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전북대학교)

  

  볼리비아의 선거제도는 독특하고 흥미롭다. 투표개시 48시간 전부터 투표 종료 12시간 이후까지 모든 장소에서 주류 판매와 소비가 금지된다. 투표일에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차량 이외의 모든 교통이 통제된다. 대중 교통도 통제되어 투표소도 걸어서 간다. 국제선을 제외하고는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된다. 투표는 의무이며 불참시에는 3개월 간 금융거래 제한 등의 제약이 따른다. 투개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하에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직접 주관한다.

  지난 10월 12일 치러진 볼리비아 총선은 대통령, 부통령, 상원의원 36명, 하원의원 130명, 그리고 초국가기구 볼리비아 지역대표 18명(예비 9명 포함)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였다. 선거 결과는 선거 이전에 예상했던 대로 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승리하며 2020년까지 집권을 연장하게 되었다. 에보 모랄레스 후보는 61.36%의 득표를 기록하며, 24.23%에 그친 보수 야당 국민연합(Unidad Nacional)의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Samuel Doria Medina)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결선 투표없이 당선을 확정지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총9개의 주 중에서 베니(Beni) 주를 제외한 8개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야당의 거점인 산타크루스 데 라 시에라 주에서도 48.99%의 득표를 기록하며 39.82%를 기록한 도리아 메디나를 앞서며 놀라움을 주었다. 2009년 대선과 비교할 때, 모랄레스는 6개주에서 승리하며 64.2%를 기록한 2009년에 비해 득표율은 약간 낮아졌지만 승리한 주의 숫자는 2개나 늘었다. 즉 볼리비아 전역에서 고른 지지를 얻었다는 뜻이다.

  한편 모랄레스가 이끄는 여당 사회주의운동(Movimiento al Socialismo)은 의회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사회주의운동은 상원에서 25석 그리고 하원에서 89석을 획득하며 총 의석의 3분의 2인 개헌 가능선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하여 야당의 협조 없이도 개헌이 가능하게 되었다. 2014년 총선에서 모랄레스 대통령과 사회주의운동이 압승을 거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즉 취임 이후 모랄레스 정권이 이룬 정치 안정과 경제 실적에 대해 볼리비아 유권자들은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선 볼리비아는 2006년 모랄레스 대통령 집권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국가 중 하나로서, 2006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이 5%에 달한다. 2006년에 114억 달러였던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 306억 달러로 증가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도 1,203달러에서 2,868달러로 증가했다. 또한 이러한 성장은 충실한 소득재분배와 함께 진행되었다. 2000년 기준으로 58%를 넘었던 빈곤율은 2012년 기준으로 26%까지 하락했다. 가격관리를 통한 인플레이션 통제와 천연가스 등 주요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 강화 정책도 재정 확대와 소득재분배의 기능을 톡톡히 하며 국민적 지지를 높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볼리비아의 공공지출은 2005년의 80억 볼리비아노에서 2013년에는 210억 볼리비아노로 크게 증가했으며, 증가한 공공지출의 대부분은 사회 프로그램과 보너스와 같은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복지의 꾸준한 확대를 추구하면서도 조심스럽고 건전한 재정 운영은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경제 위기에 처한 베네수엘라와는 비교가 된다.

  이러한 경제적 안정은 정치 안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9월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58%가 볼리비아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모랄레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75%에 육박했다. 집권 초기의 이념 및 지역 대립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사회주의운동의 국정운영은 압도적 지지에 기반하여 안정화되었다.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야당이 구심점을 상실한 채 수권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모랄레스 집권 초기 소환 투표를 시도하고 분리 독립까지 요구하던 산타크루스를 포함한 동부 지역에서의 승리는 이러한 정치적 안정의 상징과도 같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선거를 포기하다시피하며 개헌저지선을 위한 의석 확보를 목표로 삼기도 하였다.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로 모랄레스 정권은 3기 시대를 맞이한다. 3기 정권에 대한 전망은 비교적 어둡지 않은 편이다. 원자재, 특히 천연가스, 광물 그리고 콩 등 천연자원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 80%를 넘는 무역 구조가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사회주의적 레토릭과 실용주의적 정책의 조화 속에 추구되는 볼리비아의 소위 ‘토착사회주의’적 경제는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기존 정당체제의 붕괴 이후 아직도 조직의 안정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야권을 볼 때 당분간 뚜렷한 정치적 대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볼리비아 정치의 최대 관심사는 헌법 개정을 통한 모랄레스 대통령의 집권 연장 시도일 것이다. 2006년 1월에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대통령의 재선이 허용된 2006년 신헌법에 따라 치러진 2009년 선거에서 2005년에 이어 다시 승리를 거두고 2014년까지 임기를 연장했었다. 이후 2009-2014년의 대통령 임기가 첫 번째 임기인지 아니면 두 번째 임기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으나 결국 첫 번째 임기로 결정이 나며 모랄레스 대통령은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 자격을 얻기도 하였다. 이번 선거로 2020년까지 임기를 확보한 모랄레스 대통령이 지금은 고인이 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처럼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거나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을 시도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