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1-05-24 15:58:59 조회수 : 584

(서울=연합뉴스) 잉카 제국의 형성은 약 2천700년 전 온난기가 찾아와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땅에 쌓여 있던 야마(낙타과의 포유류)의 배설물 덕분에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최신 연구가 나왔다고 MSNBC 뉴스가 23일 보도했다.

   프랑스 안데스 연구소 과학자들은 고도 3천300m의 안데스 산중 호수 바닥에서 채취한 점토 퇴적층 표본에서 발견된 꽃가루와 응애 등을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 최신호에 발표했다.

   `라구나 마르카코차'라는 이름의 이 호수는 계단식 경작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주변에는 열대우림과 산간 마을들을 연결하는 고대 통상로가 나 있다.

   연구진은 "당시 이 지역 주민들은 경작지를 건설하고 잡초를 제거했으며 야마 대상(隊商)들이 옥수수와 코카 잎, 소금, 제의용품인 진사(辰砂) 등의 상품을 실어 날라 교역도 시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구나 마르카코차의 점토층 역사는 4천200년 이상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꽃가루는 당시 호수 주변에서 어떤 식물들이 자랐는지를, 응애의 수는 주변에 야마 배설물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말해준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1100년경 지구 온난화가 시작돼 옥수수 농사로 도로와 마추픽추 같은 건축물 건설에 투입된 수많은 사람이 먹을 식량이 확보되면서 잉카 제국이 확대됐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새 연구는 이보다 수천년 전 시대를 대상으로 삼아 훗날 잉카제국의 중심지가 된 쿠스코 부근 안데스 지역에서 농업과 교역이 시작된 연대를 추적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옥수수 농사를 짓기 전 이 지역 주민들은 조 비슷한 곡물인 야생 퀴노아를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퀴노아는 옥수수만큼 열량이 높지는 않지만 그보다 낮은 온도와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당시 주민들이 퀴노아 외에 감자를 주요 식량으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점토층에서는 감자 꽃가루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다른 연구에 따르면 감자는 무겁고 잘 썩어 국지적으로만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옥수수는 운반과 저장이 쉬워 통치 제도에 대한 헌납금으로 징수됐을 가능성도 있어 근동지역에서 보리와 밀이 그랬던 것처럼 아메리카 문명의 발달에 긴요한 수단이 됐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잉카 제국 건설에 필요한 인원을 먹이는 대규모 식량을 키우려면 유기질 비료가 필요했을 것이고 당시 주변에 널려 있던 야마의 배설물이 바로 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농업으로의 전환과 응애 개체 수의 급증이 때를 같이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목축의 증가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곧 사용할 수 있는 비료가 많아지고 주요 교역망의 기반이 됐을 가능성을 말해 준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들은 1100년 경 시작돼 지속한 온난 기후 덕분에 주민들이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가 더 많은 옥수수를 키우고 인구가 점점 늘어났을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진은 옥수수는 주식이었을 뿐 아니라 잉카인들의 제의에 중심이 되는 치카 술의 재료가 됐을 것이라면서 2천700년 전쯤부터 대규모의 의식이 시작돼 다른 부족들을 결속시켰을 것이고 치카주는 죽은 사람과 신들을 위한 신주(神酒)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youngnim@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5/24 12:41 송고

원문보기 :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1/05/24/0607000000AKR20110524081800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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