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전 <한겨레21> 라틴아메리카 전문위원)

  

  12년 만에 다시 찾은 상파울루는 아주 달라 보였다. 2002년 당시 룰라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노동자당(PT)은 브라질 민중의 변화 욕망을 대변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제1야당이었다. 이번엔 12년간의 집권에 대한 브라질 국민의 냉정한 평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집권 여당의 위치에 있었다. 그때는 상파울루 거리 곳곳에서 노동자당을 향한 뜨거운 기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자당의 상징인 붉은 깃발을 두르고 키스를 나누던 선남선녀들, ‘룰라 대통령!’이라 새겨진 커다란 깃발을 펼쳐 보이던 소년 소녀들. 이번엔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eff) 후보의 기호와 이미지가 담긴 스티커를 붙인 시민들이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노동자당 깃발이 힘차게 휘날리던 풍경을 접하긴 어려웠다.

  12년 전과 달리 상파울루는 떠들썩한 열기 대신에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로 나를 맞았다. 2002년에도 이번과 동일하게 대선 1차 투표전날에 도착해 투표 결과를 지켜보고 1주일가량 머물면서 브라질 민심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브라질에선 1차에서 과반을 얻는 후보가 나오지 않을 경우 1위와 2위 후보를 놓고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그때 브라질 사람들에겐 불투명한 미래에 희망을 걸어보겠다는 이상주의가 넘쳤다. 반면 이번에는 그동안 이룩해낸 성취를 결연히 지키겠다는 현실주의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때 룰라 후보도 1차 투표에서 승부를 내지 못하고 결선투표를 치러야 했지만 시민들은 파울리스타 대로에 모여들어 1차 투표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으로도 환호했다. 이번에는 1차 투표에서 우여곡절 끝에 지우마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상파울루 시민들은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를 열지 않았다.

  

[사진] 상파울로 노동자당 당원집회에서 연설하는 전 룰라 브라질 대통령 (2014.10월) / 출처: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브라질 연수단 제공

[사진] 지우마 후보 사진을 붙이고 있는 상파울로 시민 (2014년 10월) / 출처: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브라질 연수단 제공

  

  

  노동자당의 부진한 성적표

  “모든 것이 1차 투표 결과에 달려 있다.” 상파울루에 도착하기 전부터 브라질노총(CUT) 국제협력위원회에서 일하는 알렉상드리 벵뚜가 메일로 응답했다. 룰라 대통령이 퇴임 후에 세운 룰라연구소(IL)와 노동자당(PT)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대한 대답이었다. 10월 5일 드디어 1차 투표 결과를 텔레비전으로 확인했다. 지우마 호세프 노동자당(PT) 후보가 41.45%, 아에시우 네비스 사회민주당(PSDB) 후보가 33.71%, 마리나 시우바 사회당(PSB) 후보가 21.3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노동자당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대통령 후보는 전국 득표율에서 40%를 겨우 넘겼고, 연방 하원 선거에선 4년 전과 비교해 18석이나 상실했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주요 주들 가운데서 미나스 제라이스 주에서만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2억 브라질 인구 중 4천 5백만 명이 거주하고, 브라질 국내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상파울루 지역(상파울루 시와 상파울루 주) 투표 결과는 ‘기록적인 패배’라 불릴 만큼 좋지 않았다. 주지사 선거에서는 집권당의 체면을 구기며 3위를 기록했고, 상파울루 주를 대표하는 연방의원 수가 14명에서 10명으로 줄어들었으며, 상파울루 주의원 수도 22명에서 14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노동자당과 룰라연구소(IL)의 책임자를 만나는 일은 더욱 요원해졌다. 알렉상드리는 “모두 브라질리아로 떠나고 상파울루에는 아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2차 투표 전략을 짜기 위해 노동자당 지도부와 룰라연구소 책임자들도 모두 연방수도로 향했다는 말이었다.

  사실 노동자당의 성적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브라질노총의 사무국장 줄리우 뚜하는 “토지개혁과 정치개혁과 같은 핵심 개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노동자당이 연립정권을 세우며 대지주, 독재정권에 협력한 세력이 포함된 우파정당과 연합했기 때문에 개혁을 추진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10여 개의 정당과 연합하여 의회 과반을 차지함으로써 통치 안정은 얻었지만 그 대가로 주요 개혁을 이루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160만 브라질 농민의 대표조직,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의 연수원에서 일하는 이지스 깡뿌스도 노동자당 정부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가 점거한 토지를 분배하고, 기술과 신용을 지원하는 일은 꾸준히 해왔지만 토지 소유 문제를 근본적으로 건드리지는 못했다.” 노동자당 노동위원장인 앙젤루 다고스띠니는 “지금 정치개혁 대상이 모두 연방의회에 있다. 그런데 그들이 법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개혁의 주체는 연방의원들이 아니라 의회 밖의 시민들이며, 노동자당이 앞장서 시민대중의 힘을 결집해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룰라 전임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이자 정치적 고향인 상파울루 주의 에이비시(ABC) 지역에서 만난 브라질노총 산하 금속노조(CNM) 위원장인 파울루 까이리스는 노동자들의 지지 열기가 이전만 못하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에이비시 공단 지역에서도 대선 1차 투표 결과, 아에시우 네비스 후보 36%, 지우마 후보 32%, 마리나 후보 25%를 기록했다. 2010년 대선에서 55%의 지지를 획득한 것에 비하면 지우마 후보의 득표율 하락이 눈에 띈다. 전통적으로 상파울루 주는 보수적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커피 플렌테이션으로 유명한 이 지역은 브라질에서 노예제도가 가장 늦게 폐지된 곳이기도 하고, 사회민주당(PSDB)이 20년 동안 주정부를 이끌어온 곳이었다. 룰라 후보도 상파울루 주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에이비시(ABC)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룰라 후보가 9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획득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노동자당에 대한 지지가 예전만 못한 것은 확실했다.

  이와 관련해 파울루 까이리스 위원장은 한 가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브라질 노총이 750만 가사도우미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는 법안을 제출하자 룰라 정부의 성공으로 탄생한 4천만 명에 이르는 신중산층과 전통적인 구중산층 모두가 반발하더라는 것이다. 가사도우미 대다수가 빈곤층에 속하는 흑인 저임금 여성 노동자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대체로 중산층에 속하는 남성 고임금 백인 노동자들과의 사이에 엄연한 격차가 존재함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우마와 룰라, 서로 다른 과제들

  10월 26일 결선투표에서 재선된 지우마 대통령 앞에는 룰라 대통령이 12년 전에 직면했던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과제들이 놓여 있다. 당선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2013년 6월 시위 이후에 더욱 명확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당시 시위는 리우데자네이루 시에서 대중교통요금을 인상하려고 하자 이에 맞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는 곧 교통,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 개선, 정계 부패 척결을 내건 전국적 시위로 확산되었다. 그 대규모 시위는 지우마 정부는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과연 노동자당 정부가 성공을 거둔 것이 맞는지 의문도 생겨났다. 지우마 대통령은 수백만 시민들, 특히 청년들이 가두시위에 나섰을 때 사태의 중요성을 즉각 알아차리고 정치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렇게 대규모 시민 시위로 인해 추락한 지지도를 단 몇 달 만에 복원할 수 있었다.

  당시 지우마 대통령은 6월 시위의 교훈을 묻는 외신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는, 국민이 한 가지 민주주의를 얻게 되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게 된다는 것. 정부가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일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어느 정부든 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 시위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 민주정부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시위 참가 시민들이 브라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며 시위의 긍정적인 의미를 짚었다.

  2013년에 브라질은 국제연합이 지정한 기아국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자신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즈음이면 브라질 국민 중 굶주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던 룰라 대통령의 공약은 후임자인 지우마 대통령에 의해 완전히 실현되었다. 그래서 룰라 대통령은 2013년 6월 시위에 대해서도 너스레를 떨 수 있었다. “브라질 국민들이 기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브라질 국민들이 건강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고 말했다.

  즉 노동자당 12년 집권 기간에 5천만 명에 달하던 브라질 극빈층이 모두 소득 상승을 경험했다. 그들 가운데 단 한 명도 더 이상 굶주리지 않는다. 요컨대 2013년 6월 시위는 노동자당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당이 성공했기 때문에 벌어진 시위였다. 빈곤에서 벗어난 브라질 국민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위였다. 노동자당과 지우마 정부에게 더욱 업그레이된 비전과 정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2013년 시위 다음에 월드컵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지우마 정부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월드컵은 경제적 낙관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 유치한 행사였다. 그때만 해도(2003~2010) 브라질 경제는 연평균 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경제위기 이래 중국, 유럽연합의 경제가 차례로 영향을 받으면서 2014년에는 브라질도 2분기 연속 경기가 하락하는 ‘기술적 경기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 연방정부는 총116억 달러를 들여 월드컵을 치러야 했다. 월드컵에 소요된 총비용은 브라질 전체 교육예산의 60%, 브라질 의료 예산의 30%에 상당했다. 언론이 “축구장은 제1세계, 교육과 의료는 제3세계”라고 조롱을 퍼부은 것이 이 때문이었다. 이에 축구애호가이기도 한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파울루 까이리스는 “축구는 잘하겠지만 축구대회는 잘 치르지 못할 것”이라던 언론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면서 “축구는 못했고, 축구대회는 잘 치렀다.”며 응수했다.

  국제적으로 볼 때는 월드컵 반대 시위를 포함한 대중 시위에 대한 주정부의 탄압이 오히려 지우마 연방 정부에 대한 부당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브라질에서 벌어진 일이라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된 시위 탄압 이미지들은 브라질 경찰제도에 대한 완벽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브라질은 미합중국을 모델로 한 연방국가로 연방경찰은 수사만 담당하고 주 치안은 주 경찰이 담당한다. 연방군도 주 정부의 요청이 없으면 주 정부에 투입되지 않는다. 주정부가 요청해도 연방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모든 사태는 연방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브라질 노총 국제국의 지에구 아라우주는 “상파울루 주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 가장 억압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상파울루 주지사 헤라우두 아우끄밍 후보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되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12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노동자당 당수나 룰라연구소의 책임자 대신 룰라 전임 대통령이 주도하는 노동자 집회를 찾았다. 10월 9일 상파울루 시에서 열린 옥내 집회이자, 결선 투표를 위한 필승 전략을 천명하는 자리였다.

  룰라 전 대통령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빽빽한 무대에서 상파울루 지역의 패배를 만회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무엇보다 빈민층 및 청년층과 정치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동자당 시장이 정치를 펼치는 상파울루 시와 달리 상파울루 주에 거주하는 빈민들은 연방정부 빈민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또한 7백만 브라질 대학생들을 대표하고 있는 전국학생연합(UNE) 여성의장이자, 북동부의 빈민 지역인 페르남부쿠 출신의 비르지니아 바호스, 상파울루 시에 있는 맥킨지대학교 법과대학 역사상 최초의 흑인여성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따리미스 고미스 쌍빠이우 등 두 명의 여성 리더를 직접 소개했다. 12년간 노동자당 집권이 창출한 평등과 통합의 문화가 이들 두 명의 청년 리더를 탄생시켰다고 추켜세웠다.

  룰라가 청년 리더들을 부각시킨 이유는 명확했다. 노동자당의 노동위원장 앙젤루 다고스띠니는 브라질 청년층의 사정을 이렇게 알려주었다. “룰라 집권 12년에 성장해 투표권을 이제 막 행사하게 된 청년들은 12년 전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체감하지 못한다. 노동자당 정부에서 느끼는 부족한 점을 야당 후보가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변화를 향한 기대가 노동자당이 아니라 우파 정당을 향하고 있다.”

  금융노조 체육관 실내를 가득 메운 노동자들 앞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의 의미를 요약했다. "이번 선거는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등과 포용의 문화가 파괴된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가치가 파괴된 과거로 다시 갈 것인가. 차별과 배제의 시대가 재연되고, 공포와 절망의 문화가 귀환할 과거로 갈 것인가."

  상파울루 외곽에 거주하는 지아니니 주지찌는 룰라의 연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800만여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최대 노동자조직인 브라질노총(CUT)에서 18년째 일해 온 베테랑 노동운동가이다. "노동자당 정부는 성과도 많이 냈지만 실수와 오류도 적잖게 저질렀다. 룰라와 지우마 정부에 대해 비판도 많이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의 야당 후보가 이 나라를 12년 전으로 되돌려놓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노동자당 16년 연속 집권이라는 기록

  노동자당에 대한 다양한 지지자들의 결기들이 10월 26일 결선 투표 결과에 반영된 것일까. 1989년 최초 직선제 이래 가장 격차가 적었던 초박빙의 선거에서 지우마 후보는 신승을 거두었다. 노동자당은 민주화 이후 무려 16년간 연속 집권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지우마 대통령 당선자 앞에 전례 없는 과제들이 놓여 있다는 것은 명확했다. 90%에 가까운 국민 지지율을 기록하여 ‘세상에서 가장 인기 많은 대통령’이라 불렀던 룰라조차도 감히 추진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래서일까 당선자의 일성으로 그녀는 ‘정치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대선 몇 달을 앞두고 브라질 사회운동단체들은 국민투표로 제헌의회를 소집해 정치개혁을 추진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무려 8백 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를 대통령 당선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민운동가들이 곧 브라질리아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하면서 “청년을 비롯한 브라질 민주의 참여가 정치개혁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천명했다. 특히 연방 의회의 의석보유 정당을 28개나 양산한 정당제도, 연방하원 1인 선거비용이 많게는 300만 달러가량 쓰게 만드는 선거제도, 1970년 당시 반독재 게릴라 조직의 리더였던 지우마를 체포돼 무려 20일간 고문을 자행한 책임자를 처벌하는 문제 등 정치개혁의 의제는 쌓여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룰라 대통령 시기에 정치적 힘을 완전히 상실했던 야권이 전열을 가다듬고 더욱 강력하고 조직적인 반대파로 다시 일어섰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집권한 브라질사회민주당(PSDB)은 연방하원에서 9석을 늘려 총 62석으로 제3당의 입지를 굳혔고, 대선 레이스 초반에 자기 당에서조차 교체하려던 아에시우 네비스 후보는 무려 48퍼센트 지지율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유성처럼 사라지긴 했지만 ‘마리나 시우바 현상’을 통해 브라질 국민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망각할 수는 없다. 시우바 후보는 노동자당의 왼편을 버리고, 노동자당과 우파 사민당 사이로 우선회하는 바람에 정치적 일관성도 국민의 신뢰도 잃어버렸다. 지우마 후보의 지지율을 이따금 능가하면서 노동자당을 공포로 몰아넣은 시우바 후보에 대한 지지는 변화를 갈망하는 브라질 국민 70%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치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 정당이건 지도자건 꾸준히 진화해가는 민중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면 이내 도태되고 만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성공했기 때문에 권력을 상실한 뻔 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정당을 가져볼 호사가 언젠가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