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성(경희대학교)

한국과 중남미간의 관계는 외교, 수출, 투자 등의 현실적 이슈를 중심으로 진화해왔고, 기업진출, 자원확보 등 국익창출이라는 효과성-효율성에 기초한 패러다임이 지배해왔다. 여전히 중남미는 수출효자시장이고 자원의 보고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 10위권, 무역 1조 달러, 세계 최우등 신용평가, 외환보유고 3,000억불,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 단시간에 이룩한 민주주의, 특수성을 넘어 보편성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대중문화 등 빠르게 재정립되고 있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한국과 중남미의 관계는 아직도 국가주도형 발전주의 프레임에 함몰되어 있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외교, 무역, 투자, 개발협력, 인적자원(이민)의 분야에서 앞으로의 발전적인 한-중남미 관계망 형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외교, 소프트파워를 향한 공공외교의 구현

오늘날 한-중남미 관계에는 어떤 외교적 의미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냉전 체제가 붕괴된 이후 이데올로기는 큰 역할을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남미가 주변 4강이나, 전통적인 파트너인 아시아, 북미, 혹은 유럽만큼 외교적 중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성된 외교적 공백을 메운 건 환경, 빈곤, 집단안보, 경제위기 등의 글로벌 아젠다이다. 최근의 대통령 순방 및 정상회담 패턴을 보면 타국 방문을 기본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대부분이 APEC정상회담, 비후변화회의 등 다자간 글로벌 거버넌스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APEC 정상회담은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 중남미 정상 간의 정기적인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국가이익과 우호적 이미지를 선양하는 문화와 예술, 스포츠를 매개로 하는 공공외교가 부각되고 있고, 외교 영역에 있어 민간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스마트 공공외교는 강소국 소프트파워로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중남미에 각인시킬 수 있는 새로운 외교 수단이다. 그러나 공공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다. 공관 중심의 영화 상영이나, 한류 콘서트 주최 등이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한 게토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공공외교의 핵심 전략은 남의 입을 통해 우리를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유튜브라는 시장 매커니즘을 통해 세계를 점령한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무역, 제조에서 서비스로

한-중남미 교역액은 2003년 이후 3.8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중남미와의 무역에서 한국은 1987년 이후 24년간 연속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효자시장"으로 잘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역분야에 있어선 앞으로 어떤 발전 과제가 놓여 있을까? 첫째, 주요 4개국(멕시코, 파나마, 브라질, 칠레)에 대한 수출 비중이 여전히 절대적인이며, 선박과 디스플레이 등 주요 품목에 대한 비중이 여전히 크다는 점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특히 현재 저개발 상태에 있는 중미와 일부 남미국가(볼리비아, 파라과이)의 경우 앞으로 발전의 가능성이 크고 인구도 늘어나고 있어 미래의 파트너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요 투자국 이외의 국가에 대한 무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늘어나는 제조업 수출에 비해 수입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확대는 민간의 영역으로 두고, 정부는 무역불균형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좀 더 지속가능한 경제관계 구축을 위한 외교를 구사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FTA는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다. 셋째, "자원-IT연계형 패키지형 진출을 활성화하자"는 식의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여자 간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관 주도의 비효율성이 주된 원인이다. 여러 부처, 다양한 기업, 한국과 중남미 등 참여자가 다원화 될수록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보다는 한국 또는 제3국 주도로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와의 연관 분야에 진출하는 편이 훨씬 더 시장친화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이다. 예를 들면, 중남미에도 도시가스(LNG) 사용이 늘어나면서 가스안전 관련한 기자재와 서비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이에 대한 사업기회도 새롭게 마련되고 있다. 넷째, 서비스 수출로 새로운 중남미 진출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의 수출 경쟁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서비스 상품의 경쟁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서비스 수출은 이제 막 활성화되는 단계라 무형의 상품을 들고 해외로 나간 기업은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해외진출이 가장 부진했던 금융 부문도 하나 둘씩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브라질 증권시장에서 IT 기술을 도입하여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음에 주목하자.

투자, 진화하는 직접투자

한국의 대 중남미 투자는 전통적으로 전자와 봉제를 중심으로 대미 수출을 위한 임가공 형식인 멕시코-중미 투자(효율성추구형)와 고관세를 피하고 내수를 목표로 한 브라질 투자(시장진출형)로 양분되어 있었다. 분야에 있어서도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최근 광업 및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 앞으로 투자 패턴의 다양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많은데, 그 방향성으로는, 첫째, 전통적인 전자, 봉제, 철강에서 자동차, 바이오텍 등으로 제조업의 업종 다양화 및 밸류체인 구축을 통한 현지화 가속, 둘째, 농업 및 관련산업 직접 경영(업스트림) 진출, 셋째, 금융, 물류 등 중남미의 소득증대로 인한 서비스 분야 진출 확대, 넷째, 자원-에너지에 대한 직접 경영, 다섯째, 투자진출국의 다변화 둥이 예상된다.

ODA, 개발협력의 효과성 확보

개도국의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는 개발협력 분야는 한국의 원조확대와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 2011년의 부산세계원조총회(HLF4) 개최 등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영역이다. 중남미와의 개발협력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2005년에 한국의 미주개발은행(IDB: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 IDB) 가입이 성사되어 다자간 협력의 기틀이 만들어진 때이다. 우리나라는 낮은 지분율을 보충하기 위해 총 2억 불을 출연하여 지식협력기금(KPK), 빈곤감축기금(KPR), 중소기업개발기금 등을 조성하는 조건으로 가입협상을 마무리하여 가입과 동시에 IDB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회원국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한국의 신탁기금은 IDB의 최대 규모 기술협력(TC) 무상재원으로서 중남미의 개발과 한-중남미간 지식공유를 위한 중요한 재원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 중남미 개별국가와의 양자 원조는 총 원조액의 10% 미만으로 크지 않다. 중남미가 지리적으로 멀고, 중소득국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중남미 개발협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원조가 보건, 행정제도, 정보기술, 에너지, 직업교육 등 분야별로 사업이 진행되다보니 분야 전문성이 우선시되어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를 못한 채 사업이 발굴-형성되어 개발효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역전문 연구자들이 참여할 여지도 크지 않다. 이는 원조효과성을 저해하는 매우 큰 요인으로서 우리나라 대외원조의 근본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특히 중남미 지역은 언어-문화적인 이질성과 서구적 프레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조 대상국에 대한 기존의 접근 방식을 고수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이 경우 분야 전문가와 지역 전문가가 협력할 수 있는 사업 체계를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책(policy)과 사업(project)을 동시에 이해하는 정책 결정라인의 구축이 시급한 현실이다.

마치며

중남미에게 있어 한국은 여전히 국익창출에 몰입하는 중상주의자의 모습이다. 따라서 한-중남미 관계는 여전히, 불평등, 불균형, 중심-주변의 패턴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에게 있어 한국은 중국의 거대한 파고를 피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이기 보다는 자신을 대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효율성으로 무장한 버거운 상대이다. 그러므로 국제사회의 강소국으로 도약을 원하는 한국에게 있어 중남미와의 지속가능한 파트너십 정립은 매우 의미있고 필요한 작업이고, 세계로 향한 미래의 포지셔닝을 확대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 인식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금까지 짚어본 외교-무역-투자-개발협력 등의 영역에 대한 재정의와 재접근을 통해 다가오는 50년을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