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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선(경희대학교)

이사벨 아옌데와 더불어 칠레 여성 작가를 대표하는 마르셀라 세라노(Marcela Serrano, 1951- )는 도시 문명과 산업화 사회의 발달에 따른 칠레 사회의 명암에 주목하며 이를 작품에 꾸준히 반영하고 형상해왔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도시 문명과 산업화에 대한 지속 적인 비판을 다룬 그녀의 작 품들은 우리 모두가 익숙해 있는 산업화 및 문명 발달의 아이러니에 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회복하는 작업과 연장 선상에 있다.

마르셀라 세라노의 최신작 『작은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 Hasta siempre, mujercitas』(2004)은 작가 자신이 직접 언급했듯 19세기 미국 여성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콧(Louisa May Alcott)의 『작은아씨들 Little Women』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성장문학인 『작은아씨 들』을 단순히 리메이크했다기보다는, 21세기의 새로운 글쓰기 방법에 따라 『작은아씨들』의 페미니즘 정신과 등장인물들을 새롭게 전개한 전혀 다른 독창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망명 작가이기도 한 마르셀라 세라노는 과거 칠레 군부 정권에 의해 자행된 정치 폭력과 이에 따른 사회 갈등 및 불신을 폭로하며 칠레 국민 모두의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칠레 군부 쿠데타라는 집단 기억의 상처를 새롭게 보듬으며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얘기하고 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세레자데의 뒤를 잇는 이야기꾼이라 극찬하고,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가 “마르셀라 세라노의 작품을 읽으면 세상 모든 여자들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고 평한 마르셀다 세라노는 고전 작품에 등장하는 메그와 조, 베쓰, 에이미, 네 자매를 니에베스와 아다, 루스, 롤라, 네 사촌 자매들에 반영하는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전통적인 사실주의가 지닌 문학적 한계를 탈피하며 과거 극복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마르셀라 세라노는 기존 증언문학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의 체험과 기억의 자전적 요소들을 재구성하고 반복적으로 형상화하여 작품 곳곳에 작가의 분신과 삶의 일부를 투영시키고, 19세기 의 『작은아씨들』을 등장시켜 상호텍스트성을 통한 변화된 여성관을 언급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작가 개인이 경험한 상처와 상처의 원인이 된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치유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는 치열한 자기 모색을 거친 서사전략이며 이 시대의 질곡과 상처에 대한 증언으로, 작가 특유의 비판의식을 반영한 양식이다. 20세기 후반, 칠레 사회의 명암을 작가적 연륜 속에 녹아 내려 칠레 민주화의 격동기를 관통해오며 작가가 보고 느끼고 겪은 각 시대의 부침(浮沈)을 고스란히 담아낸 마르셀라 세라노의 작품 세계는 현대 칠레 사회의 고통에 찬 당대적 현실에 대한 성찰이며, 우리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작은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은 칠레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 9월 11일이 깊이 각인되어있으며, 작품 전체는 이러한 9월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9월이라는 시간적 공간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칠레의 뼈아픈 과거인 1973년 9월 11일과 미국의 집단 상처가 된 2001년 9월 11일을 연결해 현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과거 극복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근대사를 뒤흔들어놓았던 피노체트 군부의 등장과 함께 네 사촌 자매들의 삶은 1973년 이전과 이후로 나뉘면서 운명에 굴복하는 여자와 운명을 거슬러 반항하는 강한 여자들의 모습이 그려지게 된다. 그리고 2001년 9?11 테러를 통해 세계화의 폭력 속에서 신음하는 현대 지구인의 모습도 애잔하면서도 아프게 그려진다.

『작은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은 19세기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은아씨들』을 리메이크하여, 네 사촌 자매들의 유년 시절의 잃어버린 낙원과 같은 곳인 칠레의 남쪽 푸에블로를 배경으로 1960년대에서 2002년도까지의 욕망과 운명, 행복, 비밀을 얘기한다. 주인공 아다는 문학을 좋아하지만 글쓰기가 두려워 소설은 엄두도 내지 못하다가 자신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쓰게 되고, 그 작품이 『작은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이 된 것이다.

작가는 『작은아씨들』과의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변화된 페미니즘의 모습을 소개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여러 여성 정체성의 다양한 포스트페미니즘적인 면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자서전적인 면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소생시키면서 동시에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속한 세계의 타락과 부조리한 모습을 분석하며 조망한다.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작은아씨들이여, 영원히 안녕』은 개인의 고통을 집단적 고통으로 융해시키는 작업을 통해 과거 극복의 해결 실마리를 찾으며 칠레 민주화의 문제적 현실을 제시한다. 마르셀라 세라노의 소설은 우리 삶을 둘러싼 세계의 실상과 배후에 대해 증언하며, 결국 이 세계의 부조리한 모순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우리 모두이며, 때문에 우리가 공범자이자 피해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우리 시대 삶의 현장을 지켜오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해 방기해왔던 제반 문제들을 깊이 천착해 들어간 마르셀라 세라노의 소설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금 그 가치를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