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호(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지난 6월 23일 세계의 주목은 쿠바 아바나로 쏠렸다. 52년간 지속된 콜롬 비아혁명군(FARC)과 정부군간의 내전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르는 정전협정 조인식이 거행됐기 때문이다. 이 내전을 통해 그간 26만명이 목숨을 잃고 4 만5천명이 실종됐으며, 660여만명의 국내실향민(IDP)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콜롬비아를 IDP 최다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과거 1980-90년대에 세 차례의 평화협상이 모두 실패했지만 이번 경 우는 과거 또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 아 세계의 관심이 컸다.
이날 조인식에는 앞으로의 평화 정착 과정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유엔 을 대표해 반기문 사무총장 등 유엔 고위 인사들은 물론, 평화보장국 임무를 맡는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와 노르웨이의 보르지 브렌데 외무장관, 그리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칠레, 베네수엘라, 엘살바도르,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대통령과 미국, 유럽연합 대표 등이 대거 참석했다.
그러나 정작 콜롬비아 내부의 정치 경제 기상도를 보면 과연 이 평화안이 종국적으로 성공을 거둘지 의문이 든다.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이나 로드리고 론도뇨 FARC 지도자 (일명, 티몰레온 히메네스, 별칭‘티모첸코’)는 한결 같이 “과거로의 회귀는 없다”고 장담한다. 산토스 대통령의 기대대로 이번 정전협정에 이어 독립기념일인 7월 20일경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협정문이 10월경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된다 하더라도 실행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너무 도 많다. 우리나라는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우여곡절 끝에 7월 15일 발효시킨다. 또한 한국전 참전국으로서 전략적 동반자국가인 콜롬비아 정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바나 평화협상(Mesa de la Habana)의 내역을 살펴보면, 모두 6개 안건으 로 구성돼있다. 산토스는 국방장관시절 반군 소탕을 지휘하던 이미지와는 달 리 2010년 8월 대통령 취임직후 2년간 FARC와 비밀협상을 진행오다 마침내 2012년 10월 FARC와의 평화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대선 때까지 합의한 것은 농지개혁, 반군세력의 정치참여, 반군의 마약거래 결별 뿐이었다. 산토스 대통령은 평화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도와달라는데에 유세의 초점을 맞추었고 5월 1차 투표에서 2위를 하고는 6월 결선투표에서 51% 득표로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후 평화협상은 피해자보상 및 권 리 (가해자의 형사책임), 게릴라의 무장해제, 검증가능한 평화실행 의제에 집 중되어 현재 완결단계에 접어들었다.
첫째, 토지개혁은 FARC가 1964년 투쟁을 개시할 당시 최대 이슈였던 토지 소유의 불균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FARC조직원들에게 일자 리를 제공하기 위해 농촌개발사업들을 펼치면서 토지개혁을 실행할 계획이 다. 구체적인 토지개혁자금 집행안 즉, 대상토지 위치 및 면적 등은 협상중 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부의 재정부담이 관건이다. FARC내 강성조직인 ‘제1전선’은 자신들을 무장봉기하게 만든 “사회.경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 을 것”이라며 무장투쟁지속을 천명하고 있다.
둘째, 반군세력의 정치참여는 원칙 합의를 마쳤고, 구체적으로 지역구, 의 석 수 및 임기 등은 협상중이나 비교적 낙관적이다. 콜롬비아의 게릴라는 1962년부터 1970년까지 차례로 민족해방군(ELN), FARC, 4.19운동(M-19)이란 이름으로 출현했다. 이중 M-19은 1970년 4월 19일 대선결과에 불복한 세력 이 조직한 도시게릴라였다. 이들은 1985년 11월 대법원 점거후 격렬한 전투 끝에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여론의 힘에 밀려, 사면과 정치참여를 조 건으로 자진 무장해제했었다. 잔여세력은 좌파정당을 만들어 정계에 진출했 고 보복을 당하는 와중에서도 오늘날 보고타 시장등을 배출해낸 사례가 있 기 때문이다.
셋째, 마약거래는 그간 농민, 목장주, 기업들로부터 징수한 이른바 ‘혁명 세’와 납치인질의 몸값과 함께 반군의 자금줄이었다. 최근 티모첸코는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기존 비축자금으로 반군의 비용을 충당하겠다고 밝혀 더 이상의 자금 모집을 중단함을 이미 천명한 상태다. 따라서 마약거래와의 결별도 낙관적이다.
넷째, 피해자 및 피해지역에 대한 보상은 역시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한 사안이다. 또한 피해자의 가해자처벌 요구와 관련해 FARC 조직원이 과거 테 러사건에 연루된 사실을 자백하면 실형을 살지 않는 대신 8년간 헌법에 보 장된 자유에 제한을 받고 사회봉사 의무를 부여받는 것으로 합의된 상태다. 그러나 이 부분은 국내적으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마지막 협상은 사 면법이 규정할 정치범죄의 범위, 평화재판소 판사 임명기준 등이다.
다섯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7200명의 FARC 조직원은 5일내 평화지대 역할을 할 국내 23개 농촌지역 즉 “정상화이행구역(Zonas Veredales Transitorias de Normalización)” 및 8개 수용소 (campamentos)에 귀향조치되고 6개월간 체류하며 점진적으로 무장해제된다. 정부군은 이른바 정상화이 행구역의 외곽을 호위하고 FARC 및 유엔의 허가없이는 진입하지 않는다. 유엔감시단이 수거한 무기는 대부분 파기하고 나머지는 콜롬비아, 쿠바 및 유엔본부의 기념공간에 보관된다. 당초 FARC는 국민투표 대신 제헌회의를 열어 평화협정을 헌법내에 수용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를 철회했다.
여섯째, 검증가능한 평화실행 역시 유엔 감시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엔 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2261호를 통해 350명의 비무장 군인 및 150명 의 민간인으로 구성된 감시단 파견을 결정한 바 있다. 이미 아르헨티나, 칠 레, 파라과이, 우루과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멕시코, 볼리비아 군을 대표 하는 선발대 40명이 민간인 20명과 함께 콜롬비아에 도착해 감시단 임무 준 비에 착수한 상태다.
이렇듯 콜롬비아 평화안의 최대 의의는 반군게릴라 사령관들이 자발적으 로 귀향하여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는데 동의한 세계 최초의 사례라는 점이 다. 물론 여기에는 실형을 살지 않는다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기는 하다. 즉, ‘용서’라는 철학이 깔려있다. 산토스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유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 참여와 국제적 관심 속에서 평화협정의 국민투표 통과는 가능해 보 인다. 최근의 여론 조사 결과는 국민투표 참여가 40% 대 22%로 불참을 능가 했고, 응답자중 지지자가 70% 대 17%로 반대자를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조사에서는 2:1의 비율로 통과가 예상된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국 민투표를 앞두고 또는 가결 후 실행단계에서 새로운 돌발변수가 나타날 가 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먼저 경제난이다. 콜롬비아의 주력 수출품은 오늘날 원유, 석탄, 금, 화훼, 커피, 바나나, 담배 등이다. 즉, 1차 산품에 집중되어 있어 국제가격시세 변 동 및 기후변화 등 외부적인 요인에 취약한 수출구조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광물 및 에너지산업 비중을 줄이고 제조업, 관광업, 농업을 부흥시켜보려했 지만 아직 투자부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상황에서 콜롬비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2.5%에 그칠 전망이고 정부 재정적자는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4%에 육박할 것으로 우려된다. 평화 안의 핵심이 농촌개발사업과 피해자 및 피해지역 보상에 있는데 이를 실행 하려면 정부는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하지만 저유가, 저성장 상황에서 재정수 입이 더 줄어든 만큼 세원 확보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
둘째 장애물은 정치적 부담이다. 무엇보다 반군을 실형에 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론은 이미 분열되어 있다. 테러를 자백한 자에게 8년간의 ‘자유제한’은 처벌로서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은 이 를 문제삼아 평화협정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부친을 FARC의 손에 잃었고, 집권 8년동안 유례없는 반군소탕 작전을 펼치면서 경제성장과 안보 확립의 공으로 91%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다. 최근 대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 결선에서 45% 득표로 낙선한 오스카르 술루아가 후보 의 배후세력이기도 했다.
반면, 최근 산토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21%까지 떨어졌다. 인기없는 증세 문제를 놓고 그의 지지율은 더 추락할 수도 있다. 약 660여만명의 국내실향 민이 발생한 농촌지역은 평화를 갈구하지만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에서는 평화가 그리 ‘발 등의 불’이 아닌 편이다. 산토스 대통령은 “전쟁은 평화 보다 더 값비싸다”며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어느 세대인가는 용서라 는 결단을 내려 복수의 고리르 끊고 가야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호소 한다.
콜롬비아 국민들이 이 숭고한 ‘용서’철학에 입각해 인내심을 갖고 평화 협정을 이행해간다 치더라도 진정한 평화정착까지는 수년 아니면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FARC는 공식적으로 새 조직원 충원을 3개월전 중단했다지 만, 남은 게릴라조직 ELN이나 FARC내 제1전선이 불만세력 흡수로 세를 키 우고 있어 더욱 그렇다. 또한 게릴라 극성으로 그간 눌려있던 갱단 및 마약 단들이 득세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콜롬비아의 힘든 평화행진이 종국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상황이 호전되어야한다. 만일 증세와 국제적 재정지원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귀향한 FARC조직원의 무장해제 과정이 평화롭게 진행된다면 여 타 무장세력의 평화과정 참여에도 탄력이 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순탄치 않다면 2018년 대선 결과에 따라 사태는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는 안타깝게도 반복되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