엘살바도르에서 순방을 마무리 하였으며, 칠레에서 라틴아메리카와 관련한 ‘중대연설’을 실시하였다.
비록 오바마 대통령이 단 하루를 머물렀지만, 수도 산티아고가 라틴아메리카와 관련한 중대연설 장소로 선택되었다는 점은 아르헨티나가 아닌 칠레가 이번 순방의 방문국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칠레 국민들의 자부심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칠레를 선택한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칠레는 피노체트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난 후 20년간 꾸준히 완성한 민주주의와 2010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분명해진 경제적 성공으로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라틴아메리카의 모범국이다. 더불어 일찍이 2004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여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성장모델을 안정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칠레는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 동력을 잃고 있는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지대를 광고하는 동시에 이번 방문이 단순한 가족여행이 아닌 ‘미국 경제살리기’의 일환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선의 사례이다. 이렇듯 오바마의 칠레 방문은 경제 이슈와 칭송이 주된 내용의 방문으로 서반구 지역에서의 패권이나 마약관련 문제가 더해져서 불가피하게 국제정치적 안보 이슈가 경제 이슈와 함께 다루어진 브라질 및 엘살바도르 방문과는 성격이 달랐다.
1990년 조지 부시(George H. Bush) 대통령 이후의 첫 일대일 방문인 오바마 대통령의 칠레 방문은 언론을 무척이나 즐기는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an Pinera) 대통령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미국과 특별한 안보관련 현안이 없는 칠레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칠레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2010년 지진으로부터의 복구노력을 칭송하였다. 더불어 양국은 핵에너지, 무역자유화, 환경, 교육 등 분야에서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편 산티아고에서 이루어진 라틴아메리카 관련 중대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간의 새로운 협력시대를 구축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와 같은 일방적 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구축을 역설하며 미국과 라틴아메리카가 역사적으로 긴밀하며 지리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최근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과 같은 새로운 행위자를 견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라틴아메리카 방문, 특히 칠레 방문은 정치적 수사와 칭송 그리고 상징적 의미만이 있는 속빈 강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칠레 일간지 라 테르세라(La Tercera) 기사에서 기독교민주당의 상원의원 호르헤 피사로(Jorge Pizarro)는, “유감스럽게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라틴아메리카인들과 칠레국민들이 기대했던 주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빈곤, 이민, 농업보호, 대쿠바 경제봉쇄해제, 인권관련 사과 등 직면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제안도 없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물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범 국가로 불리는 칠레에 오바마의 순방이 가져다 줄 효과는 상징적이고 장기적 일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아리조나주의 피닉스 지역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칠레가 지니는 경제적 효과는 라틴아메리카 전체 전략을 위한 표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역설한 미-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관계, 즉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위한 구체적 계획과 내용이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칠레 순방이 보여준 이러한 공허함은 과거 미국이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를 지원한 것을 사과하고 인권유린 사례 조사를 위하여 협조를 할 용의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역사를 통하여 배우고,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라는 덫에 갇힐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재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앞으로 직면할 많은 도전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뚜렷한 약속을 회피한 것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향후의 미-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미-칠레 관계의 미래는 많은 현안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이러한 도전은 구체적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