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중남미지역원HK교수)

 

  국내외 언론에서 중남미에 새로운 좌파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연일보도 하고 있다. 중남미 좌파는 반보수, 반자본, 반미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 강도에 따라 온건과 강경으로 구분된다. 온건 좌파의 경우에는 민중주의와 많이 닮아 있다. 지난 3월 1일 우루과이에서 1970년대 좌익 도시게릴라 단체인 뚜빠아마로(Tupamaro) 출신의 무히까(José "Pepe" Mujica)대통령이 취임했다. 좌파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대통령이 되면서 우루과이가 중남미 좌파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선거 공략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소득 재분배 강화, 사회구호 프로그램 확대, 20만개 신규 일자리 창출, 빈곤층 절반 감소, 여성 및 소수인종 우대정책 등을 내세운 무히까 대통령의 변혁 방향과 강도를 정치, 대외 부문을 통해 가늠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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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모습의 무히까 대통령 (자료:Infolatam)

 

극좌 게릴라였던 무히까 대통령은 따바레스 전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덕분에 당선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전임정권의 정책적 기조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개혁 정치를 추구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따바레스 정권은 군부독재기에 발생했던 정치적 억압과 인권탄압과 같은 과거청산에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그 결과 인권탄압 행위에 연루된 정치인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했다. 따라서 무히까 정권도 과거청산을 마무리지어야하며 인권유린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들을 강화시켜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정치 목표인 “정직한 정부, 1등 국가(Un gobierno honrado, un país de primera)”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정치변혁을 꾀하고 있는데 그 목표는 아래로부터의 권력 창출이라고 주장한다. 즉, 권력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대중의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좌파적 이데올로기 토대에 우파적 경제우선주의를 정치목표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우루과이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약 150년 동안 지속된 우파의 장기집권과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경제성장을 달성하고자 하는 선택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치적 행보가 보수 정치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정치적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우루과이 국민들을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역시 경제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우루과이 경제는 금융과 농업 중심이었다. 이런 구조는 마치 정치 구조가 지난 150년간 변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지금도 유효하다. 따라서 산업구조의 재편과 전통적 산업 영역을 어떻게 조합시키고 경제성장을 유도하며 또한 성장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따바레스 정권은 세계경제위기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건전한 경제를 만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소득분배에 많은 성과가 있었다. 때문에 무히까 대통령도 경제정책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을 보면 경제구조의 변화, 대외수출 중심, 대외 협력의 강화, 그리고 분배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성과 분배를 브라질식으로 할 것인가? 베네수엘라식인가?라는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무히까 대통령은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방식을 따를 것이라 천명하고 있다. 전임 따바레스 바스께스 정권이 소득세를 재원으로 실업률을 낮추고 18세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의료혜택을 주는 등의 서민들을 위한 대중적 정책들을 추진했는데 룰라의 정책과 유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세입증가에만 의지하는 소득분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무히까 대통령 자신이 “재정은 한계가 있고 사회비용은 무한대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재정확대를 위한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 경제 개혁이 선순환적 구조를 만드는데 집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전임 정권의 경제운영 방식을 배워야 하겠지만 동시에 변화된 국내외 경제 환경에 맞는 적절한 정책을 선택하는 일이 남아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외 경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무히까 정부도 대외 경제협력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전통적으로 중립외교를 유지해왔다.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중립외교는 우루과이가 처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무히까 대통령은 취임이후 이런 전통적인 외교 노선을 포기하고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견지한 전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루파볼'(Urupabol) 협력 강화가 첫 시발점이자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데 대양진출의 꿈을 지니고 있으며 좌파 정권이 들어선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와의 협력을 강화하여 그 동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심으로 주도되어온 메르코수르에서 협상력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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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대통령을 만난 무히까 대통령(자료:대통령궁)

그러면서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를 겨냥하여 좌파연대를 통해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베네수엘라를 선택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이유로 어려워 보인다. 결국 전통적 우방인 브라질을 이데올로기적 유사성과 지리적 인접성 등으로 우선 협상국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최근 브라질의 급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행보는 아르헨티나를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전에도 있어왔는데 그 동안은 양국의 필요에 의해 촉발되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우루과이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고자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우루과이의 적극적인 실용주의 외교노선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히까 대통령은 강경좌파에서는 비껴서 있다. 정치 부분에서는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하거나 범좌파연대의 정치력을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적인 변화를 추진하기 보다는 전임 정권에서 추진해온 정책을 제도화하는 수준에 있다. 반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지만 게릴라였던 때와는 다르게 많이 완화되었다. 경제 부분에서는 반자본적인 사회구호프로그램과 소득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재원을 확보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성장우선주의를 주장하고 있어 반자본으로 보기는 어렵다.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친유럽연합과 메르코수르를 표방하고 있다. 실용주의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우방에 대해 변함없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들로 볼 때 무히까 정부는 비춰지는 극좌파라기 보다는 우루과이의 분배와 성장을 추구하는 온건한 실용주의적 좌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