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도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 교수님에게 중남미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중남미를 공부하고, 이후 교수가 된 이후에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중남미를 가르치며 중남미와 연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칠레 발파라이소 가톨릭대학에 교환교수로, 또 페루,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칠레, 과테말라, 도미니카, 엘살바돌 등 수많은 중남미 대학들을 특강과 세미나 발표를 위해 방문하였으며 또 노무현 정부시절에 콜롬비아 대사로 근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학교수가 된 후 30년의 기간 동안 중남미와 관련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정당론’, ‘제3세계 정치론’, ‘구미정치론’ 등 다른 과목도 가르쳤지만 ‘중남미 정치론’을 강의할 때 제일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중남미’에 대한 선호가 있었던 것이지요.
2) 중남미지역 연구 및 관심을 갖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했지만 언어나 문학에 관심이 적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께서는 취업보다 대학원 진학을 더 바라셨습니다. 해서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공부한 정치학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아마 아버님이 젊은 시절 정치를 했던 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스페인어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외대 대학원에 있던 중남미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스페인어를 활용한 정치학, 중남미 정치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아마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영향, 스페인어 그리고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서서히 연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도 모르게 Blue Ocean을 찾아낸 셈이 됐습니다.
3) 중남미지역 연구하는 과정 가운데 어려웠던 부분이나, 혹 에피소드가 있었다면요?
1978년 스페인으로 유학가서 처음 공부할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시 박정희독재치하에서 종속이론, 해방신학, 세계체제론 등 제 3세계 정치이론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유학을 가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에 많이 놀랐습니다. 밀린 숙제하듯 힘든 시절이기도 했구요.
1982년 말 스페인에서 ‘국제 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t) 모임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스페인의 곤잘레스 총리, 포르투갈의 소아레스 총리 등 전세계 주요 사회당 당수들이 참석한 회의였습니다. 한국에서 전두환 정권은 김철 사회당 당수를 참가시켰습니다. 대사관의 요청으로 제가 통역을 맡았는데 외국의 주요 인물들이 한국대표와의 만남을 별로 반기지 않아 특별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총련에서 광주항쟁에 대한 선전이 있었기에 한국에서는 안기부와 언론사 등이 대거 동원됐습니다. 일종의 선전전이었죠. 하루는 호텔 로비에 있었는데 마침 안기부 직원과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Max Weber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기부 직원이 저더러 “막스를 읽으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순간 Max Weber 와 Karl Marx를 분간하지 못하는 거라고 직감했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죠.
4) 콜롬비아 대사 재임기간 어떠셨는지요? 의미? 에피소드등?
2년 4개월의 대사재임기간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간이죠. 학자로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습니다. 학자가 생각하는 삶이라면 대사는 실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론과 실천은 함께했을 때 훨씬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충분히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콜롬비아 대사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제가 공부해왔던 중남미에서 직접 일을 하게 되어서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정치, 문화, 역사 등 내가 잘 아는 일을 하니 훨씬 재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콜롬비아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한국의 발전경험에 대한 특강을 한 것입니다. 한 달에 1번 정도는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콜롬비아가 우리나라와 조금은 멀어져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아마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두 국가가 상호간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도 국제사회에서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콜롬비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입니다. 콜롬비아는 6.25 전쟁 16개 UN 참전국중 하나구요, 중남미 국가중 유일하게 5천여명의 군대와 1척의 군함을 파병해온 국가입니다. 전쟁중 200여명이 전사했습니다. 해서 한국과 콜롬비아의 외교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저는 이를 ‘보은외교’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우리정부는 필리핀, 베트남,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파라과이, 과테말라 등 제3세계 국가들에게 ‘공적개발원조’(ODA)라는 이름으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국가인 콜롬비아에게 이제는 우리가 도와주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한 정책들을 개발했습니다. 많은 콜롬비아 학생이나 공무원들을 한국에 초청해 IT, 교육 등 우리의 선진 기술을 전수하고, 또 보고타에 병원을 지워주고, 카리브의 주요 도시인 카르타헤나에는 거북선을 건설해 양국간 우애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5) 비교 정치학자로서 보는 중남미의 정치적 발전 수준 및 전망은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중남미 정치적 이상은 강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큰 틀에서 중남미 전체를 본다면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독일,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의 세계쟁탈전으로부터 승리한 미국의 압도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죠. 따라서, 미국과 중남미 관계는 한 마리 고양이와 스무 마리의 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50, 60년대 미국은 소위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라는 이름하에 철저하게 중남미를 반공국가로 만들었으며 공산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해 엄청난 개입을 감행하였죠. 이 같은 상황에서 중남미 국가들은 개별적인 정치적 발전을 이룩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죠. 이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는 인권 탄압이었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다행히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등, 중남미 전역으로 민주화의 물결이 확산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반을 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경제 정책은 중남미의 정치, 경제적 발전을 다시 저해하였어요.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집권을 시작으로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칠레 라고스, 에콰도르 라파엘,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와 같은 좌파정권들이 21세기 중남미 정치지형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의존을 벗어나기 위한 독자적인 움직임으로서, 마침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손을 잡았어요. 따라서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중남미는 21세기에 진입하면서 최근 10년 동안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반미주의, 반신자유주의를 형성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으며,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협력적 관계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중남미 국가들이 독자적인 정치 경제적 발전이 활성화되고 독자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2013년 중남미 국가 정상회담인, CELAC(the Community of Latin American & Caribbean States)의 결성으로 나타났습니다. 33개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상들이 모인 정상회담이였지요. 아메리카 대륙에 모두 35개 국가가 있는데 이중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33개 국가들의 모임이 발족된 것입니다. 그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왕따’ 취급을 받던 쿠바가 포함되었습니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하기 위해서 설립한 기관이 TIAR(Tratado Interamericano de Asistencia Reciproca)인데요, 일종의 방위조약이죠, 중남미 국가를 하나로 묶는 리우조약이라고도 일컫기도 하고요. 이후 1948년에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OAS(Organisation of American States)조약을 맺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이후에 미국과 중남미의 국제관계를 결정한 기구였습니다. 이것은 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UN을 대신하는 국제기구에요. 1961년에 케네디 행정부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정부와 단교를 선언했습니다. 1962년 피그만 사건이 발생하고 난 직후 미국은 쿠바를 OAS에서 축출하고, 1964년에는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중남미 국가가 쿠바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이로서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제외된 국가, 즉 왕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와 비교하였을 때 중남미의 독자적 노선과 영향력은 굉장히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부의 군사적 개입이나 간섭이 눈에 띄게 줄어든거죠. 이제 좌파정권이 쇠퇴하고 아르헨티나 마크리 정부, 콜롬비아 산토스 정권, 파라과이, 브라질 보수정권의 집권 등 현재 라틴아메리카 정치지형에 우파정권들이 조금씩 들어서고 있는 상황이에요.
6) 중남미 연구의 다음세대 (후속세대)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공부할 적에는 중남미를 연구하는 학문기관이 한국외국어대학교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중남미를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며 중남미 국가로의 진출이 비교적 원활해져있기 때문에 중남미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전문적인 연구자가 되기에 과거보다 더 나은 환경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2001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중남미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에 칠레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었습니다. 저는 그 부분이 참 부럽고 흥미로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조금씩 중남미 전공이 아닌 멕시코,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등 특정 국가와 지역 전공을 하는 학자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자신의 전공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를 중시하는 것도 필요하긴 한데 외교부나 문광부 등을 통해 중남미 현장에 나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외교관이 아니라 소장 학자들이 외교부에 들어와서 일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대사와 같은 고위공직자가 아니더라도 중견외교관으로 문화, 홍보,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적인 경험을 쌓은 후 대학으로 돌아가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직 제도적으로 확립되지 않아 자신있게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이론을 토대로 학문적 실천을 하는 즉, 융합적 식견을 소유한 그러한 전문 인력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