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1-08-09 16:14:24 조회수 : 896

조주청의 지구촌 술이야기 / 페루 쿠스코 ‘치차’

 

옛 화려했던 ‘태양의 제국’에도 텁텁한 막걸리가?

 15세기 후반, 북쪽으로는 에콰도르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칠레·아르헨티나까지 남미 대륙을 거의 석권한 ‘태양의 제국’이 있었으니 바로 ‘잉카’ 제국이다. 잉카는 계단식 밭농사, 고산준령을 사통팔달하는 도로망, 바늘 틈 하나 없는 석조건축, 두개골을 절개한 외과수술법, 금·은·동의 화려한 제련술 등 놀라운 문명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잉카문명은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왕위계승 제도가 확립되지 않아, 키토(지금의 에콰도르 수도)를 근거지로 한 아타왈파 왕자와 쿠스코(페루 남쪽 안데스 산맥 속의 대분지)의 와스카르 왕자가 왕권쟁탈전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것이다. 대서양을 건너온 스페인의 피사로가 미소를 머금고 두 왕자의 싸움을 지켜보는 가운데, 결국 키토의 아타왈파가 와스카르를 물리치고 잉카제국의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피사로는 불과 180명의 부하를 이끌고 내전으로 기진맥진한 잉카제국을 정복해버린다. 1532년, 천지를 삼킬 듯하던 태양의 제국 잉카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잉카제국은 절멸하지 않았다. 몇몇 왕족과 한무리의 인디오들이 소리 없이 우루밤바강을 따라 안데스 계곡으로 사라진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잉카제국은 전설의 언덕 너머 어둠 속에 묻힌다.



 ○ 인디오들의 원혼 실은 ‘엘 콘도르 파사’

 그리고 1911년, 모험심에 가득 찬 미국 청년 하이럼 빙엄 3세는 희미하게 구전되어 온 ‘공중도시’를 찾아서 우루밤바강을 따라 안데스 계곡을 헤매다 인디오 소년으로부터 믿지 못할 얘기를 듣는다. 그는 인디오 소년을 앞세워 코가 땅에 닿을 듯 깎아지른 봉우리 마추픽추를 오른다.

 얼마나 올랐을까. 소년의 고함소리에 고개를 쳐든 하이럼 빙엄은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비루카밤바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지막 잉카왕국에 사람 그림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폐허는 됐지만, 사라졌던 몇몇 왕족과 잉카인들은 우루밤바 협곡에서 300m나 수직으로 깎아져 오른 뾰족한 산봉우리에 그들의 마지막 왕국을 세웠다. 총면적 5㎢의 공중도시에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을 쌓아 요새를 만들고, 산봉우리 경사면에 계단식 밭을 층층이 만들고, 성벽을 가로질러 수로를 잇고 그 속에서 1만명의 잉카인이 살았다.

 송곳처럼 솟아오른 마추픽추 꼭대기에 세워진 공중도시 비루카밤바의 협곡 아래로는 우루밤바강이 세차게 흐른다. 강 너머로는 가파른 산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스페인 군대는 수없이 우루밤바 강기슭을 오르내렸지만 마추픽추 꼭대기에 도시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도 새하얀 눈을 인 안데스 연봉들은 검푸른 하늘을 찌르고 태양은 높이 솟아 찬란하게 타오른다. 안데스 독수리 ‘콘도르’ 한마리가 유유히 창공을 미끄러진다. 멀리서 구슬픈 인디오들의 노랫가락이 명주실마냥 가늘게 바람에 실려 정처 없이 골짜기를 헤맨다.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콘도르는 날아간다. 콘도르는 무주공산을 헤매는 인디오들의 원혼이다.

○ 길손도 마시고 목동도 마시는 안데스 막걸리 ‘치차’

 가느다랗게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엘 콘도르 파사’의 가락을 따라 쿠스코의 골목을 헤집고 가면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주막집, 라촘바(La Chomba)에 다다른다.

 그들이 마시는 술은 ‘치차(ChiCha)’다. 케추아족 인디오들이 즐겨 마시는 치차는 우리의 막걸리를 빼다 박았다. 색깔이 뿌옇고 맛은 시금털털하다. 그늘진 땅바닥에 묻힌 술독까지 우리네 술독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쌀이 아닌 옥수수로 술을 담는다는 것이다.

 치차는 참으로 대중적이다. 시골 길가의 흙벽돌집 대문에 깃대처럼 막대 하나가 꽂혀 있고, 그 끝에 꽃이 묶여 있으면 보나마나 그 집은 주막집이다. 그곳에서 파는 치차는 술꾼들이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다.

 우리네 농부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일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막걸리를 마시듯이, 그들도 술이라기보다는 간식처럼 치차를 마신다. 길을 가던 부부가 나란히 주막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로 치차를 마시며 쉬는가 하면, 산에서 알파카 떼를 몰던 소년들도 쪼르르 내려와 코 묻은 푼돈을 내고 치차를 마신다.

 치차의 양조법도 우리 막걸리와 흡사하다. 옥수수 가루를 쪄서 밀로 만든 누룩과 버무려 물을 붓고 독에 넣어 발효시킨다. 발효 과정에서 계피를 넣기도 하고 허브와 후추도 넣어 향을 가미시키지만, 주된 맛은 텁텁한 막걸리 그대로다. 알코올 도수는 4%에 못 미친다.

 잉카의 땅에도 문명이 밀려들며, 지금은 가양주 치차도 젊은 인디오들의 외면으로 빚는 집이 점점 줄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우리 막걸리처럼 치차 붐이 일어날지!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www.nongmin.com/article/ar_detail.htm?ar_id=191327

 

 

 

Quick Menu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