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7개 도시서 항의 시위 열려
페르난데스 대통령 "사법부의 부패가 문제" 맹비난
(부에노스아이레스 A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에서 여성을 납치해 사창가로 팔아넘긴 인신매매 일당이 무죄로 풀려나 논란이 일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포함 전국 각지에서 이러한 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곳곳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간 충돌이 빚어졌다.
정관계 인사들도 나서 판결을 강력히 비판하고 재판부의 탄핵을 요구했다.
아르헨티나 투쿠만주(州) 지방법원은 앞서 11일 2002년 당시 나이 스물세 살의 마리타 베론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로 기소된 13명에 대해 증거불충분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증인으로 나선 동료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고, 피고들이 베론의 실종에 관여했다는 물증이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베론은 아르헨티나 성매매 피해 여성의 영웅으로 알려진 수산나 트리마르코(58)의 실종된 딸이다.
트리마르코는 10여 년 전 실종된 딸 베론이 인신매매 일당에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후 전국의 사창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딸의 행방을 쫓았다.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성매매 여성을 구출해 재활을 도운 트리마르코의 사연은 금세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퍼져 성매매 피해 여성을 돕자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아르헨티나 내무부는 베론의 이름을 딴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재단을 설립했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그녀에게 인권상을 수여했다.
트리마르코는 미국 국무부가 수여하는 '용감한 여성상'을 받았으며,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트리마르코의 이같은 노력을 허사로 만든 이날 판결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전국 7개 도시에서 성난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 시위대는 정부 건물을 향해 계란과 돌을 던지고 창문을 부수는 등 거세게 항의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베론이 실종된 도시인 투쿠만에서는 "마리타에게 정의를"이라는 팻말을 내세운 대규모 행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리마르코를 지지하고 재판부를 규탄하는 정관계 인사들의 발언도 쏟아졌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트리마르코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재판 결과에 유감을 표하고, 사법당국의 부정부패가 이날의 판결을 불러왔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주아르헨티나 미국 대사관도 성명을 내 트리마르코를 격려했다.
트리마르코는 담당판사들이 피고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매매가 합법인 아르헨티나에서는 마피아가 매춘 행위에 동원할 목적으로 여성을 납치하는 일이 빈번하다.
인신매매 피해 여성을 돕는 현지 시민단체 '만남의 집'에 따르면 지난 18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800여명의 여성이 실종됐으며, 이들 대부분이 매춘 마피아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2008년 4월 인신매매 행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규정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이후 2천221명의 여성이 인신매매조직으로부터 구출됐다.
그러나 그간 트리마르코 재단이 인신매매 일당을 상대로 낸 20건의 소송에서 실제 승소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