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 (한국외대)

  

   어느 선거나 사람들은 그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한다. 그러나 올해 6월 치러진 페루의 대통령 선거만큼 그 결과가 주목받았던 선거가 있었을까? 최근 치러진 중남미 국가들의 총선이나 대선은 2000년도 이후의 중남미 좌파 정부의 열세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페루의 대선은 사전 지지도나 1차 투표에서 우파 성향을 보이는 두 후보가 득세했기 때문에 최근 중남미 지역에서 보이는 우파의 득세에 하나를 더해준다는 의미 이상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2차 결선투표의 득표 차이가 1%도 채 안 된다는 결과가 발표되자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결국 49.87%를 획득한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50.12%를 획득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를 채택한 여러 국가들에서도 유래 없을 이 근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투표 결과가 제도적으로 안전하게 수용됨으로써 페루의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상으로는) 진일보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페루는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정당의 제도화가 낮은 수준의 국가군으로 분류되며 여타 중남미 국가들처럼 장기간의 군부 독재를 경험했고 민간 정부로 이양된 후에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와 민간 독재를 경험한 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는 더욱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바로 친위 쿠데타와 민간 독재를 실행한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서, 일정정도는 숫자상의 차이에 상관없이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지켜야 한다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페루의 대선 결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의 대결 구도보다는 선거 과정에서 수용된 핵심적인 가치와 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ONPE,www.onpe.gob.pe

  

   2016년 페루 대선은 14명의 후보자가 1차 투표를 거쳤고 과반수를 넘는 후보가 없어 다수표를 획득한 2명의 후보가 2차 결선투표를 치뤘다. 이들 중 민중권력당(Fuerza Popular)의 게이코 후지모리가 투표 이전에도 지지율 선두에 나서며 1차 투표에서 39.86%를 얻었고 변화를 위한 페루인당(Peruanos por el cambio)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PPK)가 21.05%, 좌파 성향의 광역전선(EL Frente Amplio por Justica, Vida y Libertad)의 베로니카 멘도사(Beronica Mendóza) 후보가 1차 투표 직전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18.74%를 획득했다. 리마와 안데스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차이가 뚜렷한 페루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1차 투표에서는 후지모리 후보가 리마를 포함해서 24개 중 15개 주, 멘도사는 남부의 7개 주에서 강세였으나 쿠친스키 후보는 Arequipa 주에서만 최다 득표를 차지했을 뿐이다.

   1차 투표까지만 하더라도 여론조사나 언론에서는 후지모리 후보의 승리를 낙관하면서 갑자기 부상한 젊은 좌파 멘도사와 후보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친시장적, 친기업적 성향을 가진 쿠친스키의 2위 다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선 캠페인에서는 경제정책,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독재, 부패, 인권침해 등의 문제에 대한 태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사면, 젋은 좌파 정치인의 등장 등이 주요 이슈였지만 경제 및 사회정책 관련 공약들은 게이코 후지모리와 쿠친스키 후보 측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선거 이슈에서 상반되는 공약들을 내세운 멘도사와 쿠친스키 후보의 2위 다툼은 페루 국민의 입장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일 수 있다. 결국 페루 국민들은 분배와 정의보다는 경제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는 신자유주의, 인권과 자유보다는 보다 엄격한 치안과 사회 안정을 선택했다.

   후보자의 개인적 성향이나 경력, 핵심적인 정책 공약, 지지세력 등에서 후지모리 후보와 쿠친스키 후보는 차이점보다는 더욱 큰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또한 두 후보 모두 지난 대선에서 결국은 좌파의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에게 패배했었고 두 후보는 우말라 대통령의 대척점에서 우파로 함께 분류되었었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를 구분지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선거 이슈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의 관계 특히, 쿠친스키 입장에서는 게이코 후지모리와 그녀의 부친인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정치적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자신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전략이었다.

   사실상 페루 사회에서 Fujimorismo는 ‘빛나는 길’의 테러를 진압하고 높은 경제성장을 가져왔던 후지모리 시대에 대한 향수 그 이상이며 페루 사회의 인종적, 계층적 균열을 반영한다. Fujimorismo는 페루의 전통적인 백인 엘리트에 대한 반감, 대중 자본주의 및 중산층의 성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페루 사회의 후원-수혜주의를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집권기를 통해 보다 견고하게 확장시켰고 이것이 게이코 후지모리의 정치적 입지 강화와 대중적 지지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에는 아직까지 취약한 제도적 기반, 지역적・인종적 차이와 차별의 고착화, 보다 다양해진 계층 분화, 불평등한 부의 분배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복잡하게 얽혀 나타나는 페루 사회의 균열구조에서 Fujimorismo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인권침해와 부패스캔들, 법치의 훼손에도 불구하고 균열을 메꾸는 일종의 정치적, 사회적 공동체의식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Anti-Fujimorismo는 인권, 반부패, 민주적 절차와 법치에 대한 지지 등의 다양한 이유로 형성된 정서이지만 정치세력으로 조직화되었거나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형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선거전의 양상이 동성애나 낙태 등의 사회적 이슈를 넘어 Fujimorismo 대 Anti-Fujimorismo로 이분화되고 결국 쿠친스키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었던 중요한 분기점은 멘도사 후보의 쿠친스키 지지였다고 볼 수 있다.

   결선투표까지 가면 어차피 기존에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던 표가 양 후보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또한 멘도사의 경우 수치로 나타나는 1차 투표의 표뿐만 아니라 리마와 중상층의 지지를 중심으로 하는 쿠친스키와 후지모리 후보의 지지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남부의 빈곤지역에서 지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멘도사 후보의 공개적 지지가 누구에게 향하는가는 이후 대선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지모리와 쿠친스키 모두 멘도사와는 정치적, 경제적 성향 차이가 분명했고 지지층의 차이도 분명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멘도사는 후지모리 후보가 부패와 마약밀매에 연관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Fujimorismo를 끝내기 위해서는 쿠친스키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反)후지모리 정서를 공통 분모로 한 멘도사의 쿠친스키 지지는 쿠친스키가 남동부 7개 주 중 6개 주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었고 쿠친스키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http://elcomercio.pe

  

   일시적인 경기부양 프로그램, 민간투자 절차의 간소화를 통한 투자 유치, 2019년까지 매년 1%씩 낮추어 현재의 18%에 달하는 일반판매세를 15%까지 낮추는 감세 정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쿠친스키의 경제정책은 사실상 민영화와 최소정부라는 전통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귀결된다.

   선거와 그 이후 새로운 정부에게는 거의 항상 경제정책 및 사회정책의 성과가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쿠친스키에게 있어서는 경제정책의 새로움이나 성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기 위한 정치적 부담의 극복이 더욱 요구되는 듯 하다. 쿠친스키의 정당은 의회의 130석 중 18석에 불과하고 게이코 후지모리의 정당은 73석을 가진 다수당이다. 따라서 입안과 정책의 집행에서 쿠친스키는 상당 부분을 게이코와의 타협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너무 근소했던 투표결과는 제도적 문제나 정치적 지지를 넘어서 쿠친스키에게 지속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지난 2011년 대선에서부터 이번 대선까지 후지모리 후보는 약 40% 정도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이번 대선의 결선투표 결과도 큰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게이코 후지모리에 대한 부동층이 확실함으로 보여주었다. Fujimorismo는 후지모리 후보의 정치적 자산이자 동시에 약점이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때로는 정면돌파의 방법으로, 때로는 인지도와 지지도를 올리는 우회적 방법으로 Fujimorismo를 활용하였다. 오히려 정치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의해 훼손되었던 민주적 절차와 제도, 사회적 정의의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준수할 것임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신뢰를 쌓아왔고 근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이를 보여주었다. 정치적 절차를 통해 예측이 가능하고 정치적 행위자들 간에 정해진 룰이 있으며 이 룰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절차적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페루의 이번 대선은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확실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당 제도화는 여전히 취약하며 인종적, 지역적, 경제적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로의 진보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그리고 이번 대선은 50.12%와 49.87%에 반영된 Fujimorismo와 Anti-Fujimorismo가 ‘두 개의 페루’라 불릴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통합되지 못했던 페루 사회의 새로운 균열 요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