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선문대학교 스페인 중남미학과 교수)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원자재 가격의 하락과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과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의 상황은 라틴아메리카 좌파정부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2015년11월 아르헨티나 크리스티나 정부의 대선 패배를 시작으로 소위 ‘붉은 후퇴’가 시작되었다. 그 해 12월에는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연합이 3분의 2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좌파 마두로 정부에 정치적 위기를 가져왔다. 2016년 6월 페루 대선에서도 좌파로 분류된 우말라 정부가 물러나고 중도우파인 쿠친스키 정부가 들어섰다. 그 해 8월 브라질에서 좌파 호세피 대통령이 탄핵되고, 중도우파의 테메르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라틴아메리카의 대국 브라질에서 좌파 정부가 막을 내림에 따라 많은 이들은 이제 “중남미에서 좌파의 오랜 헤게모니는 끝났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실제 이런 좌파의 후퇴가 2017년에도 지속될 것인가? 그 첫 번째 시험장이 지난 2월 에콰도르의 대선이었다.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에콰도르의 경우 유가하락으로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해 2016년 GDP 성장률이 라틴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9.7%), 브라질(-3.6%) 다음으로 낮은 -2.0%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와 달리 같은 급진좌파로 분류되던 에콰도르의 코레아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5년까지 60% 이상을 유지했었다. 2015년 말에는 2021년부터 대통령의 임기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성공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에콰도르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에 이어 라틴아메리카에서 세 번째로 대통령 임기제한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인 여당의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다. 2007년부터 이미 세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된 코레아 현 대통령은 임기 무제한을 허용하는 개헌 헌법에도 불구하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당에서는 한때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부통령 레닌 모레노가 출마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39%를 득표함으로써 40% 이상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하는 선거법에 따라 4월 2일 결선투표를 치러야 한다. 현재 여론조사는 모레노 후보가 51%를 득표해 결선 투표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레노가 승리한다면 라틴아메리카의 급진좌파 3인방(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코레아)의 체제가 어쨌든 계속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월에 있을 칠레 대선 또한 좌파의 후퇴가 확실하지는 않다. 현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 이하로 떨어져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지만 야당인 중도우파연합에 대한 지지율 또한 높지 않다. 현재 야당에 대한 지지율은 8%, 반대는 47%이다. 여당인 중도좌파연합에 대한 지지율은 오히려 13%, 반대 46%이다. 칠레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구리 가격이 2016년 1월 톤당 4,310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로 5,500달러 선을 넘어선 것이 칠레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다. 구리 가격이 회복되고 칠레 경제가 다시 좋아진다면 11월 대선에서 우파의 승리를 낙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같은 달 실시되는 온두라스 대선은 현 여당인 중도우파의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의 재선이 예상된다. 온두라스를 비롯한 중미국가들은 석유 수입국으로서 오히려 낮은 유가와 미국경제 회복세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중에서 가장 양호한 성장세를 보여 주었다. 온두라스의 2016년 성장률은 3.5%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으로 인해 이민이나 해외송금 등에 어려움이 생기면 중미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의 승리를 장담할 수만은 없다. 좌파 후보로는 2009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쿠데타로 물러나야 했던 셀라야 혹은 그의 부인 시오마라 카스트로가 거론된다. 온두라스의 선거 결과에 따라 좌파의 후퇴가 아니라 2017년에 오히려 좌파 정부가 하나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대선은 아니지만 지방선거가 올 해 안에 실시되어야 한다. 정부는 ‘경제전쟁’ 상황 등을 이유로 선거를 미루고 있다. 유가상승 등으로 경제상황이 호전되기를 내심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지난 총선의 결과나 생필품 부족과 같은 베네수엘라의 현 상황으로 볼 때 조기에 선거가 실시되면 마두로 정부의 패배는 거의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총선이나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승리가 베네수엘라 현 정치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마두로 현 대통령의 탄핵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혹 탄핵이 된다하더라도 차베스주의자 부통령이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2018년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다음 대선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주의 정부가 물러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상황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에서 우파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베네수엘라에 대한 외부적 압력의 증가 등으로 인해 대선을 앞당겨 조기에 실시하는 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금년에 있을 선거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10월에 있을 아르헨티나의 국회의원 선거이다. 이 선거에서 아르헨티나는 상원의원 3분의 1과 하원의원 반을 새로 뽑는다. 이번 선거는 중도우파연합인 ‘바꾸자’(Cambiemos)의 마크리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마크리 정부는 원자재 수출에 따른 풍부한 재정수입에 의존하던 좌파정부들이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해 힘을 잃고, 외국자본 유입을 통한 인프라 건설 등을 통한 새로운 성장모델을 실현하기 위해 우파정부가 필요한 조건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는 우파 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마크리 정부는 경상수지 문제 해결을 위해 페소화를 65% 평가절하하고, 공공서비스 비용 인상 등을 통한 긴축재정을 실시했다. 그로 인해 2015년 대비 2016년 무역수지 적자가 43억 달러에서 25억 달러로, 경상수지 적자는 159억 달러에서 132억 달러로 다소 감소하고, 자본수지는 110억불 흑자에서 252억불 흑자로 다소 증가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은 2015년 2.5%에서 2016년 -2.0%로 하락했으며, 그에 따라 실업률도 5.9%에서 8.5%로(실업자 수 30만 증가), 빈곤율도 20%에서 33%로 증가했다. 인플레이션도 여전히 40%대로 높이 유지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야당인 페론주의의 존재가 아직 강력하게 남아있다.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페론좌파는 2015년 대선 1차 투표에서 38%를 득표했다. 크리스티나 정부의 내각 총리를 지내고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하원의원인 세르히오 마사가 이끄는 세력도 대선에서 22%를 득표했다. 이들 두 세력의 지지율을 합하면 60%를 넘는다. 현재 의석 분포도 하원 총 257석 중 마크리가 속한 여당 ‘바꾸자’의 의석은 89석으로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친다. 대신 크리스티나와 마사가 속한 정당의 의석수는 합하면 117석에 달한다. 특히 상원은 크리스타나 소속 정당만 총 72석 중 39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여당인 ‘바꾸자’의 의석수는 불과 14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마크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개혁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여당인 ‘바꾸자’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이런 구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빈곤과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라틴아메리카에서 과거 외채위기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우파 정부가 급진적 개혁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러한 정책을 실현하는 정당이 지속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이번 아르헨티나의 국회의원 선거는 현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우파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브라질의 미세유 테메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확고하지는 않다. 경제 환경이 변수가 되겠지만 2018년 대선에서 우파 후보의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다. 우파가 급진적 긴축정책을 실현하는데 한계를 보임으로써 중도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을 실시할 수밖에 없고, 좌파 또한 원자재 가격 회복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중도적 개혁 정책을 실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좌파든 우파든 정책적 중도수렴이 불가피하다면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상황에서 우파보다는 좌파가 정치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정치적 상황은 어쨌든 경제상황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2015년, 2016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외채위기가 발생했던 1982년과 1983년을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다. 2017년에는 플러스 성장이 기대되지만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 같은 산유국은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게다가 트럼프의 등장과 그의 보호무역주의 반 이민정책 등의 영향으로 이민, 해외송금, 무역 등에 있어서 미국에 의존도가 높았던 멕시코와 중미 국가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반면 트럼프가 기업들에 세금을 감면하고, 낙후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등 이러한 정책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면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남미 국가들의 경우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예로 경기선행 지표라 할 수 있는 구리 가격의 경우 트럼프 당선 이전 톤 당 4,310 달러 수준이던 것이 트럼프 당선 이후 급상승해 최근 5,500 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광물 가격도 전반적으로 상승세에 있으며, 커피를 제외한 농산물 가격도 상승세이다.
이런 경제상황의 변화는 정치 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가져 올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의 소위 ‘붉은 후퇴’가 지속될 것인지의 여부는 결국 대선의 해라고 할 수 있는 2018년이 되어야 확실히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는 멕시코를 비롯해 브라질, 콜롬비아,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등에서 대선이 실시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급진좌파인 차베스주의가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지만 트럼프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멕시코에서는 최근 오히려 좌파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도 우파 후보의 승리가 확실치는 않다. 좌파의 ‘붉은 후퇴’가 대세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들을 고려해 볼 때 외채위기나 다른 형태의 경제위기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좌파든 우파든 급진적이기 보다 온건한 중도 개혁정책을 실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좌파의 쇠퇴이기보다는 급진주의의 쇠퇴가 대세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