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

이번 “뿌리를 찾아서”는 한림대 교수 및 라틴아메리카학회 3대회장을 역임하신 김우택 선생님과의 인터뷰로 꾸몄다. 쌀쌀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던 3월 말 오후,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학문적 경험을 쌓아가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에서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고 돌아왔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연구경험과 조언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자인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브라질에 살았고 그곳에서 대학을 마쳤습니다. 상파울로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때 인재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우리식으로 한다면 대학교 연구원이었지요. 책임교수 지휘아래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연구가 주로 브라질의 경제발전과 관련된 주제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라질 경제문제가 연구의 중심이었어요. 석사를 마친 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어요. 브라질로 돌아온 나는 연구소에서 근무했어요. 2년 동안 근무하면서 경제학적인 이론이 바탕에 있다 하더라도 연구는 브라질 경제와 관련된 주제에 치중되었어요. 연구소에서 내가 1차적으로 수행했던 프로젝트는 브라질 상속세에 관한 것이었죠. 브라질은 상속세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상속세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상속세에 관 연구프로젝트를 추진했어요. 다음으로 내가 참여했던 연구프로젝트는 대체연료에 관한 연구였죠. 당시 연구소 및 브라질 정부는 70년대 국제석유파동을 계기로 대체연료에 관한 연구를 가장 역점사업으로 진행했어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거론되고 있는 재생가능한 바이오 에너지에 관한 사업에 연구소는 주력했어요.

브라질에서는 그 당시 이미 사탕수수와 알코올 등 자동차 대체연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자동차 대체연료로 알코올을 사용하고 있었죠. 석유파동이후 국제유가가 급상승하자 브라질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통해 대체연료 사용에 대한 연구 사업이 활발했어요. 에너지 관련 사업이 경제성이 높은 사업이었기 때문에 그 분야에 관한 연구가 브라질 경제부문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어요. 80년대 라틴아메리카는 외채위기가 시작되었고 다시 원유가격이 하락하면서 대체연료에 관한연구는 밀려났어요. 지금 다시 중요성이 부각된 거죠.

이후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죠. 한국의 입장에서 세계시장 진출에 관련된 연구가 지역연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연구와 관련을 맺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시장은 선진국이니까 내가 몸담고 있던 산업연구원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관련 통상정책이나 세계경제 및 무역환경과 관련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어요. 부분적으로는 개도국진출에 관한 연구도 수행했어요. 산업연구원에도 업무가 계속 개편되기는 했지만, 지역연구 쪽에서는 개도국연구실을 운영하여 라틴아메리카지역 연구는 실장직을 맡은 나와 연구원들이 수행했습니다.

YS정부 당시 우리나라에서 세계화니 국제화니 해서 지역연구 관련 펀드가 책정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서울대 출판부에서 지역연구란 무엇이며 지역연구 현황에 관한 책을 출판했어요. 그때 집필진이 팀으로 구성되어서 각 분야에서 지역연구 방법에 관한 토의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책으로 출판 되었죠. 그 책에서 나는 한국의 라틴아메리카지역연구의 현황에 대해 언급했어요.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에서 경제학 분야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상황에 대해 얘기했지요. 세계은행에서 개발도상국에 자금을 지원해주는데 백그라운드 스터디는 경제학과 관련된 지역연구가 주류를 이루죠.

솔직히 얘기해서 중남미연구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에 대한 비교연구잖아요. 신대륙이 똑같이 발견되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은 선진국으로 발전했고 라틴아메리카는 못사는 지역이 됐어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왜 우리가 미국보다 뒤떨어졌는가?”는 지역연구의 주요 이슈였죠. 라틴아메리카는 아즈텍이나 잉카에서 막대한 금이 나왔고 좋은 지역은 다 차지했는데 못살게 됐죠. 미국과의 차이를 연구하는데서 부터 라틴아메리카 스터디가 시작된 거니까요. 사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아이덴티티 자각이랄까 이런 정체성의 문제도 미국과 비교해서 나온 거예요. 이런 면에서 볼 때 경제학 분야가 매우 중요한 연구인데, 지역연구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는 다는 건 비현실적이다보니 라틴아메리카지역 연구에서 경제학 관련 연구는 미흡 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들에게 라틴아메리카는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는 지역이지요.

한국의 라틴아메리카지역 연구는 어문학전공자들을 중심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경제학이론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어요. 사회과학분야에서도 정치학에 편중되어있는 이유도 경제학적인 이론배경이 없는 연구자들에게 경제학 관련 연구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한국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에서 사회과학분야는 주로 정치학이 문제의 중심을 이루었죠. 주로 어문계열 전공자가 중심을 이루는 학문적 배경 속에서 문학과 역사 그리고 예술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지역연구는 이루어지기 어려웠죠. 연구 인력의 학문적 백그라운드가 거의 어문계 이다보니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공을 쉽게 넓힐 수 있는 분야가 역사와 정치 정도로만 제한되었다고 봅니다. 근래에 와서 인류학이나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라틴아메리카 지역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경제학은 아직도 본격적으로 연구가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제 학문 자체가 통섭이라는 용어가 등장해 유행하듯이 학제간 연구에 대한 연구비도 많이 배정되어있고, 학제간 연구프로젝트수행이 연구비 지원의 핵심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지역연구에서도 그동안 학제간 연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다양한 전공자들을 모아 연구팀을 구성해도 학제간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 스스로가 여러 분야에 대한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분야를 이해해야해요. 그래야만 서로 토론할 수 있는 거죠. 다양한 분야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연구자들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공 이외의 다른 학문에 대한 학문적 소양을 갖춘 연구 인력들이 어느 정도 구성되어있어야만 진정한 학제간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통섭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해야 된다는 이야기죠.

왜 학제간의 연구를 얘기하느냐 하면 우선 학문은 각 분야마다 방법론들이 사실은 다르거든요. 근데 그 서로 다른 방법론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생각하던 것을 모으면 전혀 다른 연구결과가 나올 수도 있죠. 다른 학문 분야의 연구 성과들과 이론들이 도입되어 같은 현상을 놓고도 새로운 각도에서 자신의 연구를 분석 하는 게 필요한데 라틴아메리카 연구에서도 그런 정도의 뭐가 있을 때에 새로운 활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지역 연구에서 제일 우려되는 점은 그렇게 열심히 여러 학문 분야를 드나드는 연구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자들의 경우 제일 생산적인 업적들이 젊었을 때 나오긴 나와야 되겠지요. 그러나 인문사회분야에서의 깊이 있는 연구들은 그래도 어떤 원숙함이 묻어나는 나이라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천재라면 몰라도 보통사람의 경우는 오랜 경험과 생각의 결과로 좀 익은 뭐가 나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젊을 때 너무 성급하게 너무 많은 연구결과물을 남기려고 하다보면 설익은 생각들이 많이 활자화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요즘은 학문발전 속도가 빠르다보니 대학에서 교양으로 수강했던 강좌들이 이미 낡아져서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경우들이 많아요. 대학에서 우리가 보통 학부 때 교양과목으로 인문, 사회, 자연등 각 분야에서 몇 강좌씩은 의무적으로 수강해야만 했었죠? 전공을 떠나 교양강좌를 통해 다양한 학문적 영역을 접하게 되는데 그러한 경험이 쓸모없거나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자연과학에 대한 학문적 소양이 필요해서 교양강좌가 개설됐던 겁니다. 사실 나는 다양한 학문에 대한 공부를 오래전부터 계속해오고 있어요. 철학, 종교를 비롯하여 특히 자연과학분야에서는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지요. 현재 모든 분야에서 진화론적인 사고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려다보면 분자생물학이라든지 화학적인 지식이 필요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또 심리학분야도 요즘 거의 뇌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고, 그러니까 다양한 학문들을 교양으로 공부하면서 자신의 전공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을 이해하려해도 인류학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죠. 베링해를 건너 라틴아메리카에 정착한 원주민들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니까 다양한 영역의 학문적 경험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바쁘게 처음부터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 두는 게 진정한 의미의 지역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